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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한국경제 간판 CEO 열전

한국 최초의 전문경영 기업에서 한우물 32년

유한양행 김선진 사장

  • 송문홍·동아일보 신동아 차장대우

한국 최초의 전문경영 기업에서 한우물 3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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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족벌경영, 월급쟁이 사장이 주류를 이뤄왔던 한국의 기업 풍토에 새 바람이 불어닥치고 있다. 전문경영인 CEO(Chief Executive Officer·최고경영자) 시장이 태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기업 소유주의 입김에 좌지우지되는 ‘월급쟁이 사장님’에겐 불투명한 미래만 있을 뿐이다. 좁게는 기업의 명운, 크게는 한국경제의 앞날을 전문경영인 CEO에 의지하게 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신동아’가 앞으로 다양한 업종에서 향후 10년간 한국경제를 이끌어갈 전문경영인 CEO 열전을 연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편집자>》
유한양행을 우리나라에서 처음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한 기업으로 손꼽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사업가였던 설립자 유일한(柳一韓) 박사가 71년 사망한 이래 전문경영인이 줄곧 기업을 이끌어왔으니 벌써 30년째다. 다른 대부분 기업들이 IMF 위기를 겪고난 뒤 갑작스레 전문경영인을 영입하니 어쩌니 하면서 호들갑을 떠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설립자가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면 세상이 바뀌어도 몇 차례나 바뀌었을 세월이지만, 유일한 박사가 남긴 흔적은 지금도 회사 전반에 강하게 남아 있다. 차분하고 보수적인 회사 분위기, ‘튀지 않아 보이는’ 사원들, 모험을 삼가는 안정적인 경영스타일 등이 그렇다.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기업이익의 사회 환원’을 평생 모토로 삼아온 설립자의 유지에 따라 상당수 주식을 유한재단과 유한학원, 보건장학회 등 공익재단이 소유하고 있는 기업구조. 이는 전문경영인 체제가 일찌감치 자리잡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이런 기업을 이끄는 최고경영자(CEO)는 요즘 한창 ‘뜨는’ 벤처기업 CEO와는 뭔가 다를 것이다. 눈이 핑핑 돌 정도로 빠르게 변화한다는 요즘같은 기업 환경에서는 아무래도 벤처기업의 CEO가 세간의 주목을 더 많이 받게 마련이지만, 때로는 아직 땅 속에 깊숙이 뿌리박지 못한 나무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잎사귀는 창성하되 밑은 허약한 역삼각형을 보는 느낌이랄까.

반면에 유한양행을 상징하는 버드나무는 올해로 74년째 자라고 있다. 겉모양은 평범해보일지 몰라도 뿌리만큼은 땅 속 깊이 탄탄하게 박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기업의 CEO를 형제 많은 집안을 이끄는 장남, 형제들 중 제일 잘 살지는 않아도 고향집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어 다른 형제들이 힘들고 고단할 때 자연스레 찾게 되는 맏형같은 존재에 비유하는 건 지나친 비약일까?

형제 많은 집안의 장남같은 CEO

유한양행 김선진 사장(58)의 이력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1968년 유한양행 입사’로부터 시작해서 실장·부장·상무·전무·부사장·사장까지 사닥다리를 타고 오른 ‘유한양행의 행렬’이다. 계산해보니 유한양행에서만 32년. 그의 약력에서 유한양행이라는 단어를 빼면 말 그대로 남는 게 별로 없다.

─김사장께서는 전문경영인 중에서도 특이한 케이스가 아닌가 합니다. 요즘엔 유능한 CEO를 밖에서 찾는 게 유행인 듯한데, 유한양행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CEO까지 오르셨군요.

“대학을 졸업하고 공채시험으로 들어와서 32년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유한양행에는 아무 연고도 없었어요. 누가 저에게 권유한 것도 아니었고. 지금도 우리 직원들은 다 그렇게 들어오지만, 60년대엔 입사하기가 참 어려웠어요. 당시 유한양행은 대단히 좋은 회사로 손꼽혔습니다. 저는 돌아다니면서 활동적으로 일하는 게 적성에 맞아 이 회사를 지원했습니다. 그 때 어느 신문에 보니까 유한양행에서는 반바지를 입고 근무하고, 복리후생이 좋다고 해서 선택했어요.(웃음)”

─60년대 시절에, 더욱이 유한양행같은 회사에서 반바지를 입고 근무했다는 점이 뜻밖이군요.

“당시엔 그랬습니다. 60년대에 창업자의 아드님인 유일선씨가 부사장이었는데, 미국에서 성장한 분입니다. 이 분이 회사에 끼친 영향 때문이었습니다. 당시엔 우리 회사가 굉장히 투자지향적이었어요.”

─32년동안 한 회사에서 일하면서 CEO가 되려고 애를 많이 썼습니까?(웃음)

“제 말을 믿어줬으면 좋겠는데, 저는 젊었을 때 이 회사의 CEO가 되겠다는 생각을 한번도 해본 일이 없습니다. 다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라 동료들 사이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습니다. 할 일이 있으면 밤을 새워서라도 그 일을 끝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에요. 그건 아마 이 회사가 너무나 좋은 회사이기 때문이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에선 이제야 전문경영인이라는 개념이 정립되고 있지 않습니까? ‘신동아’가 이번에 연재를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인데, 아직은 전문경영인이라는 용어 자체가 좀 모호한 면이 있는 듯 합니다만.

“경영학 책에서는 전문경영인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전문경영인이란 그 회사의 주식을 보유하지 아니한 자로서 경영을 맡은 사람인데,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고용 경영자와 전문경영자. 그러면 어떤 사람이 고용 경영자이고 전문 경영자냐. 고용 경영자는 회사의 지배 주주가 고용한 사람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전문경영인이란 거의 이런 유형입니다. 회장이 있고 대표이사 사장이 있다면 실질적으로 경영의 지배권은 회장이 쥐고서 경영하는 식이지요.

그러면 전문경영인 체제란 뭐냐, 그건 대표이사 사장이 모든 권한을 갖고서 경영하는 것을 말합니다. 오너가 직접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 회사의 대표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급상승 중인 ‘김선진 주(株)’

‘CEOstock.com’이라는 인터넷 사이트가 있다. 국내 CEO들을 대상으로 회원들이 주식거래를 통해 CEO 주가를 매기는 국내 유일의 사이트인데, 여기에 의하면 ‘김선진 주(株)’는 최근 2주일간 ‘폭발적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유한양행의 주가 또한 5월 중순 2만원대에서 8월 현재 4만원을 넘겨 제약주 중 유일하게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 사이트는 유한양행의 강점 중 첫째로 ‘CEO의 경영능력 탁월’을 지적하고 있다.

─CEOstock이라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김사장의 주식이 인기가 좋더군요?

“요전에 누가 10몇만원이라고 해서 왜 그렇게 높냐고 했는데, 저희 회사 주가가 올라가니까 따라서 올라간 것 같아요.”

─회사 주가가 올라간 특별한 요인이 있었나요?

“금년 상반기에도 이익이 과거보다 좋고, 업계 평균 성장률을 상회하는 성장을 했어요. 거기에다 현재 저희가 개발 중인 간장질환 치료제와 위궤양 치료제에 대해 외국 제약사들이 관심을 갖고 연락이 와서, 저희가 자료를 제공하는 과정에 정보가 밖으로 알려진 것 같습니다.

이 두 가지 신약은 실제로 외국 회사들로부터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곧 상당한 조건을 제시해오지 않겠는가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마 제 주가도 그 덕을 본 거겠지요.

저는 투자가 없는 기업은 미래가 없는 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투자란 게 무한정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계가 있거든요. 그 주어진 한계를 적극 활용하는 CEO도 있고, 그렇지 않은 CEO도 있겠지요. 저는 투자에 관한 한 굉장히 적극적입니다. CEO는 당장 해결해야 할 현안도 중요하지만, 내가 기업의 미래를 위해서 뭘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는 것도 똑같이 중요해요. IMF 위기 때 기획조정실에서 연구소 인력을 줄이겠다고 하길래 제가 오히려 늘리라고 했습니다.

우리 회사의 경우 신약 연구개발에 매출액 대비 5% 정도를 투자해오고 있는데, 이건 한국 현실에서는 매우 높은 수준이지만 외국과 비교해보면 사실 부끄러운 수준입니다. 선진국 제약회사들의 연구개발 투자는 보통 15∼20%에 이르고, 2000∼5000명의 연구인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그런 회사들과 어떻게 경쟁할 수 있겠어요? 그렇지만 100여명의 연구인력과 5% 투자로 개발해낸 저희 신약은 충분히 자랑할 만합니다. 외국에서도 깜짝 놀라요.”

그는 인터뷰 내내 제약회사가 향후 살 길은 연구개발 투자를 통한 신약 개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사장으로 취임해서 투자결정을 내릴 때에는 주변의 반대도 심했다고 한다.

“연구개발비를 늘려봐야 아무 소용없다, 차라리 외국에서 개발한 신약을 들여오자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렇지만 제가 투자를 결정하면 저 아닌 다른 사람이 사장으로 올 때라도 열매를 맺을 것이고, 국가적 차원에서도 신약개발은 영예가 되는 일입니다. 그런 신념으로 단기적인 성과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기업의 미래를 위해서 과감하게 투자하는 게 최고결정자로서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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