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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민의 리걸 에세이

방청석에서 바라본 재판

  • 정재민 |전 판사·소설가

방청석에서 바라본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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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고소를 당해서 형사법정에 선 친척 어른을 위해 법정 방청을 했다. 고소된 사람들 중에 억울하지 않은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그 어른의 성품과 사정을 잘 아는 나로서는 무죄라고 믿고 재판 과정을 지켜보았다.

어른도 결백을 주장하고 있었고 경찰에서도 무죄주장을 했지만 검찰에서 만큼은 자백을 했다. 어른 말로는 젊은 검사가 등 뒤에서 빽, 고함을 지르는데 손이 벌벌 떨릴 정도로 겁나서 자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판사일 때에는 요즘 세상에 검사가 그렇게 강압적으로 수사하는 경우가 많겠나 싶었는데 친척 어른이 직접 그런 경험을 했다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판사석과 방청석의 차이

방청석에서 바라본 재판
법복을 벗고 처음으로 가본 법정이었다. 10여 년 직장으로 다니던 곳인데도 역시 법원에 오는 것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방청석에 앉아 있는데 무뚝뚝해 보이는 경위가 왔다갔다 하니 괜히 내가 무슨 지적을 받을까봐 눈치가 보이기도 했다. 체격이 큰 검사가 미간을 찌푸리고 눈에 잔뜩 힘을 준 채 회전버튼이 눌린 선풍기처럼 방청석을 한 번씩 주기적으로 돌아볼 때는 시선을 일부러 피하게 됐다.

무엇보다 두려웠던 것은 판사의 오판 가능성이었다. 기본적으로 우리 측이 낸 서면 자료를 판사가 다 꼼꼼하게 읽어보기나 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담당 판사가 앞서 이뤄진 재판을 진행하는 모습을 보니 믿음이 갔다. 목소리가 높지도 낮지도 않고,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태도도 권위와 친절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고 있었다. 법대 위에서 기록을 쭉 넘겨보면서 “경찰에서 이런 취지로 진술하셨지요?” “이번에 내신 서면에서는 피고인이 이런 입장이라고 쓰신 거지요?”라고 일일이 문서의 개요를 말로 되짚어줬다. 안심이 됐다. 적어도 엉터리 재판을 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신뢰가 생겼다.

그러면서 내가 판사일 때에는 저 정도 신뢰를 주지 못했던 것 같아서 미안하고 아쉬웠다. 적어도 당사자들에게 내가 그들이 낸 서면을 다 읽었음을 그 판사만큼 뚜렷이 각인시켜주질 못했다. 그때는 당사자들이 이처럼 애타게 자기 측 서면을 과연 판사가 읽기나 할까 하는 걱정과 의심으로 노심초사함을 미처 알지 못했다.

판사일 때는 기록과 서면을 다 읽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생각도 있었다. 특히 판결문을 직접 써야 하는 단독판사는 기록을 읽지 않고서는 판결문을 쓸 수가 없다. 그렇다고 내가 재판 기일이 열릴 때마다 그전에 당사자가 낸 모든 서면의 모든 문장을 일일이 다 읽었다는 것은 아니다. 처리해야 하는 사건 분량이 많으면 쟁점과 관련이 없거나 불필요한 부분은 건너뛰고 요지 위주로 읽는다. 서면을 다 읽더라도 막상 재판을 하루에 수십 건씩 하고 있으면 내가 읽은 것이 다른 사건과 헷갈리거나 기억나지 않을 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마지막으로 판결을 내릴 때에는 판결문을 작성하기 위해서라도 기록과 서면을 여러 차례 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법복을 벗고 막상 재판을 받는 피고인의 친척 처지가 되어 방청석에 앉아 있으니 판사가 행여 서면을 읽지 않았을까 걱정되고, 판사가 우리 측 서면의 내용을 잘 알고 있는 것을 보고는 그것만으로도 기쁘고 감사하고 신뢰가 생기는 것이었다.

다음 기일에는 친척 어른을 고소한 고소인이 검찰 측 증인으로 법정에 나왔다. 증인이 한 마디씩 할 때마다 어떤 말은 거짓이고 어떤 말은 참인지 쉽게 판단됐다. 당사자로서 사건의 진상을 잘 알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법복을 입고 법대 위에 앉아 있을 때에는 증인이 무슨 말을 해도 그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확신이 가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판사일 때에는 증언을 들어도 사건 당시 상황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지지 않았다. 연극에 비유하자면 배우가 연극 무대 위에서 하는 연기를 직접 보는 것이 아니라 배우가 양복을 입고 분장도 하지 않고 똑같은 자리에 차례로 반듯이 앉아서 대본을 읽는 것을 듣고 연기와 상황을 상상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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