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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기자의 쇼퍼홀릭

가을엔 쇼핑을 하겠어요

  • 김민경 주간동아 편집위원 ‘holden@donga.com’

가을엔 쇼핑을 하겠어요

가을엔 쇼핑을 하겠어요
내가 남자라면 이번 가을엔 이런 것들을 살 거다. 몸에 쪽 달라붙는 꼬르넬리아니 스트라이프 슈트 한 벌, 발목까지 오는 토즈의 부츠와 사슴도 한 마리 넣을 수 있을 듯 커다란 구찌 가방, 금딱지 롤렉스 오이스터 데이토나. 그리고 소가죽 색을 근사하게 낸 아테스토니의 윙팁 구두와 돌체앤가바나의 빨간색 체크무늬 재킷도 차가운 가을 대기와 잘 어울릴 것 같다. 물론 이들 중 어느 하나도 난 사지 못할 것이다. 돈이 없어서 쇼핑하지 못하는 것과 이 모든 것이 ‘남성’용이어서 쇼핑하지 못하는 것. 어느 쪽이 좀 덜 불행한지는 생각을 해봐야겠다.

막 발행된 남성지를 넘겨보던 나는 남자모델들이 입고 신고 들고 있는 ‘신상’들을 보다가 문득 쇼핑의 욕망에 모락모락 타들어가는 내 몸을 발견했다. 여성지를 볼 땐 이번 가을에도 또 검은색인가, 하는 정도였는데 말이다. 남성지를 정기구독하는 이유에 대해서 첫째, 여성지는 미용실 가서 쉽게 볼 수 있고 둘째, 내가 관심 있는 문화 기사가 남성지에 더 많기 때문이라고 말해왔는데, 이달 남성지를 보며 그 ‘관심 있는 기사’가 사실 남성 패션이었나, 라는 생각을 했다.

올해 가을/겨울 신상품을 보여주는 패션쇼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남자모델이 입은 옷과 가방이 더 멋있게 보였다. 아니, 확실히 더 멋졌다. 남성지를 보다가 갑자기 나의 성 정체성에 혼란이 온 것은 아니고, 내 돈으로 사서 입히고 신겨보고 싶은 남성이 생긴 것도 아니다. 남성용으로 나온 재킷과 커다란 가방과 시계는 오로지 나를 위해 사고 싶은 것들이다.

문제는 남자의 것들이 여자의 것들보다 훨씬 아름다워진 데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게다가 올해 여성복 트렌드가 매우 클래식해서 남성복과 여성복은 상당히 비슷해졌다. 즉 남성복은 여성복으로 수렴하고, 여성복은 남성 모드를 지향하면서 남성복이 다양한 색감과 입체적인 라인과 적절한 장식을 갖게 된 것이다. 남성 슈트의 바지통이 점점 더 좁아지고 있는 것(만세! 남자들도 다이어트라는 대재앙을 함께 겪는다)도 남자옷을 내 옷 보듯 하게 된 이유다. 실제로 이번 여름세일 때 함께 쇼핑에 나선 여성은 “이런 옷을 어떤 남자들이 입을 수 있겠어”라며 그녀의 허벅지에도 끼는 남성 바지를 ‘건졌지만’ 분명히 그건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한, 남자 바지였다.

가을엔 쇼핑을 하겠어요
또한 지금까지 여성복만 생산하던 주요 브랜드 몇몇이 이번 시즌부터 ‘맨’ ‘옴므’ 등을 붙여 남성복을 내놓았다. 올해 여성복이 지난해의 싫증난 변주처럼 보인다면 남성복은 경이롭고 환상적이며 오염되지 않은 신대륙이다. 여성용 시계가 변형된 팔찌 디자인인 데 비해 남성용 시계는 지구의 경도를 알아내려는 인간의 노력을 표현하는 조화로운 기계로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여성복이 복잡한 라인과 값비싼 장식으로 바비인형 옷처럼 돼버리는 동안 남성복은 몸의 라인과 구조, 소재 등 기본적인 옷의 아름다움으로 남성소비자에게 접근하고 있다. 옷 좋아하는 여성들이 올해 남성복에 꽂힌 건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러니 남자들은 이번 가을에 이탈리안 스타일의 슈트를 한 벌 사야 한다. 스트라이프도 좋고, 영국식 체크가 은은한 재킷도 좋겠다. 카사노바처럼 보이지 않도록 주의는 해야 한다. 슈트를 ‘양복쟁이’처럼 입지 않으려면 발목까지 오는 부츠도 쇼핑하시라. 브리프케이스든 토드백이든 가방도 하나 사서 들어줘야 한다. 온갖 사무용품을 셔츠와 슈트의 주머니에 넣지 않아야 하므로. 브라운 컬러 윙팁 슈즈는 남자의 일생에 하나쯤 소장하셔야 하는(숍마스터의 ‘최면 주문’이다) ‘머스트해브’다. 마지막으로 금딱지 시계는, 로또가 당첨되면 제일 먼저 사도록 하자. 짝퉁보다는 그 편이 낫다. 가을에 남자들은 좋겠다. 이들 중 하나라도 살 수 있다면 말이다.

신동아 2008년 10월 호

김민경 주간동아 편집위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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