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호

‘혼밥판사’의 한끼 | 칼국수

호로록~ 마성의 맛과 ‘초짜’ 도둑

  • 정재민 전 판사·소설가

    입력2018-12-16 09: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재판은 상처로 시작해서 상처로 끝난다. 당사자들 상처에 비할 순 없지만 판사도 상처를 입는다. 그럴 때면 나는 혼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곤 한다. 정갈한 밥 한 끼, 뜨끈한 탕 한 그릇, 달달한 빵 한 조각을 천천히 먹고 있으면 울적함의 조각이 커피 속 각설탕처럼 스르륵 녹아버리고 위로를 받는다. 그러면서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고 해서 법정에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맞은편 빈자리에 앉은 누군가에게 한다.

    식당을 찾아 거리를 걷는데 늦가을 냉기가 외투 속을 파고든다. 올해는 여름이 그토록 치열하더니 겨울은 또 얼마나 냉혹하려고 벌써부터 이렇게 쌀쌀한지. 이런 날에는 칼칼한 국물에 젖은 칼국수의 치명적 유혹에 저항할 수 없다. 나는 속수무책으로 좀비처럼 칼국숫집으로 향했다. 면발을 호로로로록, 호로로로록 입속으로 빨아 당기는 환청이 구령 붙이는 호루라기 소리처럼 발걸음을 재촉했다.


    칼국수의 치명적 유혹

    컨테이너처럼 생긴 작은 가건물에 붙은, 빨간 페인트로 쓴 ‘칼국수’라는 작은 간판이 바람에 흔들리며 달그락달그락 내게 오라 손짓을 했다. 안으로 들어서니 부엌에 있던 아주머니가 마침 솥뚜껑을 열어젖혔다. 솥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구수한 육수 냄새(멸치와 북어대가리가 들어간 듯했다)를 맡으니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던 몸이 축 늘어지면서 입안에 침이 고였다. 나는 미처 앉기도 전에 솥을 가리키면서 그 칼국수 한 그릇 달라고 하고 구석 자리 통나무 테이블 앞에 벽을 보고 앉았다.

    어릴 적 어머니가 통나무 테이블 위에서 칼국수 면을 만들던 기억이 있다. 흰 종이를 깔고 그 위에 밀가루 반죽 덩어리를 쾅쾅 메치거나 꾹꾹 누르기를 반복하다가 홍두깨를 꺼내 들고 위아래로 굴리면 밀가루 반죽이 낙하산처럼 널찍하게 펼쳐져 통나무 테이블을 다 뒤덮고도 남게 됐다. 어머니는 그것을 한쪽 방향으로만 차곡차곡 접은 다음 도마 위에 놓고 칼로 썰기 시작했다. 칼날이 슥삭슥삭 앞뒤로 움직일 때마다 그 밑으로 구불구불 말린 하얀 면발이 밤새 대문 앞에 내린 눈처럼 차곡차곡 쌓여갔다.

    “밀가루 음식은 소화가 안 돼서 많이 먹으면 몸에 안 좋다”고 경고하면서도 면을 참 좋아하시던 어머니는 정작 본인이 위암에 걸렸다. 내가 대학 가고 처음 고향집에 갔을 때 어머니는 무슨 기념일인 것처럼 칼국수를 먹으러 나가자고 했다. 아들이 내려오면 칼국수를 먹으리라고 벼르던 어머니는 그 때 병색이 완연한 얼굴 위로 모처럼 밝은 설렘을 발산했다.

    그러나 나는 거절했다. 수술로 얼마 남지도 않은, 게다가 암이 재발한 어머니 위장으로는 밀가루 음식을 소화하는 게 버거우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굳이 칼국수를 먹겠다는 것이 폐암 환자가 굳이 담배를 피우겠다고 고집 피우는 것처럼 느껴졌다. 예상 밖이던 아들의 거절에 어머니는 곧 눈물이라도 쏟을 것처럼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다.



    몇 년 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발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가장 후회되던 것이 그날 그냥 칼국수를 사 먹으러 가지 않은 것이었다. 지금 내 나이였다면 칼국수 맛집을 찾아서 모셨을 텐데. 어머니가 폐암이었다고 해도 그토록 원한다면 담배에 불을 붙여드리면서 “이거 진짜 돗대입니다”라고 농을 쳤을 텐데.


    호로록호로록, 후루루루룩

    칼국수가 나왔다. 질서 있게 쌓인 면발 위에 다진 고기, 가늘게 채 썬 애호박, 당근, 버섯과 몇 가닥 쑥갓이 고명으로 올라가 있었다. 나는 형님에게 인사하는 조폭처럼 양손으로 무릎을 짚고 고개를 푹 숙여서 칼국수 그릇 위에 코를 처박고 냄새를 흡입했다. 고기와, 채소와, 육수 냄새가 그릇 위에서 뒤엉켜 산낙지처럼 춤을 추었다.

    나는 숟가락을 들고 국물을 맛보았다. 육수에 멸치뿐 아니라 닭고기 같은 고기도 넣은 것 같았다. 예상대로 칼칼하고 시원했다. 소설이나 드라마는 예상대로 흘러가면 지루해지는데 음식은 예상대로일수록 나를 더 흥분시킨다. 두 손으로 첫 키스를 하려는 여성의 얼굴을 잡는 것처럼 하얀 그릇을 부여잡고 입을 맞추고 국물을 들이켰다. 굳었던 표정이 풀리고 웃음기가 번져나갔다. 카!!!!!!!!! 해장용으로도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어 둘러보니 과연 중년 남자 손님이 많았다. 게다가 반찬은 깍두기와 함께 갓김치라니! 오, 마이, 갓!(죄송합니다)

    ‘칼국수’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 별의별 말이 다 있다. 심지어 6·25전쟁 때 미군이 칼국수를 처음 먹고 너무 맛있어서 동료에게 소개했는데 그 미군 이름이 ‘칼’이었다는 말도 들었다(농담이겠지). 가장 널리 알려진 유래는 면발을 칼로 썰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오랫동안 ‘칼국수’ 명칭의 유래를 납작한 면발이 칼날처럼 생겼기 때문일 거라고 내 마음대로 추측해왔다. 그렇게 생각하면 칼국수를 삼킬 때마다 칼날이 배 속에 들어가는 셈이지만 물론 먹을 때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람의 몸을 찌른 칼은 법조인 생활 동안 셀 수 없이 보았다. 돈을 뺏으려고, 몸을 뺏으려고, 상대를 쫓아버리려고, 원한을 갚으려고, 강한 척하려고 휘두른 칼들. 한 자도 안 되는 그 칼날에는 칼국수 면발보다 복잡하게 뒤엉킨 사람 간 갈등이나, 범죄자의 가슴 밑에서 오랜 세월 칼날보다 더 예리하고 단단하게 벼려진 콤플렉스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고단한 삶의 질곡이 응축돼 있었다.

    검사 시보를 하면서 처음 부검에 참여했을 때 본 시신도 칼에 수차례 찔린 젊은 여자 시체였다. 사귀던 남자가 여자에게 헤어지자고 했다. 여자가 싫다고 하면서, 헤어지면 자신이 현재 임신한 사실을 남자 부모에게 말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자 남자는 칼로 여자 배를 여러 번 찔러 죽였다. 부검해보니 여자는 임신한 적이 없었다. 그 밖에도 여자를 마취시켜서 변기 위에 알몸으로 앉혀놓고 칼로 살을 조각조각 잘라내면서 변기 물을 내리는 엽기 살인마 사건도 본 적 있다(더 쓰고 싶지는 않다).

    너무 심각한 사건을 떠올리면 체할 것 같아 그나마 사정이 나은 사건을 추억하기로 했다. 주택에 홀로 살던 칠순의 할머니가 있다. 돈 아낀다고 전깃불과 보일러를 끄고 지내다 보니 도둑이 빈집으로 착각하고 대낮에 침입했다. 이 도둑 양반이 (내가 음식 먹을 때 그러 듯) 뒤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몰입해서 집안 구석구석을 뒤적이고 있는데 할머니가 컴컴한 이부자리 속에 누운 채 “임자는 뉘시오?”라고 (아마도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혼령 목소리처럼 바이브레이션이 가득한 목소리로) 물어봤나 보다.


    초짜 도둑과 할머니

    도둑이 경험 많은 사람이었다면 능청스럽게 “어, 빈집인 줄 알았는데 잘못 왔네유, 할머니, 오래 사세유!”라며 절하고는 그냥 나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20대의 이 초짜 도둑은 제 발이 저리다 못해 할머니보다 더 놀라서, 그 집에 있던 식칼을 집어 들고 할머니 배를 찔렀다. 도둑이 강도가 되는 순간이었다. 절도죄는 1개월 이상 6년 이하 징역 또는 벌금에 처하지만, 강도죄는 최하 3년 이상 징역형에 처한다. 강도상해죄는 최하 7년 이상의 징역 또는 무기징역감이다. 강도살인죄는 최하가 무기징역이다.

    그런데 이 도둑은 그래놓고는 또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할머니를 업고 인근 병원으로 달려가서 응급실에 눕혀놓았다. 그 동기에 대해서는 검사와 변호인의 의견이 달랐다. 검사는 피고인 처지에서 그대로 두면 할머니가 죽을 것 같고 그러면 자신이 강도살인죄가 돼 중형을 받게 되므로 감형을 위해 그렇게 했을 뿐이라고 했다. 반면 변호인은 빈집인 줄 알고 들어갔다가 할머니를 본 피고인이 우발적으로 칼로 찔렀는데 할머니 몸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보고는 자기 행동을 뉘우치고 정신을 차려 치료한 것이라고 했다.


    “아아!!!!”와 “아아∼∼” 사이

    이 사건을 두고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다. 칼에 찔린 할머니 복부 사진이 법정 스크린에 올라오자 배심원석과 방청석에서 “아아!!!!” 경악 소리가 일어났다. 이후 증인으로 나온 젊은 피고인 아내가 두 살짜리 아기를 안고 나와서 자신이 아기 분유 살 돈도 없다고 남편을 닦달하는 바람에 남편이 저런 범행을 저질렀다며 울었다. 덩달아 아기도 울자 배심원석과 방청석에서는 “아아∼∼” 탄식 소리가 술렁거렸다. 범죄자의 형량은 앞의 “아아!!!!”와 뒤의 “아아∼∼” 사이에서 결정되는데 그 간극이 여간 넓지 않아서 그 사이 어느 지점을 정확한 수치(징역 몇 년)로 지목하기가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언론에 나온 범죄자에 대해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부르짖지만 막상 자기가 주변에 있는 사람을 상대로 고발권, 징계권 등의 칼자루를 쥐게 되면 좀처럼 칼국수 썰듯 차분하고 정밀하게 행사하지 못한다. 오히려 화끈하게 용서해주는 사람을 ‘그릇이 큰 사람’ 내지 ‘관대하고 인간적인 사람’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엄격하게 신고하고 고발하고 처벌하는 사람을 ‘배신자’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으로 보기도 한다. 후자에 대해 “저는 완벽한가, 나중에 똑같이 안 당하는지 두고 보자”는 악담을 퍼붓는 목소리도 낯설지 않다. 이른바 전관예우, 지인예우를 해주는 일부 판·검사도 우리 사회의 이런 평가 기준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피해자 할머니 또한 피고인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표시를 했다. 형량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소가 피해자의 의사인데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하고, 피고인에게 절도나 강도 전과도 없고, 피고인 처지가 딱하고, 무엇보다 갓난아기가 너무 불쌍하다는 이유로 배심원들은 그에게 징역형을 선고하면서도 집행유예를 해주기로 합의했다. 우리 판사들은 할머니의 상처가 너무 깊어 실형에 처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배심원들 의견을 존중해 집행을 유예했다.

    젓가락을 들고 고명을 휘저은 다음 면발을 시계 방향으로 한두 번 감아서 상어가 생선을 낚아채듯 면을 물었다. 입술을 동그랗게 모으고 면을 쭉 빨아 당겼다. 호로로로로로로로로록! 면이 즉석면이 아닌 숙성면이라 더 쫄깃하고 부드러웠다. 입안에 넣고 우물우물 씹기도 하고, 입속에서 국물만 쪽쪽 빨아 먹어보기도 하고, 혀로 면을 한두 번 감아보기도 한다. 내가 면을 좋아하는 이유는 맛도 맛이지만 이렇게 갖고 노는 재미가 있어서다.


    면을 먹는 재미

    입속에서 면을 충분히 즐겼다 싶으면 국물을 들이켜면서 꿀꺽 삼킨다. 그릇을 두 손으로 붙잡았을 때는 내 몸 겉만 데워졌다면, 국물을 마셨을 때에는 속이 따뜻해졌다면, 면을 삼켜서 허기가 채워질 때는 내 영혼에 온기가 스며드는 느낌, 착해지는 느낌이 든다. 이 순간 형량을 선고한다면 피고인에게 지나치게 관대해질 것 같을 정도로.

    그때 국물 위로 올라오는 수증기 너머 맞은편에 그 초짜 강도와 할머니가 나란히 앉아서 칼국수를 먹고 있는 것이 보였다. 후루루루룩, 호로록호로록. 두 사람 모두 그릇에 코를 박고 허겁지겁 맛있게 먹었다. 나는 할머니에게 이 사람을 왜 용서해줬는지 물어보았다. 돈을 제대로 받은 것도 아니고 고작 치료비 받아놓고서.

    “뭘, 그렇게까지… 어차피 내 살 날도 얼마 안 남았는디. 저 청년을 그냥 우리 집에 불러서 같이 살까도 생각했슈. 월세 조금만 받고. 아기도 이쁘던디. 내가 안 굶길 수 있는디.”

    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할머니 나이쯤 됐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울컥해져서 나는 괜히 초짜 강도에게 “당신 운 좋은 줄 아쇼!”라고 쏘아붙였다. 국민참여재판이 아니라 나 혼자 판단했다면, 할머니가 용서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필시 실형을 받았을 거라고. 그러자 초짜 강도는 더욱 더 허겁지겁 먹었다. 후루루루룩, 호로록호로록. 나는 모두와 함께 먹으려고 왕만두를 주문했다.

    * 이 글은 실제 사건을 일부 각색한 에세이입니다




    정재민 | 혼밥을 즐기던 전직 판사이자 현 행정부 공무원. ‘사는 듯 사는 삶’에 관심 많은 작가. 쓴 책으로는 에세이 ‘지금부터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소설 ‘보헤미안랩소디’(제10회 세계문학상 대상작) 등이 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