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1월호

‘호텔 같은 아파트’로 승부한다

  • 장인석 < CEO전문리포터 > jis1029@hanmail.net

    입력2005-03-07 16: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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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텔 같은 아파트’로 아파트시장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롯데건설 임승남(林勝男·63) 사장의 별명은 세 개다. ‘불도저’와 ‘백과사전’, ‘철인’이 그것이다.

    ‘불도저’는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불면의 밤을 보낼 정도로 고민을 하지만 일단 결정 내리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단호한 성격 때문에 가장 많이 불리는 별명이다. ‘백과사전’은 어떤 일도 맡기면 성공의 길을 찾아간다고 해서 그룹 내 임원들이 붙여줬다. ‘철인’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면서도 고객이 찾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고 술자리에서 폭탄주를 10잔 이상이나 마셔도 끄떡없을 정도로 강철 같은 체력을 자랑해서 부하직원들이 부르는 별명.

    이 세 개의 별명은 그를 이해하는 세 가지 키워드가 된다는 점에서 아주 의미심장하다. 또한 이는 어째서 2년전만 해도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롯데건설이 지금 ‘돌풍의 주역’으로 부상했는지 그 이유를 찾는 해법이 된다. 롯데건설은 ‘임승남 이전’과 ‘임승남 이후’를 비교 분석하는 것조차 무의미할 정도로 달라도 너무 다르다. 현재의 롯데건설은 거의 임승남 사장 혼자 힘으로 놀라운 탈바꿈을 했다는 점에서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1998년 4월1일 임승남 사장은 롯데물산에서 롯데건설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롯데건설은 서비스와 제조업종 위주인 롯데그룹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을 뿐만 아니라 건설업계에서도 미약한 존재. 주변사람들은 걱정했지만 그는 ‘잘 안되는 회사를 되살리라’는 신격호 회장의 의중을 읽었고, 그래서 새로운 도전의식에 불탔다.

    “하지만 와서보니 3월까지 100억원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고, 부채도 많았어요. 게다가 주로 정부 공사를 수주해 일해왔는데 점수가 나빠서 제대로 된 공사는 전혀 수주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지요.”



    아파트는 브랜드다

    롯데그룹 공채 1기로 입사해 37년간 외길인생을 달려오면서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 시절이 그에게는 가장 어려운 나날이었다. 회사 상황은 최악이고 상황을 타개할 비책도 전무했으니까. 게다가 롯데건설은 소수정예의 원칙에 따라 부사장도 없었고 전무와 상무도 둘씩밖에 없었다. 직원들은 직원들대로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있었고 오랫동안의 침체로 의욕도 상실하고 있었다. 원군조차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롯데그룹에서 기획통으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롯데제과 기획관리실장, 롯데제과 기획담당 이사를 거쳐 롯데그룹운영본부 기획담당 이사, 롯데그룹 기획조정실 기획담당 상무를 거쳐 롯데건설 중동사업본부장(전무이사)으로 CEO의 세계에 첫발을 내디딘 경력을 갖고 있다. 그의 기획력은 이런 위기에서 빛을 발했다. 그는 평생 제품 기획에 관여했던 경험을 살려 아파트도 하나의 제품, 브랜드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비록 IMF 때라고는 하지만 소득 수준이 1만달러에 육박하고 생활패턴이 고급화하면서 천편일률적인 아파트보다는 편리하고 고급스런 아파트를 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란 판단이 든 거죠. 그러다 ‘호텔 같은 아파트’를 브랜드화하자는 생각이 퍼뜩 든 겁니다. 제가 다행히도 잠실 롯데월드와 부산 롯데호텔을 기획부터 완공까지 맡았던 경험이 있어요. 호텔이 뭡니까? 가장 편리하고 쾌적하고 고급스런 주거지 아닙니까?”

    하지만 그의 아이디어에 찬성하는 직원은 한명도 없었다. IMF 시대에 누가 평당 1000만원에 육박하는 아파트를 선호하냐는 것이다. 틀림없이 망한다고 말리는 직원도 생겨났다. 하지만 그는 불도저다. 결정하기까지는 심사숙고하나 일단 결정되면 누구도 말리지 못한다. 그는 틀림없이 된다고 판단했고, 이 길만이 롯데건설이 사는 길이라고 확신했다.

    “밀어붙였습니다. 반대하는 직원들을 설득하고 냉철한 시장조사를 선행했습니다. 그때까지 반신반의하던 직원들도 제가 선두에서 뛰기 시작하자 따라 뛰더군요. 물론 결과에 대해선 불안했지만 일단 저질러놓고 보자는 생각이 든 거죠. 제가 처음 왔을 때는 저녁 6시면 거의 퇴근하던 직원들이 늦게까지 일하고 밤을 새우는 분위기가 형성됐습니다. 대장이 뛰는데 부하가 안 따라올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1999년 2월 분양한 서울 서초동의 ‘롯데캐슬84’. 캐슬(castle)이란 이름은 그가 잠실 롯데월드를 건설할 때 석촌호수에 세운 성, ‘캐슬’에서 따온 것이다. 캐슬은 최초로 인테리어가 있는 아파트란 점에서 특히 주부들의 관심을 끌었다. 환경친화적인 인테리어에 주부들의 가사노동을 감안해 짧은 동선을 강조했고, 무엇보다 살기 좋은 느낌이 들도록 세심한 배려를 한 것이 돋보였다.

    고급아파트 시대를 선도

    ‘호텔 같은 아파트’란 캐치플레이즈를 내건 ‘롯데캐슬’은 분양가가 평당 1000만원에 달해 사치를 조장하는 것이 아니냐는 일부의 비난도 있었지만 모두 1순위에 마감됐다. 고급아파트를 원하는 소비자들의 심리를 정확히 꿰뚫어본 것이다.

    롯데캐슬의 성공은 일시적이 아니었다. 이는 구매력이 높은 소비자들에게 고급아파트 유행을 선도했고, 나아가 업계를 고급아파트 경쟁으로 몰고갔다. 이 점에서 롯데건설은 이 유행을 선도한 장본인으로 소비자들의 높은 신뢰를 얻었다. 지난해 3월에 분양한 서울 잠원동과 대치동 캐슬은 각각 35대 1과 132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게다가 1억원이 넘는 분양권 프리미엄까지 생기는 기록을 만들었다.

    지난 10월17일부터 분양한 여의도 롯데캐슬 엠파이어는 최고수준의 주상복합아파트란 점에서 눈길을 끈다. 입주자 전용 스포츠센터, 골프연습장, 연회장, 취미실 등의 주민공동시설이 들어서며 무인출동시스템, 디지털 난방제어 시스템, 세대 내 엘리베이터 호출장치, 홈시어터 시스템 등이 기본적으로 제공돼 가장 쾌적한 공간을 꾸민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롯데건설이 캐슬만 지은 것은 아니다. 도심은 캐슬, 외곽과 전원지역엔 ‘낙천대’란 브랜드로 차별된 마케팅을 전개했다. 낙천대(樂天臺)는 롯데의 한자말. 낙천대 역시 대인기였다. 아파트 쪽에서는 명함도 못내밀던 롯데건설은 캐슬과 낙천대의 성공으로 고객들의 신뢰감은 물론 아파트 건설에 대한 자신감도 얻었다.

    여기서 임승남 사장은 또다시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아 직원들은 물론 다른 회사까지 놀라게 만들었다. 다름 아닌 주부로 구성된 고객 서비스팀 LSP(Lady’s Service Part)의 운영이다. 이는 그동안 일회성 분양에서 벗어나 아파트 최초로 애프터서비스를 실시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일로 평가된다. LSP는 사전검검에서 입주까지 각 세대를 방문해 사소한 의견에서 구조적인 개선문제에 이르기까지 의견을 수렴해 소비자들의 호감을 얻었다.

    “아파트는 주부들이 선택합니다. 주부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면 안된다는 것이죠. 그렇게 하려면 주부들의 아이디어, 경험이 가장 중요한데, 그들로부터 정보를 얻고 그들에게 먼저 신뢰감을 얻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주부들이 같은 주부들에게 우리 아파트의 장점을 설명하는 것이죠.”

    그는 주부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까다로운 모델하우스를 짓는 것으로 유명하다. 직원들이 모델하우스를 다 지어놓더라도 그가 와서 최종 점검한 뒤 오케이 해야 마침내 오픈할 수 있다. 하지만 모델하우스에 최초로 사장의 사진을 걸어놓은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점검은 단순한 시찰이 아니다. 직원들의 말에 따르면 거의 감사 수준의 점검이다. 지금까지 만든 수십개의 모델하우스 중 단 한번도 그대로 오픈한 경우가 없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아무리 남에게 팔아 이윤을 올리는 아파트라는 상품이긴 해도 제가 살고 싶고, 들어가면 바깥으로 나가고 싶지 않아야 남 보고도 살라고 권유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자재나 색상이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시장에 내놓고 싶지가 않아요.”

    임승남 사장에겐 대구 진출이 가장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다. 대구시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 대구에 아파트를 지어달라고 했을 때 그는 상당히 주저했다고 한다. 대구는 보수적 성향이 강한 곳. 청구, 보성, 우방 등 대구의 3대 건설업체가 무너져 무주공산이긴 해도 아직 건설업체로서는 미약한 존재인 롯데건설이 과연 대구시민이 만족하는 아파트를 지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일단 고민이 끝나면 밀어붙이는 불도저다.

    “1650세대를 분양하는 모델하우스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에 3만명씩 일주일에 20만명이 다녀간 겁니다. 대단했죠. 당시 대구시민들 사이엔 ‘롯데건설 모델하우스 봤냐’가 인사일 정도였으니까요.”

    올 2월 분양한 부산 화명동 낙천대(1950세대)는 임사장에게 자신감을 부여한 프로젝트다. 사실 이때까지도 롯데건설은 1000세대 이상 지어본 경험이 없었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회사내의 반대가 많았다. 작은 단지라면 몰라도 롯데건설의 능력으로 가능하냐는 얘기였다. 그는 가능하다고 밀어붙였다. 그리고 현재 성공적으로 건설중이다. 임사장은 앞으로 3000세대 건설도 가능할 정도로 역량이 급상승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주택업계 ‘빅3’ 눌러

    아파트 일반분양에서 자신감을 얻은 임사장은 1999년 초부터 재건축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서울 도심에 오래된 아파트들이 이제 다시 지어야 하는 시점이 됐다는 점을 정확히 인식한 것. 오래된 아파트를 다시 지어 분양하는 시공권을 따내는 재건축시장은 그야말로 실력이 없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진검승부의 현장이다. 조합원 대상 설명회를 통해 조합원들이 직접 시공회사를 선정하기 때문에 여기서 패배하면 회사 이미지도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지난해 8월 서울 강동 시영아파트 재건축을 놓고 현대건설과 대림산업 컨소시엄을 따돌려 업계를 놀라게 한 롯데건설은 올 1월엔 서울 서초구 삼익아파트 수주전에서 삼성물산마저 눌렀다. 불과 석달 사이에 주택업계 빅3라는 현대, 대림, 삼성을 꺾은 것이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올 3월부터 서울 보라매 낙천대, 서울 성수동 캐슬파크, 서울 휘경동 낙천대, 부산 해운대 낙천대, 대구 롯데캐슬그랜드 등 그야말로 파죽지세의 승리를 거두고 있다. 지난해부터의 성적을 결산하면 현재까지 19전18승1패, 승률 5할만 돼도 성공이라는 재건축시장에서 ‘불패신화’를 이뤄낸 것이다. 결국 올해 아파트 재건축 시장의 최대 이변은 롯데건설의 선두권 도약이다.

    롯데건설은 이렇게 아파트에서의 약진을 발판삼아 1998년 421세대 아파트 7400억원 수주에 불과한 신세에서 1999년 2821세대 1조6000억원 수주, 2000년 1만3298세대 2조1000억원 수주를 달성했다. 업계순위 16위에서 7위로 뛰어오른 롯데건설의 약진은 올해에도 여전히 이어져 ‘빅5’ 진입은 시간문제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지난 9월4일 ‘한국주택신문’이 수도권 신도시 아파트 입주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주거만족도 조사결과, 올해의 최우수 아파트건설업체로 선정돼 대상을 수상하는 기쁨도 누렸다.

    하지만 임승남 사장은 “이제 시작”이라며 담담해 한다. 지금까지는 롯데건설 알리기 차원에서 수주 위주의 전략을 펼쳤다면 지금부터는 내실 위주의 수익성 수주를 펼쳐 더욱 탄탄한 재무구조를 확보하겠다는 포부를 펼친다. 사실 롯데건설은 임승남 사장이 부임한 이후 1999년 말 81.95%, 2000년 말 74.6%로 부채비율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롯데건설이 재건축시장에서 조합원들의 높은 평가를 받은 것도 사실은 이 같은 탄탄한 재무구조 덕택이다.

    롯데건설이 부채비율을 줄이려고 하는 것은 바로 고객에게 신뢰감을 얻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아파트를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가 만드느냐도 요즘 같은 침체된 경기 때는 중요한 선택 사항이 됩니다. 아파트는 다른 상품과 달리 즉석에서 사고 파는 게 아닙니다. 거의 2년 이상을 믿어야 제 것이 되는 상품 아닙니까?”

    그가 업계 최초로 광고에 자신의 얼굴을 실었다. 임사장은 ‘캐슬’을 일류브랜드로 성장시키는 것과 아울러 2005년까지 무차입경영을 실시하겠다고 다짐한다. 요즘 같은 추세가 이어지면 1년 정도 빠르게 달성할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도 표명한다.

    선투자가 많은 건설회사에서 무차입경영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임사장의 이 같은 장담이 이루어진다면 또 다른 역사가 건설업계에서 시작되는 셈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노력은 기적을 낳는다

    롯데건설 본사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세 번 놀란다고 한다. 우선 회사 건물이나 내부가 생각 이상으로 검소하다는 점이고, 두번째는 임승남 사장의 외모가 사진으로 볼 때와 달리 시골 촌부처럼 수수하다는 점, 마지막으로 임사장의 집무실이 지나치게 협소하고 썰렁하다는 점이다.

    “하하, 바로 이것이 롯데그룹의 내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제 사무실은 그런 롯데그룹에서도 유명할 정도로 좁은 게 사실입니다. 사무실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고, 이곳에서 방문자를 맞이하는 일도 거의 없으니 치장할 필요가 없지요.”

    짧고 수식없는 화술이 솔직 담백함을 느끼게 하는 임사장은 그러나 대단한 친화력을 갖고 있는 마당발로 손꼽힌다. 직원들과 대작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그를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기로 유명한 임사장은 전형적인 ‘발로 뛰는 CEO’. 이런 사람이 어떻게 롯데그룹에서 기획통으로 잔뼈가 굵었는지 의아할 정도다.

    하지만 그에게 성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실패도 많았고 그래서 ‘실패학’을 연구하는 CEO로도 잘 알려져 있다.

    “전 순간을 모면하려고 거짓말하는 직원이 제일 싫습니다. 실패를 하더라도 직원을 꾸짖지 않습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이므로 원인만 알면 그걸 거울삼아 더 나아갈 수 있으니까요.”

    그는 잠실 롯데월드 부사장 시절, 그리고 중동본부장 시절 세 번의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다. 호텔 롯데는 오픈하기 이틀 전 옥상의 물탱크가 넘쳐 엘리베이터 7대가 물에 잠겼고, 잠실 롯데월드는 지하의 ‘신밧드의 모험’ 코너에 화재가 나서 다 타버렸던 것이다. 중동본부장 시절에는 전임자가 계산 잘못으로 3500만 달러에 수주한 공사를 7000만 달러를 들여 완료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이 실패를 뛰어넘는 대처능력으로 신격호 회장의 신임을 얻었다. 호텔 롯데는 이틀후의 완공식을 연기할 수 없는 사정이라 그는 전직원에게 헤어드라이기를 갖고 오게 해 이틀 동안 밤을 새고 엘리베이터를 말려 오픈 당일 엘리베이터 7대 모두를 정상 가동시켰다. ‘신밧드의 모험’은 화재재발 방지를 위해 자재를 콘크리트와 시멘트로 바꿔 직접 국내에서 제작하도록 했다. 미국에서 수입해온 제품보다 훨씬 비싸긴 했지만 안전도면에서는 비교가 되지 않도록 다시 완성시켰던 것이다. 또한 중동본부장 시절엔 2년 만에 철수하자고 신회장에게 건의했다. 그는 괴로운 마음으로 철수했지만 이 때의 철수가 오늘의 롯데건설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중동에서 빨리 철수를 하지 않은 대부분의 주요 건설사가 그 이후 무너졌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경영기법 모두를 신격호 회장으로부터 배운 것이라는 임사장은, 경영인이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솔선수범해서 직원들을 이끌고 뛰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도착할 지점은 흑자경영. 기업의 목표가 흑자경영이지만 이를 위해서 정도를 걸어야 하며, 하늘은 반드시 노력하는 자에게 기회를 준다고 말한다.

    그는 20년 넘게 아무리 힘들고 늦게 들어가도 집에서 1시간 정도 워킹머신과 줄넘기, 아령체조 등의 운동을 거른 적이 없다. 그래서 60대임에도 몸이 단단하고 유연하다. 직원들과의 단합대회 땐 몸을 뒤로 젖혀 줄 밑으로 걸어가는 림보게임을 즐기는데 그를 이기는 젊은 직원들이 몇 없을 정도라고 한다. 중동본부장 시절엔 기사를 옆에 앉히고 자신이 직접 승용차를 시속 200km로 몰고 다니기도 했다. 기사에게 몰게 하면 시속 150km밖에 달리지 못하니까 바쁜 일정을 소화할 수 없어 대신 핸들을 빼앗을 정도로 강한 강단의 소유자다.

    아파트에는 문외한이던 그가 지금은 고객이 가장 사랑하는 아파트를 만들어 냈다. 밤낮없이 뛰어와 결승선을 지난 지금 쉴 법도 하건만 그는 여전히 수십 곳의 공사현장과 설명회를 찾아다니며 그 특유의 뚝심과 미소를 짓고 있다. 그가 계속 진군하는 한 한국 아파트의 역사가 계속 바뀔 것이라는 데 의심을 품는 사람은 없다.





    CEO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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