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호

아기보다 민감한 엄마, 맘(Mom)의 맘(心) 좇아온 30년

유한킴벌리 하기스 기저귀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12-07-23 15:5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아기보다 민감한 엄마, 맘(Mom)의 맘(心) 좇아온 30년
    “밴드가 짱짱하고 폭이 넓지 않아 활동하기 좋은 듯해요. 모양도 입체적이라 몸에 잘 맞고요. 안감은 좀 거친 느낌인데 흡수가 빨라 보송보송한 편이더군요. 디자인이나 착용감은 이 제품이 낫지만, 흡수력이나 밀착력은 저 제품이 우수하네요.”

    돌 지난 아이를 키우는 한 엄마가 인터넷에 남긴 기저귀 사용 후기다. 제품 분석 보고서 뺨치는 상세한 육아용품 사용 후기는 아기 엄마들이 모이는 인터넷 커뮤니티마다 가득 쌓여 있다. 젖병, 물티슈, 유모차, 동화책, 심지어 유아용 면봉까지 엄마들의 까다롭고 까칠한 품평을 피하지 못한다. 그중 엄마들이 가장 혹독하게(?) 대하는 품목 중 하나가 기저귀다.

    엄마들이 기저귀를 ‘분석’할 때 고려하는 사항은 한둘이 아니다. 흡수성, 통기성, 밀착력, 부드러움, 두께, 냄새, 디자인, 밴드 접착력과 늘어남 정도 등등. 심지어 “사용한 기저귀가 납작하게 말리지 않아 내다버릴 때 불편하다”는 지적도 있다. 아기 신체의 민감하고 중요한 부위에 24시간 밀착해 있고, 하루 8~10장씩 갈아주다보니 엄마라면 누구나 기저귀 박사가 되는 것이다.

    한국 엄마들이 유독 기저귀에 까다롭다보니 여러 브랜드의 기저귀 샘플을 집으로 배달해주는 인터넷 쇼핑몰도 성업 중이다. 엄마들이 요청한 기저귀 브랜드마다 서너 장의 제품을 모아 제공하는 것.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 아니 불여일용(不如一用)이라고 생각하는 엄마들을 위한 맞춤 서비스다.

    2009년 온라인에서 국내 최초로 기저귀 샘플 사업을 시작한 맘스엔젤 노회성 대표는 “요즘 엄마들은 한국, 미국, 일본, 독일, 덴마크 등 세계 각국 기저귀 샘플을 두루 써보고 가장 맘에 드는 브랜드를 골라 재구매하고자 한다”며 “해외에 이런 유형의 사업이 있다고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런 험난한 전장에서 30년 동안 1위를 고수해온 기저귀 브랜드가 있다. 유한킴벌리 하기스(Huggies)다. “선물로 들어오는 기저귀는 모두 하기스”란 말이 엄마들 사이에 있을 정도로(기저귀 사러 들른 슈퍼마켓에서 “하기스 주세요”라고 하기 때문에) 하기스는 지난 30년간 국내 소비자 사이에서 기저귀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하기스는 1983년 국내 최초의 위생 종이 기저귀로 출시됐다. 하기스란 ‘Hug Babies’, 즉 ‘아기를 껴안다’란 뜻이다. ‘아기의 편안함을 추구한다’는 브랜드 정신을 반영한 것이다.

    까다롭고 까칠한 기저귀 박사들

    하기스는 30년 동안 아기의 편안함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꾸준히 품질을 업그레이드해왔다. 흡수력이 좋아지고 얇아서 착용감이 향상된 울트라슬림 디자인(1993), 순면 감촉 통기성 커버(1996), 아기 활동성을 높여주는 매직벨트(1997) 등을 잇달아 내놓으며 국내 기저귀 시장을 이끌어갔다. 그리고 2005년 ‘걷기 시작하면 입히세요’라는 광고카피가 귀에 익은 팬티기저귀, ‘하기스 매직팬티’를 출시했다.

    1990년대 들어 미국 P·G 팸퍼스가 입성하는 등 국내 종이기저귀 시장이 경쟁체제로 돌입했지만, 하기스는 시장점유율을 높게는 80%대까지 기록할 정도로 성공을 이어갔다. 기저귀는 유한킴벌리 전체 매출에서 비중이 가장 높은 제품군이기도 하다.

    2009년 여름의 일이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육아용품 박람회에 들른 기자는 희한한 광경을 목격했다. 배가 부른 임산부와 예비 아빠들이 한 부스를 향해 수십m의 긴 줄을 형성하고 있었다. 조금 뒤 서너 명의 직원이 “군 오늘 품절”이라고 큰소리로 외치고 다녔다. 운 좋게 ‘군’이라는 걸 산 부부들은 만족한 웃음을 띠며 자리를 떴고, 남은 이들은 내일 다시 들르면 살 수 있는지 등을 물었다.

    일본 기저귀의 습격과 추락

    군(GOO.N)은 일본 3대 종합제지회사 중 하나인 (주)다이오제지의 기저귀 브랜드다. 4~5년 전부터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국내에 판매되기 시작하면서 “얇고 부드럽다” “흡수력이 뛰어나다” “발진이 생기지 않는다” 등의 평판을 얻으며 날로 인기가 높아졌다.

    군을 비롯한 일본 기저귀의 선전은 하기스에 위협 요소로 작용했다. 모 대형 인터넷 쇼핑몰 판매 통계에 따르면 일본 기저귀의 시장점유율이 상승하는 기간에 하기스 점유율은 하락했다. 이 쇼핑몰에서 하기스는 여전히 기저귀 점유율 1위 자리를 지켰지만, 어느새 2위로 올라선 군과의 격차는 줄어드는 추세였다. 2011년 2월 이 쇼핑몰에서 둘 사이 격차는 10.4%포인트까지 좁혀졌다.

    그리고 한 달 뒤인 2011년 3월 11일. 일본 대지진의 여파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했다. 그와 동시에 군을 비롯한 일본 기저귀 판매고는 급격히 꺾였고, 하기스의 점유율은 상승세로 돌아섰다. 엄마 고객이 일본 기저귀가 제조 과정에서 방사능에 노출됐을까 우려해 발길을 돌린 것이다.

    하지만 하기스가 가만히 앉은 채로 반사이익을 얻은 것은 아니다. 국내 기저귀시장에서 하기스가 30년 동안 독주할 수 있었던 가장 주요한 요인으로 ‘방대하고 상세한 소비자 조사와 소비자 요구에 맞는 신제품 개발’이 꼽히는데, 이런 노력은 이 시기에 더욱 강화됐다. 2011년 유한킴벌리가 실시한 기저귀 리서치 프로젝트는 총 116건. 이 과정에서 무려 3만8380명의 소비자와 접촉했다. 또 2011년 한 해 동안 ‘하기스 프리미어’ ‘하기스 네이처메이드 팬티’ 등 2개 제품을 새로 출시하고 ‘하기스 매직팬티’ ‘하기스 네이처메이드’ ‘하기스 소프트드라이’ ‘하기스 보송보송’ 등 4개 제품을 리뉴얼했다.

    기저귀 리서치 프로젝트의 주제와 방법은 다종다양하다. 기존 제품이나 경쟁 제품에 대한 평가, 소비자 인식 및 수요 조사, 시제품(試製品) 테스트 등 설문조사, 면접조사, 행동관찰 등으로 평가한다.

    일례로 신제품을 출시하기 전에 600여 명의 엄마에게 시제품과 경쟁사 제품을 함께 제공해 둘 다 사용해보도록 한다. 이 리서치에 참가한 엄마들은 300개에 달하는 세세한 문항에 답을 하게 된다. 유한킴벌리 유아·아동사업 부문 하기스 마케팅팀 관계자는 “기저귀가 아기 체형에 잘 맞는지를 묻는 문항도 엉덩이 어느 부분에 잘 맞는지, 허리는 어떤지 등을 분류해 조사한다”고 말했다.

    2011년 9월 ‘뉴 하기스 매직팬티’를 출시하기에 앞서 유한킴벌리는 신제품이 아기 체형에 잘 맞는지 직접 테스트하기 위해 1500명의 아기를 대상으로 Fit Study를 진행했다. Fit Study란 아기가 실제 제품을 입고 활동하면서 체형에 잘 맞는지, 움직임이 편안한지 등을 연구하는 것이다. 유한킴벌리 연구실에 아기들이 초대됐고, 시제품을 착용한 아기들이 놀이 공간에서 뛰어노는 모습을 관찰하며 Fit Study가 진행됐다고 한다.

    “Winning Product로 승부”

    아기보다 민감한 엄마, 맘(Mom)의 맘(心) 좇아온 30년

    유한킴벌리 ‘하기스 매직팬티’.

    소비자에 대한 심층(In-depth) 인터뷰도 빠지지 않는다. 2명의 엄마 고객이 조사원과 두 시간가량 기저귀에 관한 심층 대화를 나누는 것을 마케터와 마케팅리서치 담당자, R·D(Research · Development) 연구원, 그리고 디자이너까지 지켜보는 것. 이런 리서치는 사나흘 동안 하루 종일 이어지곤 한다.

    이는 각종 리서치 프로젝트를 통해 집계된 정량 데이터를 정성 데이터로 이해하는 과정이다. 다시 말해 정량적 조사에서 ‘천연소재를 선호한다’는 응답이 높았다면, 심층 인터뷰에서 엄마들이 털어놓는 이야기를 통해 이들이 얼마나 천연소재에 관심이 높은지를 몸과 마음으로 이해하게 된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일등’으로 계속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혁신해야 하는지가 자연 도출된다.

    유한킴벌리가 집요할 정도로 소비자 조사와 고객 요구에 맞는 제품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위닝 프로덕트(Winning Product)가 아니면 출시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오고 있기 때문이다. 신제품을 출시하기에 앞서 각종 소비자 조사에서 경쟁사 제품을 이길 때까지 시제품 품질을 수차 업그레이드하는 것은 유한킴벌리만의 원칙이다.

    지난해 4월 출시한 ‘하기스 프리미어’ 역시 이런 맥락에 있다. 유한킴벌리의 소비자 조사에 따르면 국내 소비자는 기저귀의 흡수력과 새지 않음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왔다. 부드러움은 후순위였고, 부드러움 중에서도 ‘매끄러운 부드러움’을 선호했다. 하지만 ‘폭신폭신한 부드러움’이 강점인 일본 기저귀를 경험한 이후 소비자 성향은 ‘폭신폭신한 부드러움’을 선호하는 쪽으로 달라졌다.

    아기보다 민감한 엄마, 맘(Mom)의 맘(心) 좇아온 30년

    유한킴벌리 하기스 마케팅팀이 소비자 조사에 관한 회의를 하고 있다.

    이에 유한킴벌리는 13년 만에 ‘하기스 골드’를 ‘하기스 프리미어’로 업그레이드하면서 통기성 향상에 중점을 두는 한편 기저귀 안감에 ‘폭신폭신한 부드러움’을 도입하기로 했다. 에어엠보싱 패턴을 적용해 아기 엉덩이와 안감 사이에 공기가 통하는 공간을 18% 늘렸고, 안감을 ‘폭신폭신한 부드러움’이 느껴지는 소재로 바꾸었다. 이 같은 쉼 없는 제품 혁신으로 하기스는 한때 80%대까지 올라갔다가 60%대까지 떨어졌던 브랜드 최초 인지도(Top of Mind·특정 카테고리에 있는 제품을 말해보라고 요청받았을 때 가장 먼저 말하는 브랜드)를 70%대까지 회복했다.

    늦게 기저귀 떼는 아기들

    하기스가 압도적인 1위를 하고 있는 카테고리가 있는데, 바로 팬티기저귀다. 2005년 ‘하기스 매직팬티’를 출시한 이래 하기스는 국내 팬티기저귀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다. 앞에서도 언급한 모 대형 인터넷 쇼핑몰의 판매 통계에 따르면 하기스는 팬티기저귀 상품군에서 50~60%에 달하는 점유율을 꾸준하게 유지하고 있다(오프라인 점유율은 이보다 높다).

    한국 아기들은 다른 나라 아기들보다 기저귀를 빨리 떼는 편이다. 기저귀를 떼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미국 아기 27개월, 프랑스아기 29개월가량인 데 비해 한국 부모들은 아이가 한 돌 반이 지나면 차츰 기저귀 떼는 훈련을 시작하곤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시기가 상당히 늦춰지는 추세다. 요즘 엄마들은 아이가 자연스럽게 대소변을 가리고자 할 때까지 기다리기 시작했다. 유한킴벌리의 ‘기저귀 사용자 행동 및 인식조사’에 따르면 2010년 아이가 기저귀를 떼는 데 걸린 개월 수는 26.2개월로 조사됐다. 이는 5년 전에 비해 2.5개월이나 길어진 수치다. 또 ‘기저귀를 천천히 떼는 것이 아이에게 좋다’는 의견도 같은 기간 15% 증가했다.

    유한킴벌리는 이런 육아 트렌드가 앞으로 더욱 강해지면서 팬티기저귀 수요가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팬티기저귀는 전체 기저귀 시장의 35%를 차지하는데, 유한킴벌리는 60%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유한킴벌리는 팬티기저귀 시장이 커지면 하기스 입지가 더욱 단단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유한킴벌리 대전공장에는 중국, 러시아, 호주 등 전 세계 11개 국가의 국기가 나부낀다. 모두 하기스를 수출하는 나라다. 하기스는 2008년 단일 품목으로 ‘1억달러 수출’을 달성했고, 2011년 한 해에만 1647억 원의 수출고를 올렸다. 특히 중국 프리미엄 기저귀 시장에서 하기스(중국명 ‘하오치·好奇’)는 9년 연속 점유율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세계 1등 브랜드의 치열한 격전장인 중국에서 미국 P·G, 일본 유니참 등 세계적인 생활용품 기업을 제치고 올린 성과다.

    중국 아기들, 하기스 차고 자란다

    주요 국가 중 하기스가 아직 진출하지 않은 나라가 바로 생활용품 제조 강국, 일본이다. 유한킴벌리는 몇 년 전부터 일본 진출을 착실하게 준비하고 있는데 이 또한 ‘위닝 프로덕트’ 원칙을 따른다. 유한킴벌리는 수년 전부터 일본 현지 고객 조사와 연구를 진행하며 일본 수출용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김영일 유한킴벌리 홍보팀 과장은 “2010년 실시한 한 고객 조사에서 개발 과정에 있는 하기스 시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일본산 기저귀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고 전했다.

    세계적으로 한류 열풍이 뜨겁다. 한류의 요인으로 여러 가지가 조명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한국 소비자의 까다로움과 이에 부응하려는 부단한 노력이 차별화된 경쟁력을 낳았다는 점이다. 하기스의 성공도 까다롭고 꼼꼼한 엄마들만큼 철저하고 깐깐하게 시장을 분석하고 품질을 향상시켜왔기 때문이 아닐까. 하기스가 국내시장을 넘어 세계시장에서 ‘기저귀 한류’의 신화를 쓸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기저귀는 과학이다”…이노베이션센터 개설해 기술 연구·개발 박차
    오늘날 기업은 빠르게 변하는 시장 환경과 소비자 요구에 적극 대응할 수 있는 ‘스피드’와 ‘혁신’ 역량을 갖춰야만 살아남는다. 통상 6개월을 주기로 신제품을 출시해온 유한킴벌리는 속도를 더욱 높이고 시너지 효과를 강화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통합 R&E(Research & Education) 센터인 ‘유한킴벌리 이노베이션센터’를 세웠다. 유아·아동용품, 여성용품, 가정용품, 스킨케어, 시니어케어, B2B 등 6개 주요 사업부문에서 개별 운영하던 R&E 핵심역량을 이 센터로 한데 모은 것이다.
    유한킴벌리는 이 센터의 60여 명 연구인력을 2015년까지 44% 확대하는 등 혁신역량 강화에 더욱 집중할 계획이다. 유한킴벌리는 이 센터를 통해 제품 간 적용 기술의 교류가 활성화되고, 제품 생산에 신기술이 보다 빠르게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규복 대표이사는 이 센터 개소식에서 “이노베이션 센터는 국내 생활용품의 혁신을 이끄는 허브 역할을 하는 동시에 글로벌 시장을 확대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