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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파리 사이 101장면 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들

  • 정수복│사회학자·작가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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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액체 근대성’의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대세의 흐름에 맞게 스스로를 변화시킬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그래서 ‘유연성’이 가장 중요한 인간적ㆍ조직적 자질이 되었다. 물처럼 흘러야지 섬처럼 머물러서는 안 된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들

파리 5구의 뤽상부르 공원.

대상과 너무 가까이 있으면 객관적 묘사가 불가능하다.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때 그 형태와 질감을 있는 그대로 서술할 수 있다.

그런데 10년 만에 파리에서 돌아왔는데도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나와 서울의 풍경 사이 거리가 점차 좁혀지고 있다. 처음에는 혼잡스러워서 견딜 수 없었던 장소에 가도 그러려니 하게 된다. 나는 당연해지는 풍경들을 다시 낯설게 보기 위해 눈앞의 서울과 일부러 거리를 둔다. 서울에 살면서 파리 사람의 눈을 유지하려고 해본다. 그래서 프랑스 학자들이 쓴 책들을 꺼내 읽고 도서관에 가서 ‘르몽드’ 신문을 찾아 읽고 인터넷으로 ‘프랑스 퀼튀르’ 라디오 방송을 연결해서 듣는다.

중년의 사회학자가 서울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어떤 편견이 들어 있을까? 거기에 유럽 중심주의 시각은 없을까? 20세기에 한국인은 스스로를 주변부로 인식하고 중심부로 생각되는 미국과 유럽을 모방하기에 바빴다. 그래서 엘리트층일수록 영어나 프랑스어, 독일어를 구사하며 선진국을 보기로 삼아 우리 사회를 이렇게 고쳐야 한다는 말을 많이 했다.

그러나 이제 일본, 한국, 동남아시아에 이어 중국 경제의 비약적 성장에 힘입어 서구 중심주의적 편견이 많이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도 서구인의 시각으로 비서구 사회의 문화를 바라보는 ‘오리엔탈리즘’이라는 관습적 사고가 다 사라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그런 편견에서 벗어나려고 애쓴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서구문명은 쇠퇴하는 물질문명이고 동아시아문명은 떠오르는 정신문명이라면서 21세기는 아시아적 가치와 문화가 세계를 인도해야 한다는 아전인수 격 ‘옥시덴탈리즘’도 경계하고 있다. 서구인들이 비서구 사회를 편견을 갖고 보는 것도 문제이지만 비서구인들이 서구문화를 또 다른 방식으로 단순화하고 왜곡해 바라보는 것도 문제다. 서로는 서로를 비추어보는 거울이 되어야 한다. 자신과 상대방을 편견 없이 바라보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여야 한다.

서울에서는 모든 것이 빨리 변한다. 외국에서 6개월만 살다 돌아와도 물정을 모르는 촌사람이 되는 듯하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오늘날의 사회를 ‘액체 근대성’의 사회라고 정의하면서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머무르지 않고 계속 변하는 상황을 관찰했다. 그런 액체 근대성의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대세의 흐름을 주시하면서 언제든지 거기에 알맞게 스스로를 변화시킬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외부의 변화에 맞추어 스스로를 변화시킬 가능성을 뜻하는 ‘유연성’이 가장 중요한 인간적·조직적 자질이 되었다. 물처럼 흘러야지 섬처럼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러다가는 금방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모든 것이 변한다고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외형상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지속되는 관습, 관행, ‘문화적 문법’이 있다. 겉모습은 변했지만 속마음은 변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서울의 풍경 가운데는 새롭게 등장한 것도 있지만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것도 있고, 변형된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도 있다. 이 연재물은 그런 풍경들을 아무 순서 없이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려보려는 하나의 작은 시도다.

풍경#36 서울의 변화 한 세기

19세기 말, 20세기 초 개화기에 조선을 방문한 프랑스 사람들은 조선의 풍경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았을까? 1888년 말 조선을 방문했던 프랑스 민속학자 샤를 바라는 ‘조선기행’(1892)에서 다음과 같이 서울을 묘사했다.

“언뜻 보아서는, 심지어 서울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도시들만큼 비참하고 처량하고 가난해 보이는 도시들은 없는 것 같다.”

1890년대 한국을 방문했던 영국의 여성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코리아와 그 이웃나라들’(1897)에서 자신이 관찰한 바를 이렇게 묘사했다.

“길들은 좁고 더러우며 개천은 액체와 고체 쓰레기를 끌어안고 있는 비참한 곳에 한국인들은 산다. 그러한 곳에 짚으로 지붕을 엮고 진흙으로 벽을 쌓아올렸으며, 창문이라고는 없는 낮은 오두막들이 있을 뿐인데 집들 사이에 더러운 개들과 절반 또는 전부 벌거벗은 어린이들이 먼지와 흙을 뒤집어쓴 채 뛰어논다.”

샤를 바라와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 다시 살아나 서울을 방문한다면 무슨 말을 할까?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 서울 풍경은 그야말로 상전벽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 30, 40년 동안에 새롭게 조성된 강남은 말할 것도 없고 개화기에 서양인들이 방문했던 강북 지역의 변화도 100년 전의 모습과 비교하면 현기증이 날 정도다. 서울의 하수도는 깨끗하게 정비되었고 도로는 잘 포장되어 먼지가 나지 않으며 초가집은 다 없어지고 고층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섰다. 종로의 삼성생명 빌딩, 새로 지은 시청 건물, 자하 하디드가 설계해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새로 들어서는 거대한 의류상가, 이태원의 용산구청 청사, 한남동의 일신기업 건물 등은 세계 어느 도시의 현대식 건물과 비교해도 외형상 아무런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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