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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부의 포스코인가 박태준의 포스코인가

  • 이나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byeme@donga.com

유상부의 포스코인가 박태준의 포스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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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을 대표하는 CEO’에서 기소 대상자로 전락한 유회장. 창업 원로, 정치권과의 갈등은 깊어만 가는데. ‘민간기업 포스코’의 리더는 여전히 박태준인가, 유회장은 CEO 자리를 계속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지곡동산. 유치원 이름 같기도 하고 놀이공원 이름 같기도 한 이 명칭은 경북 포항시 남구 지곡동에 위치한 포스코 단지를 뜻한다. 지곡동산에는 포철교육재단 산하 여러 학교들과 포스코 직원을 위한 아파트, 각종 편의시설 등이 들어차 있다. 깨끗한 도로, 완벽한 조경, 그림 같은 집들과 고급스런 문화시설. 유치원부터 포항공대까지 수직계열화한 교육기관들은 국내 최고 수준의 학력을 자랑한다. 마치 서구의 잘 가꿔진 베드타운을 연상케 하는 그곳은 척박한 공업도시 포항에서 외떨어진 섬 같은 존재다.

지곡동산은 포스코 직원들의 자랑이자 자존심이다. 1970~80년대, 박봉과 격무에 시달리는 직원들을 위해 설립자 박태준(74·TJ) 명예회장이 고집스레 완성한 ‘약속의 땅’이다. 공중전화까지 공짜로 걸 수 있게 해 놓은 그 곳에서, 그는 왕이요 ‘주인’이었다.

올해는 그런 TJ가 포스코 경영에서 손 뗀 지 꼭 10년이 되는 해다. 이름만 명예회장일 뿐, 자리도 비서도 월급도 없다. 지금 포스코를 이끌어 가는 건 그의 후계자 유상부(60) 회장이다. 1998년 TJ의 낙점에 따라 ‘왕국’을 이어받은 그는, 그러나 더 이상 왕이 아니다.

유회장은 CEO란 이름으로 많은 것을 바꿔 나갔다. 사람이 바뀌고 관행이 바뀌고 시스템이 바뀌었다. 그럼에도 바뀌지 않는 것, 바꿀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왕’의 그림자, 그의 존재가 던지는 무게감이었다. 회사는 국영기업 포항제철에서 민간기업 포스코로 양질전화했지만 여전히 왕좌는 존재하며, 그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이 또한 한 사람 뿐이다. 유회장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포스코 계열사와 협력업체의 타이거풀스 주식 매입으로 불거진 정치 스캔들, 유회장이 ‘한국을 대표하는 CEO’에서 불구속 기소 대상자로 전락한 지금, TJ의 존재감은 그 어느 때보다 크고 무겁다. 매출 11조원, 영업이익 1조5000억원을 자랑하는 철강부문 세계 1위 기업. ‘유상부의 포스코’인가, 아니면 여전히 ‘박태준의 포항제철’인가.

‘발언 의미 축소’ 보도에 노한 TJ

지난 6월6일 검찰은, 작년 4월 포스코 계열사 및 협력업체가 타이거풀스 인터내셔널 주식 20만주를 70억원에 매입하는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로 유상부 포스코 회장을 불구속 기소키로 했다. 세계적 기업 포스코의 CEO가 비리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사법처리될 위기에 처한 상황은 국내외에 적지 않은 파장을 던졌다.

그보다 보름 남짓 앞선 5월17일, 신병치료차 미국과 일본에 머물러온 TJ는 인천공항에서 만난 포스코 전·현직 임직원, 그리고 기자들 앞에서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포항제철 34년 역사에 중대한 오점을 찍었다. 내가 25년 동안 재직하며 외압을 단절하느라 병이 다 들었는데, 창업자로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책임지지 않고 엉뚱한 짓 하며 돌아다니지 말라고 하라.”

TJ가 “오점을 찍었으니 책임지라”고 호통 친 대상은 다름 아닌 유상부 회장이었다. TJ는 또 이런 말도 했다.

“(회장) 시키고 한 달 지나니까 내 말을 안 듣더라. 자기가 임명되는 데 도움 준 사람들이 있으면 스스로 와 의논을 해야지. 내가 죽을 때까지 결정적인 순간이 있으면 절대로 가만있지 않아. 책임져야 해.”

유회장은 포스코 내 ‘TJ사단’의 적자다. 30여년 동안 TJ와 고락을 같이 해왔다. 그럼에도 TJ가 공개석상에서 유회장 책임론과 일선 퇴진을 촉구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은 세간의 관심을 끌어모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TJ의 발언을 접한 포스코측은 매우 곤혹스러워하면서도 “포스코가 좋지 않은 사건으로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데 대해 창업자로서 일순간 진노했던 것 뿐”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TJ의 한 측근도 “자신이 천거한 인물이 이런저런 구설수에 휘말려 있는 상황에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지나갈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오랜만의 귀국 길이니 사람들이 다 궁금해할 것은 뻔한데 ‘잘 모르겠다’는 식으로 넘어갈 수는 없어 나온 이야기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상황이 그렇게 간단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TJ 발언이 있은 사흘 후 조선일보 경제면에는 포스코의 반응을 담은 기사가 실렸다. 그런데 이 기사를 본 TJ가 무척 화를 냈다는 것이다. 문제가 된 구절은 다음과 같다.

‘포스코 고위 관계자는 “박 전 총리가 창업자로서 우려를 표시한 것으로 본다”면서 “하지만 이번 사건을 해외에서 언론 보도로만 접했기 때문에 정확한 실상을 파악하고 하신 말씀은 아닐 것”이라며 의미를 축소했다.’

이 구절에 역정을 낸 것으로 볼 때, TJ의 공항 발언은 뭘 잘 몰라 한 말이라기보다는 진심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것이라 봐야 옳을 것이다. 포스코가 자신의 발언에 대해 ‘의미를 축소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매우 불쾌해했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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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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