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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심리학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지킬 게 없는 사회

  •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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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사회는 고도성장을 이룩했지만, 여전히 가진 자는 가진 것을 잃어버릴까봐 두려움에 떨고, 가지지 못한 자는 갖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 국민 대다수가 믿는 지배 종교와 신념, 가치가 생겨날 때까지 우리 사회의 심리적 성숙도는 천천히 오를 수밖에 없어 보인다.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20여 년 전,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머나먼 타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 ‘토종 국산’ 필자는 무지에서 오는 불안감과 막연한 두려움에 떨었다. 영어 실력도 시원찮고 미국도 잘 모르기에 당장 미국 공항에 내려서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나를 고민할 정도로 당황했다. 그래서 미국에 먼저 가 있는 선배 유학생에게 도움을 청했다. 필자와 아내를 위해 아파트도 구해주고 공항으로 마중 나와 아파트까지 손수 데려다준 선배 유학생 부부는 몹시 친절했다. 고맙게도 이민 가방 6개를 낑낑거리며 같이 아파트까지 올려주고 심지어 자신들이 준비해 온 음료수를 우리 부부에게 나눠주었다.

유교가 종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대화는 처음 만난 한국 사람들의 식순처럼 호구조사로 시작됐고, 선배는 자연스럽게 물었다. “종교는 있어요?”라고.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예, 유교요.” 그 선배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유교가 종교?”라고 중얼거렸다. 내 대답이 당시엔 꽤 충격적이었나보다. 약 1년 후 지역 한인 모임에서 내 소개를 했을 때, 한 교포가 나를 보고 “아! 그 유교 믿으신다는 분”이라고 할 정도였다.

미국 사회에서 기독교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해서 한인 사회도 교회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종교를 믿건 안 믿건 일상의 편안함을 위해 많은 유학생이 교회에 나간다. 물론 필자는 유학을 마칠 때까지 교회 근처에도 안 가본 예외적인 유학생이었다.

유교가 종교냐는 의문에 대해 전문가와 일반인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 당시 나는 어차피 누군가에게 자신이 바라는 뭔가를 비는 것이 종교라면, 조상께 비는 유교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종교를 잘 모르는 필자의 눈에 한국 종교의 독특한 점은 기복신앙이었다. 신앙을 갖는 주요 동기가 관념적인 가치나 존재에 대한 추구보다는 현세적이고 단기적인 이익인 것이다.

한국 사람은 자녀의 대학 입학을, 사업의 성공을, 가족의 건강을, 심지어 복권이 당첨되기를 각자 자신이 믿는 종교의 ‘그분’에게 빈다. 신앙심이 깊은 사람은 한국 종교의 기복신앙을 걱정한다. 반면 필자와 같이 믿는 종교도 없고 종교성이 약한 사람은 진실한 신앙심의 부재를 걱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많은 사람이 각자 서로 다른 그분에게 빌고 있고, 서로 다른 그분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 믿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여긴다. 그들의 종교가 유일신을 추구한다면 한쪽은 승자, 다른 쪽은 패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통계를 통해 본 우리 사회는 명백한 다종교 사회다. 불교 22.8%, 기독교 18.3%, 천주교 10.9%, 그리고 무종교라고 스스로를 얘기하는 사람이 46.7%다(2005년도 인구센서스). 어느 한 종교도, 심지어 무종교도 과반을 차지하지 못한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는 완벽한 종교의 자유가 있다.

하지만 선언적이거나 법적인 관점이 아닌 실질적인 종교의 자유가 존재하는 사회는 정말 이상한 사회다. 원래 안정된 사회에서는 상대적으로 종교의 자유가 없다. 기존의 사회를 지배하는 종교가 있으며, 굳이 국가나 사회적 압력이 아니라도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친척, 친구까지 다 같이 믿는 종교를 혼자 거부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교의 선택권을 느끼기도 전에 이미 그것을 믿게 된다. 즉 모태 종교를 갖는 것이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태어난다. 우리 사회에서 다양한 종교가 절묘한 균형 상태를 유지한다는 사실은 우리의 기성세대가 거의 완벽한 종교의 자유 속에서 성장했음을 의미한다.

과반이 없는 사회

역사적으로 보면 종교는 한 사회 구성원의 가치관과 그들이 인생에서 추구하는 바를 반영하고 동시에 규정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래서 교육, 결혼, 장례 등의 절차와 심지어 국가의 역할, 제도, 정책, 공식 절차의 대부분이 종교적 가치를 반영하고 종교적 의미를 갖는다.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왕은 종교지도자로부터 왕위를 인정받았다. 미국의 법정에서는 성경에 손을 얹고 진실 맹세를 한다. 아랍 국가의 대부분은 아직도 법적으로 여성에게 운전을 허락하지 않고, 많은 공휴일이 종교적 기념일과 연결돼 있다. 종교가 사회를 유지하고 운영하는 데 근간이 되었다고 봐도 지나치지 않다.

그래서 세상의 여러 나라에는 국민 다수가 믿는 지배 종교가 있다. 개신교, 천주교의 본질이 같음을 감안하면 절반 이상의 서구 주민은 기독교인이다. 미국은 무려 80%에 달한다. 인도는 힌두교도의 비율이 80%가 넘는다. 아랍 국가 대부분은 이슬람 외 다른 종교를 허락하지 않는다. 종교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일부 사회주의 국가들을 제외하고는(이들 국가는 역사가 단절됐다고 보는 것이 더 합당하다), 대부분의 나라에 지배 종교가 있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 사회에서 종교가 균형 잡힌 모습을 보이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바로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가치관과 사상이 없음을 뜻한다. 즉 우리의 기성세대가 태어나서 성장하는 동안 자신이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지를 암묵적으로나 명시적으로 강제해온 사회적 규범이 강하게 존재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아마도 우리 사회는 근대에 들어서면서 그런 가치를 잃어버렸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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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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