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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기자의 쇼퍼홀릭

프런트 로의 남자들

  • 김민경 주간동아 편집위원 ‘holden@donga.com’

프런트 로의 남자들

프런트 로의 남자들
쇼펄로지(shopologie, 쇼핑학. 패션 에디터들과 쇼퍼홀릭이 밀고 있는 용어로 쇼핑의 행태와 심리를 분석할 때 세상의 냉소를 피해갈 요량으로 활용한다)에서 ‘프런트 로(front row)’란 패션쇼 맨 앞자리 중간의 VIP석을 가리킨다.

프런트 로에 프레스의 카메라가 몰리므로 주최 측은 브랜드의 가치와 인맥을 보여주는 이 자리에 연예인과 셀레브리티들을 앉히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프런트 로에 좌석이 배정됐다는 것은 패션 ‘권력’임을 인정받는 것이어서 B급(!) 인사들은 홍보담당자에게 은근히 압력을 넣기도 한다. 연예인이나 프레스가 아닌데 프런트 로에 앉아 있다면, ‘신상’을 놓치면 화를 내는 브랜드의 VVIP거나 매출 떨어지면 방을 빼달라는 백화점 바이어일 것이다.

패션쇼에 오는 연예인 및 방송인들도 정해져 있어 어느 패션쇼든 프런트 로 풍경은 비슷하다. 런웨이(무대)를 가운데 두고 우(右) 연예인 좌(左) VIP의 형국이다. 프런트 로엔 여성이 많지만 남성 브랜드 쇼엔 남성도 많다. 그러나 막 사 입었거나 협찬받았음이 분명한데, 옷 따위에는 신경 안 쓴다는 쿨한 표정을 똑같이 연출하고 있으니 일반 남성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최근 잇따라 열린 두 개의 대형 패션쇼 프런트 로를 연예인도 VIP도 아닌 필부(匹夫)와 갑남(甲男)들이 차지한 광경을 보았다. 희미한 조명에도 빛나는 은갈치색 양복, 그 안에 드레스셔츠 대신 입은 검은색 스티치 박힌 왕버튼다운셔츠, 키높이 밑창 혐의가 짙은 검은색 로퍼, ‘싸나이’답게 바지를 걷어 드러낸 짧은 양말과 다리털, 공구(공동구매)라도 한 것 같은 무테안경들, 그리고 요즘 유행하는 반짝이 보석이 밤하늘 별과 인공위성처럼 박힌 분홍과 연두색 넥타이들.

나중에 알아본 바, 이들은 주최측이 소비자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 초청한 인사들로 사회적 분류에 따르자면 ‘성공한 중년 남성’쯤에 해당했다. 따라서 그들은 과거 패션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았을 것이고, 옷을 쇼핑하는 일은 부인의 몫이었을 것이었다. 한마디로 외모에 신경 쓰지 않는 전형적인 한국의 중년 남성들이었다.

프런트 로의 남자들
그런데 놀랍게도 불이 꺼지고, 쇼가 시작되어 남성 모델들-중년의 배우 남궁원, 성악가 김동규씨 등이 무대에 오른다-이 등장하자, 프런트 로 남성들의 고개가 마치 축구공을 보는 열혈축구팬처럼, 낚싯바늘을 응시하는 낚시광처럼 모델의 동선을 좇아 좌우로 움직였다. 동시에 재킷과 바지, 구두를 따라 눈동자가 아래위로 진동했다. 최근 패션쇼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40대 이상 남성들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역시 부인이 옷을 고르거나 사오는 경우가 많긴 했어요. 그런데 ‘내가 고르면 아내보다 더 잘 고른다’고 답한 남성이 절반을 넘더군요. 남성들도 패션에 대한 취향과 욕망이 있는 거죠.”

바로 이들 40대 이상 남성을 겨냥해 새로 론칭한 한 브랜드의 홍보담당자의 설명이다. 또한 인터넷 쇼핑몰에는 인기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서 모든 부인의 ‘로망’이 된 김용건 스타일 코너도 생겼다. 인터넷 몰에서 ‘누구누구 따라 하기’는 효리나 태양 같은 젊은 연예인에 한정된 얘기였다.

쇼퍼홀릭 말기인 중년 남성들을 만난 적이 있다. 그들은 백화점의 매출액 순위에서 1,2등을 다퉜다. 또 완벽한 스타일링으로 볼 때마다 숨이 턱 막히게 만드는 중년 남성들도 있다. 어떠냐 하면, 어쩐지 중국인 같다. 중국인 같아서, 내가 중국어를 못해 말이 통하지 않을 테니 송구하고, 그가 얼마나 많은 옷과 시계와 구두를 갖고 있을지 상상도 되지 않아서, 그저 반가웠으니 안녕히 돌아가시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긴 해도, 중년 남성도 적절하고 조화롭게 자신의 옷을 스타일링하는 안목은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건 쉽지 않은 일이다. 돈과 열의와 시간을 꽤 투자해야 하는 일이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관계도 배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부하 직원을 한번 손보는 편이 낫다는 남성들도 분명히 있다.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보이는지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 존재 자체가 타인에게 고통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상상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신동아 2008년 9월 호

김민경 주간동아 편집위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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