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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남자들이 옷 입는 방법

  • 김민경 주간동아 편집위원 ‘holden@donga.com’

일본 남자들이 옷 입는 방법

일본 남자들이 옷 입는 방법
일본이라면 일단 한 수 아래로 보고 무시하기를 서슴지 않는 한국 남성들이 들으면 유쾌하지 않을 소식 한 가지. 요즘 세계에서 제일 옷 잘 입는 멋쟁이로 다른 나라도 아닌 일본 남성을 쳐준다는 거다. 누구? 그 왜소한 체격에 여자 앞에서 말 한마디 세게 못하는 일본 남자들? 나도 그게 참 궁금하다. 패션지들은 도쿄 남성들의 슈트 착용법을 점점 더 자주 다루고, 패션업계 보도자료에는 ‘옷 잘 입는 이탈리아나 일본 남성들’이란 표현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한 남성복 홍보 담당자는 “일본 남성들은 슈트를 제대로 입고 즐길 줄 알아요. 요즘 청담동에서 스타일 좋다는 남자들은 밀라노보다는 도쿄 남성들을 따라하죠”라고 귀띔했다.

생각해보니 이탈리아나 일본을 여행할 때 유난히 눈에 띄는 것 중 하나가 남자들이 참 열심히 슈트를 입는다는 점이었다. 티셔츠나 와이셔츠 차림으로 길을 다니는 남자를 찾기 어려웠고, 아래 위를 달리하여 이른바 ‘콤비’로 입고 다니는 모습도 드물었다. 싸구려 양복처럼 보이든, 수제 나폴리 양복처럼 비싸 보이든 남자들은 슈트를 입고 길을 걸었다. 슈트를 입으면 어디가 불편한지 어깨에 각이 잡히고, 휘적휘적거리며 걷는 한국 남성들과는 달리, 그들에게 슈트는 일상적인 차림으로 보이는 거다. 이탈리아에서는 시골 노인들조차 통이 좁은 바지에 똑 떨어지는 재킷을 입은 것을 보고 감동받았을 정도다.

슈트는 서양 옷이고, 이탈리아는 말할 나위 없는 패션 강국이니 이탈리아 남자들이 옷을 잘 입는 건 당연하다고 하자. 그런데 일본 남자들이 패션월드에서 베스트드레서로 등극한 건 어찌된 일일까.

난 일본을 잘 모른다. 그저 일본 소설과 만화, 우키요에(일본 에도시대 풍속화)를 좋아하고, 일본 여행을 통해 얻은 인상을 통해 일본인들을 가늠해보는 정도다. 그 경험치 안에서 일본 인상기를 말하라면, ‘뭐든 그대로 따라 배우려고 애쓰는 사람이 많은 나라’란 거다. 에도시대 장인들의 수공예적 전통이나 보편화한 가업 계승이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 여전히 많은 일본 만화가 여기서 생기는 갈등을 소재로 삼는다.

일본 남자들이 옷 입는 방법
이처럼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이 서양 문화를 받아들일 때도 그대로 작동해온 게 아닐까. 1200년 동안 육지에 사는 동물의 고기를 먹지 않던 일본 사람들이 메이지 천황의 명으로 고기를 먹어야 했을 때(목숨을 던진 저항도 있었지만) 유럽식 건물을 지어놓고 그 안에서 칼과 포크에 찔려 입에서 피를 흘리면서 완벽한 프랑스식 식사법을 배웠다(오카다 데스, ‘돈까스의 탄생’). 서양 요리를 먹을 땐 서양식 공간에서 정통 레서피로 만들어진 고기 요리를 궁합이 잘 맞는 와인과 함께 서양식 예절에 따라 먹는 것이다. 억지로 고기를 먹기 위해 돈가스란 완전히 새로운 음식을 만들지언정, 서양 음식의 레서피를 엄격히 지킨다. 전통 전수가 완수된 후에야 개별적인 창조가 이뤄진다. 덕분에 오늘날 일본의 프렌치 레스토랑들엔 전세계 미식가들이 모여든다. 재즈와 와인, 커피 문화가 유럽 이상 발달한 것도 열심히, 제대로 따라 한 결과로 보인다.

일본 남성들의 슈트에서도 ‘제대로 입겠다’는 각오가 느껴진다. 슈트 재킷은 한 치수쯤 넉넉하게 입는 한국 남성들과 달리 어깨와 허리선이 몸의 라인을 드러낼 정도로 슬림한 이탈리아 슈트 스타일에 바지통은 한국 남성들의 그것보다 훨씬 좁다. 길이는 복사뼈 정도에 맞추고 끈으로 묶는 레이스업 구두를 맞춰 신는다. 검은색 슈트가 아니라면 구두 색깔은 짙은 브라운을 매치한다. 유럽의 상류사회에서 슈트에 최고의 가죽색을 살린 브라운 슈즈를 신어왔기 때문이다. 한 구두브랜드 관계자는 한국 남성들이 유독 검은 색상에 발을 집어넣기만 하면 되는 ‘슬립온’ 스타일을 선호한다고 말한다. 일본에서 새로 입각한 장관들은 남성의 정식 예복인 이브닝드레스 코트를 입고 국민에게 인사함으로써 최고의 예를 보여주는데, 그 애티튜드가 어색하지 않다.

옷이든 신발이든 빨리 벗고 신는 게 최고라고 말한다면 거기에도 나름의 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게 모두 일본이 지독한 서구 콤플렉스에 걸려 있기 때문이라고 하면, 그 역시 부정할 순 없을 거다. 단지 어느 동양 국가이든 서구 콤플렉스를 갖고 있지 않을까 싶은데, 그 반응의 차이가 흥미로울 뿐이다.

신동아 2008년 11월 호

김민경 주간동아 편집위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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