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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심리학

가족주의사회의 딜레마 어버이·군자 같은 후보가 최선일까

총리 못 뽑는 나라

  •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가족주의사회의 딜레마 어버이·군자 같은 후보가 최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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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주가 인재를 발탁하던 시대에는 군자와 같은 삶을 살며 덕을 쌓고 있으면 그 소문을 전해 들은 군주나 지도자가 전격적으로 발탁하는 일이 가능했다.
  • 하지만 초경쟁 시대이자 절차적 공정성을 중시하는 현대에는 이런 이례적인 발탁 인사는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 그럼에도 우리 국민은 자신이 추구하는 공익적 가치를 위해 가족에게까지 희생을 감수하게 하는 어버이 같은 지도자를 꿈꾼다.
가족주의사회의 딜레마 어버이·군자 같은 후보가 최선일까

6월 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하면서 눈을 감은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현재의 한국은 무정부 상태이거나, 아니면 한 편의 ‘개그콘서트’ 같은 상황이다. 총리로 지명된 두 명의 후보는 청문회장에 가보지도 못하고 낙마했고, 본인이 사퇴 의사를 밝히고 사퇴가 거의 확정됐던 총리가 유임되는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다.

더 황당한 것은 관 속에 들어갔던 (흔히 하는 말로 이미 잊힌) 총리가 일어나서 돌아오게 된 이유가 ‘구관이 명관’이라는, 너무나 구차해 변명조차 되지 않는 얘기라는 데 있다. ‘국민의 기준에 맞는 적당한 총리 후보가 없다’는 것이다. 이게 코미디라면 나는 유머감각이 진짜로 없는 모양이다. 전혀 웃기지도 않고 오히려 슬퍼진다.

일련의 사태에 대해 세간에는 여러 가지 논의가 진행된다. 근거 없는 조작에 따른 마녀사냥이었다는 의견, 박근혜 대통령의 인재풀이나 인사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비난에서부터, 더 근본적으로 한국사회에는 진정으로 국민이 원하는 지도층이 없다는 탄식과 함께 한국 국민이 총리 후보에게 비현실적으로 지나치게 높은 기준을 요구한다는 하소연까지. 세대, 사회경제적 배경, 정치 성향, 지지 정당, 대통령에 대한 태도 등에 따라 다양한 관점에서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는 것이다. 각 개인이나 언론은 자신의 시각에서 어떤 한 이유만을 주장하지만, 사실 작금의 사태는 이런 요인들이 골고루 기여하고 상호 작용한 종합 결과물이라고 보는 것이 옳겠다.

불가능한 검증 통과

가족주의사회의 딜레마 어버이·군자 같은 후보가 최선일까

전관예우 논란에 휩싸인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는 청문회장에 서보지도 못하고 중도사퇴했다.

총리 또는 장관 후보가 청문회 검증 과정을 통과하지 못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뇌물 수수,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 표절과 같이 상대적으로 진실 규명이 용이하고 구체적인 법률 위반 사항이 확인되는 문제에서부터, 전관예우 심지어 과거 발언의 취지나 의도와 같이 실체 규명이 힘든 해석의 영역까지 문제가 된다. 후보 당사자가 아닌 가족의 영역까지 확대돼, 자녀의 이중국적 문제, 심지어 어느 후보는 부인에게 명품 백을 사준 것까지 문제가 됐다. 그래서 이제는 많은 국민이 이런 기준을 모두 적용하면 과연 청문회를 통과할 수 있는 인사가 몇 명이나 될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실제로 한 언론에는 잠재적 총리후보에게 의사를 타진해도 대부분 고사했으며, 특히 그 가족의 반대가 심했다는 기사가 나기도 했다.

과거의 청문회에서 문제가 된 경우는 법률 위반 같은 구체적인 결격사유가 있었던 반면 최근 두 번의 총리 후보 사퇴는 구체적인 사안보다는 자의적 해석의 여지가 강했다. 안대희 후보의 경우 단기간에 지나치게 많은 수임료가 문제가 됐다. 16억 원이라는 돈이 결코 작은 돈도 아니고 한번쯤 의심해보게 만드는 금액인 것은 맞지만, 안대희 후보가 그 사건을 맡은 뒤 누구한테 전화를 하거나 전관예우를 이용해 부정한 행위를 했다는 근거는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그냥 대법관 출신이 대법원 사건을 맡으면 자동으로 전관예우가 되니 잘못된 것이라는 논리와 16억 원이 너무 많다는 논의만 있었다.

하지만 여기엔 두 가지 중요한 논의가 빠져 있다. 하나는 전문성의 관점이다. 대법원 사건을 대법관 출신에게 맡기는 것이 당연하고 송사에서 이기고 싶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전관예우가 적용되지 않더라도 대법원에서 어떻게 의사결정이 이뤄지는지, 판결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 무엇인지, 대법원의 구조와 특성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당연히 승률이 높다. 같은 돈을 준다면 당연히 대법원 사건은 대법원 출신 변호사에게 맡기는 것이 합리적이고, 좀 더 비싼 수임료는 그 전문성의 비용이 될 수도 있다.

여기서 또 다른 논의점이 나온다. 그럼 과연 16억 원이 그 전문성에 비해 턱없이 많은 돈이며, 당연히 전관예우와 관련돼 있느냐는 문제다. 이 논의는 16억 원이라는 절대적인 금액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건이 안대희 후보가 아닌 다른 변호사나 로펌에 갔을 때의 금액에 비해서 얼마나 많은지를 따져봐야 한다. 만약 이 사건이 대법관 출신이 아닌 다른 로펌에서 수임해도 비슷한 수임료를 받는다면 이 수임료에는 전관예우가 포함돼 있지 않다. 그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면 전문성의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두 가지 중요한 논의는 당시 어느 언론에서도 다루지 않았고, 대부분의 국민 사이에서도 실종돼 있었다. 그냥 16억 원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만 있었던 것이다.

최근의 문창극 총리 후보에 관한 자격 논란은 더욱더 자의적 해석의 여지가 컸다. 일부 언론에서 문창극 후보가 친일적 발언과 한민족 비하 발언을 했다고 주장하며, 어떤 종교행사에서의 연설 내용을 일부 보도하면서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이후 그 연설 전체 동영상이 인터넷에 나오고, 다른 방송매체에서 그 동영상을 거의 전체로 방영하면서 언론의 짜깁기 편집 논란이 제기됐다. 문창극 후보의 머릿속에 한민족에 대한 어떤 태도가 있는지, 일본에 대한 어떤 감정이 있는지를 확인할 길은 사실 없다. 그가 그동안 보인 전체적 행적을 가지고 추론하는 수밖에 없는데, 이런 추론은 매우 많은 노력을 요구 한다.

실제 우리 국민 중에 문창극 후보의 64분짜리 강연 동영상 전체를 본 사람은 몇 %나 될까? 문창극 후보의 과거 글을 찾아서 읽어보고 그 논점이나 문제점을 스스로 판단해본 국민은 몇 %나 될까?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뽑을 때나 총리나 장관 청문회를 볼 때, 국민 대부분은 신중하게 투표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고 훌륭한 자질을 갖춘 사람을 뽑거나 지지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총리와 장관의 프로필이나 관련 정보를 인터넷에서 찾아보기보다 컴퓨터나 옷, 운동화를 사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는 게 사실이다. 심지어 만 원, 몇 천 원 할인하는 데를 찾거나 웹툰이나 유튜브를 보는 데 매일 한 시간을 쓰면서도, 후보에 대한 정보를 찾는 데는 10분도 쓰지 않는 게 대부분의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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