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새 연재│구자홍 기자의 ‘WORLD NO.1’ 탐방

(주)풍산 ‘소전’

돈을 만들어 돈을 번다

  • 구자홍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jhkoo@donga.com│

(주)풍산 ‘소전’

2/3
(주)풍산 ‘소전’

소전개발팀은 한 달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유로화 소재인 ‘노르딕 골드’를 개발해냈다.

그로부터 몇 달 뒤인 1998년 4월. 스페인 조폐국으로부터 ‘노르딕 골드 인증서’가 풍산에 도착했다. 드디어 유럽연합 출범에 맞춰 단일 통화로 통용될 유로화 수출길이 활짝 열리게 된 것이다. 당시 스페인은 유럽연합 국가 가운데 유로화 동전 발행 전환을 책임지고 있었기 때문에 스페인 조폐국으로부터 인증받는 것은 곧 유럽연합 전체 국가를 대상으로 납품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풍산은 1998년 7월 스페인과 네덜란드에 5000t규모(9억개, 8t 트럭 600여 대분)의 유로화 소전 공급을 시작했다.

김원헌 소전생산팀 이사는 “IMF 외환위기로 한국 경제가 침체의 늪에서 허덕이던 1998년부터 2000년까지 풍산 온산공장은 ‘돈’(소전)을 만들어 ‘돈’(외화)을 벌어들이느라 하루 3교대로 24시간 공장을 풀가동해야 했다”고 회고했다.

풍산은 2001년 상반기까지 EMU(Economic and Monetary Union · 유럽경제통화동맹) 회원국 12개 국가 가운데 10개국(스페인 네덜란드 프랑스 포르투갈 오스트리아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이탈리아 독일 그리스)에 2만2000t, 약 1억달러어치의 유로 소전을 공급한 데 이어 현재까지 벨기에 핀란드 슬로베니아 사이프러스 등을 추가해 EMU 회원 14개국에 총 3만7000t을 공급했다.

지구에서 달까지 6번 왕복할 ‘길이’

소전은 무늬를 새겨 넣기 직전의 동전을 의미한다. 보통 동전 앞뒷면에는 인물과 그림 등 각종 도안과 액면가, 발행연도 등을 새겨 넣게 마련이다. 소전은 압인가공(금속을 무늬가 있는 틀 사이에 넣고 눌러 금속 표면에 무늬를 새기는 일)을 거쳐야 비로소 동전으로 완성돼 시중에 유통된다. 동전으로 인정받기 위한 최종 승인과정인 압인은 엄격한 화폐관리 등을 위해 대부분 각국 조폐국이 직접 담당한다.



풍산은 소전 분야에서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1973년 대만 수출을 시작으로 현재 전세계 6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고, 풍산이 만든 소전을 30억명 가까운 인구가 사용하고 있다. 풍산이 지금까지 생산한 소전은 880억장에, 무게 44만t에 달한다. 880억장의 소전은 한데 이으면 지구에서 달까지 6번 왕복하고, 지구를 55바퀴 돌 수 있는 양이다.

2009년 12월8일. 울산 온산공단에 위치한 풍산 울산사업장을 찾았다. 공장 안쪽에 소전공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소전은 언뜻 동전 모양의 금속 조각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자판기에 넣으면 돈으로 인식돼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소전공장 출입을 위해서는 금속탐지기 검색 등 철저한 보안 검색과정을 거쳐야 한다.

공장을 안내한 홍상호 과장은 “자판기가 공장 안에도 여러 대 있는데, 소전이 하나라도 나오면 검색 담당 직원이 사직해야 할 만큼 보안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소전의 생산 공정은 소재를 녹이는 주조를 시작으로 열간압연과 냉간압연을 거쳐일정 두께의 판으로 만들고, 타발공정으로 동전 모양으로 뚫어낸 뒤 테두리 성형으로 매끄럽게 만든다. 이후 내부 조직을 균일하게 하기 위해 일정 온도로 가열한 다음 천천히 식히는 소둔과 불순물 제거를 위한 산세 과정을 거친다. 마무리 공정으로 표면광택 작업을 한 뒤 건조시켜 검사단계로 넘긴다.

소전공장을 둘러보는 동안 180㎜의 두꺼운 금속덩어리가 불덩어리로 만들어진 뒤 레일 위에 놓여 여러 번 왕복하며 눌려 10㎜ 두께의 납작한 판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잠시 지켜봤다. 2~3m 이상 떨어져 서 있는데도 압연 중인 쇳덩어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후끈 느껴졌다. 레일 위를 왕복할 때마다 엿가락이 늘어지듯 점점 길어지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일정 두께로 압연된 판은 동그랗게 말려 다음 공정으로 넘어간다.

(주)풍산 ‘소전’

김인달 개발실장

한국의 대표적인 수출품

타 타 타 타. 탁 탁 탁 탁.

기계와 사람의 눈으로 흠집 난 불량품을 골라내는 검사 단계에서는 검사를 통과한 소전이 캐리어에 떨어지는 소리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마치 카지노에서 잭팟이 여기저기 터져 동전이 쏟아지는 소리와 흡사했다.

소전 검사는 기계로 한 번 하고, 사람이 다시 한 번 한다. 기계도 정확하게 불량품을 골라내지만, 육안으로 잡아내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한다. 수십 개의 소전이 쉴 새 없이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움직이는 동안 손과 눈을 이용해 불량품을 찾아내는 검사요원들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세계 시장점유율 1위 제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공정마다 ‘달인’의 손길이 필수적인 모양이다. 검사를 마친 제품은 포장 뒤 발주처로 출고된다.

풍산의 소전은 세계 동합금소전 입찰시장의 60%가량을 점유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수출품이다. 일반적으로 화폐인 동전은 자국의 자존심과 직결되기 때문에 되도록 자국 내에서 조달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만약 우리나라의 100원, 500원 주화를 일본이나 중국 등 해외에서 수입해서 만든다고 생각해보라.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처럼 어느 나라든 보이지 않는 거부감과 장벽이 존재하는 소전을 풍산이 세계 각국에 수출하게 된 비결은 뭘까. 개발실장을 맡고 있는 김인달 전무의 설명이다.

“좋은 품질의 제품을 만들어내면서도 가격을 낮추고, 제때 납품해왔기 때문에 세계 여러 나라에 수출할 수 있었습니다. 소전 시장은 나라마다 자존심 때문에 진입장벽이 높습니다. 그렇지만 품질과 가격을 앞세워 뚫었지요. 풍산 직원들의 성실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또 아이디어를 내서 원가를 절감해온 것도 중요한 요인이 됐고요.”

2/3
구자홍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jhkoo@donga.com│
목록 닫기

(주)풍산 ‘소전’

댓글 창 닫기

2019/09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