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호

고용 확대 위한 필요조건 승진·교육훈련 차별 없어야

시간제 일자리

  •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입력2013-06-20 17: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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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용 확대 위한 필요조건 승진·교육훈련 차별 없어야

    5월 14일 벡스코에서 열린 부산광역권 채용박람회에 286개 기업이 참여한 가운데 다양한 계층의 구직 인파가 몰려 등록작성대에서 서류를 작성하고 있다.

    정부는 6월 4일 ‘고용률 70%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 로드맵은 닷새 전인 5월 30일의 노사정 일자리 협약에 따른 것으로,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고 새로 만들어 여성과 장년층의 고용률을 높이는 것이 골자다.

    로드맵의 핵심 키워드인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란 고용이 안정되고 임금이나 복리후생 등 근로조건에 차별이 없는 일자리를 의미한다. 고용노동부는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 창출 지원사업’에서 인건비 지원대상인 ‘시간제 근로자’를 △소정근로시간(4주를 기준으로 1주일 동안의 평균 근로시간)이 한 주에 15시간 이상, 30시간 이하이면서 △기간을 정하지 않고 근로계약을 체결한 상용직으로서 △고용보험에 가입한 근로자로 정의하고 있다. 정년이 보장되고 풀타임 근로자보다 일하는 시간은 짧지만 임금 및 복리후생에서 차별받지 않는 근로자다.

    생산기술의 발전과 정보통신기술의 진화로 ‘고용 없는 성장’이 지속되면서 청년 구직자들이 원하는 양질의 신규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자 정부는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확대를 타개책으로 내놨다. ‘창조경제’로 일자리를 창출해 청년과 구직자에게 노동의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근로시간과 일하는 방식을 개선해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다수 확보하고 시간제 일자리를 원하는 여성과 청·장년 구직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정부는 시간제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내년부터 시간제 일반직 공무원(7급)을 경력경쟁으로 채용한다. 또 신규 직제정원과 즉시 도입가능 직무를 시간제로 전환하고, 시간제 교사 채용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액션플랜도 마련했다.

    안정적 노동기회 확대 vs 저임금·고용불안 심화



    우리나라는 노동공급 측면에서 결혼·출산·육아 부담으로 양질의 여성 인력이 경제활동을 단념하는 비율이 선진국에 견주어 크게 높다.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는 창의적이고 효율적인 인재 활용 차원에서 여성에게 직장과 가정을 아우르며 재능을 살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고령화 추세에 맞춰 중년·고령자가 노동시장에 참여할 기회를 확대하고, 학업과 직장생활을 병행하고자 하는 청년들에게 인턴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것도 장점이다. 경제적인 이유나 사회적 성취를 위해 일이 필요한 국민이라면 누구나 쉽게 일자리에 접근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간제 일자리가 확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시간제 일자리 확대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높다. 정부가 추진하는 시간제 일자리가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나쁜 일자리’를 양산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근로시간이 짧은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낮은 임금과 고용불안 문제 대책부터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계는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가 차별 없는 일자리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이미 차별을 받아온 시간제 근로자와 학교 비정규직 등의 문제 해결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결국 저임금과 장시간 근로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일각에서는 “일자리 창출 자체가 목적이라면 중소기업의 일자리를 개선해 다수의 구직자가 취업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더 시급한 과제”라고 주장한다. 정부가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창출을 위해 벤치마킹한 네덜란드의 경우 최저임금이 한국의 4배 수준인 데다 풀타임 근로자와 파트타임 근로자의 소정근로시간이 큰 차이가 없지만, 우리나라의 시간제 일자리는 동일한 직무를 수행하면서 임금을 적게 주는 차별적인 일자리로 운용돼왔기에 산업현장에서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공한 네덜란드, 실패한 프랑스

    정부의 로드맵은 명시적으로 네덜란드의 시간제 일자리 제도를 참고했다. 1982년 네덜란드의 노동총연맹, 사용자연맹, 정부가 체결한 바세나르 협약(Wassenaars Accord)은 노동계가 자율적 임금 동결로 기업의 수출 경쟁력 확보를 지원하고, 사용자 측이 근로시간 단축과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고용 안정성을 보장하며, 정부는 시간제 여성 근로자를 위한 육아시설 확충과 직업훈련 기회 확대 등 사회적 협의 촉진을 위한 촉매 기능을 하는 것을 골자로 했다. 노사가 서로 임금비용 절감과 고용안정을 주고받은 이른바 네덜란드식 ‘노사정 대타협’이다. 네덜란드는 현재 전체 고용에서 파트타임이 차지하는 비율이 38%에 달하는데, 파트타임 근로자는 줄어든 근로시간만큼 임금이 줄어드는 것 말고는 각종 수당이나 사회보장, 직업훈련 기회 등에서 풀타임 근로자에 비해 아무런 차별도 받지 않는다.

    네덜란드는 이처럼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을 통해 고용률 향상의 기반을 다졌다. 한결 유연해진 노동시장 덕분에 1994년 63.9%이던 고용률이 5년 뒤인 1999년에는 70%로 뛰었다. 이밖에도 영국은 1989년, 독일은 2008년에 고용률 70%를 돌파했다. 이들 선진국은 모두 장시간 근로를 줄이고, 여성 고용률을 높이며,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는 등 노동시장 개혁을 통해 고용률 70%를 달성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1998년 임금을 그대로 둔 채 근로시간만 주 39시간에서 주 35시간으로 단축했다. 이를 통해 고령 근로자의 근로시간이 줄고 청년 실업자의 취업이 늘어나는 효과를 기대했지만, 임금삭감 없이 근로시간만 단축하다보니 기업의 인건비만 상승했다. 이 때문에 기업은 일자리 창출에 적극 나서지 않았고 그 결과 실업자는 계속 증가했다.

    시간제 일자리 늘리기는 한정된 일자리를 분배해 고용률을 높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뿐만 아니라 여성과 중·고령자의 노동시장 재진입을 촉진하고 청년들에게도 다양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이 같은 장점에도 시간제 일자리가 나쁜 일자리로 전락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성공사례 만들고 점진적 접근해야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회의적으로 보는 이유는 풀타임을 선호하는 그릇된 직장문화가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늘 상사의 지시를 받기 위해 대기해야 하는 위계문화, 그리고 직무 중심의 근로보다 출근과 자리 지키기를 중시하는 업무방식이 좋은 예다. 여기에 시간제 근로자의 희생정신과 충성심 부족을 질타하는 기업문화도 한몫하고 있다. 따라서 시간제 일자리가 안착하려면 기업의 직장문화가 변해야 하며, 어렵더라도 중간관리자부터 시간제 근로를 경험해볼 필요가 있다.

    시간제 일자리가 순조롭게 정착하려면 정규직 근로자의 시간제 전환을 촉진해야 한다. 여성 근로자 상당수가 출산과 육아 때문에 휴직 또는 퇴사해 사실상 경력이 단절되는 문제를 해소하려면 현행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와 같이 채용 당시부터 개인이 가사와 경제활동을 병행할 수 있는 일자리가 꾸준히 제공돼야 한다.

    또한 근로조건뿐만 아니라 승진이나 교육훈련 등에서도 풀타임과 차별하지 않아야 진정한 양질의 일자리가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근로자가 풀타임과 파트타임 자리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근로시간 전환청구권이 인정돼야 한다.

    기업들은 시간제 일자리의 필요성이나 당위성에 공감하면서도 시간제 일자리 만들기에 선뜻 동참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통상임금 범위 확대 논의, 근로시간 단축 등의 현안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당장 정규직 시간제 일자리까지 늘리라는 것은 상당한 비용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공기관이 먼저 고용 차별 없는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창출해 성공사례를 만들고, 민간이 이를 자율적으로 따르게 하는 점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아울러 로드맵의 취지에 부합하는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에는 전폭적인 지원책으로 보상해야 한다.



    논점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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