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호

빅 데이터 활용 ‘감성 서비스’ 디자인

기차역서 짐 받아주는 파라다이스호텔 부산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12-11-21 16: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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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 데이터 활용 ‘감성 서비스’ 디자인
    관광특수를 맞고 있는 부산에 하얏트 등 글로벌 호텔체인이 진출을 선언하면서 부산이 특급호텔 격전지로 부상했다. 이에 부산롯데호텔을 비롯한 기존 특급호텔들은 시설 투자를 늘리는 등 대응에 나서고 있다. 그 가운데 ‘토종’ 파라다이스호텔 부산(이하 파라다이스부산)의 약진이 두드러져 주목된다.

    1981년 해운대 백사장 바로 앞에서 문을 연 파라다이스부산은 총 530객실 규모의 특1급호텔이다. 객실에 딸린 발코니와 노천온천으로 유명한 이 호텔이 최근 눈에 띄는 매출 신장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814억 원의 매출을 올려 전년 대비 15% 성장했다. 올해 매출도 80억 원 가까이 증가한 892억 원으로 예상된다. 경쟁 호텔들이 5% 안팎으로 성장한 것과 비교할 때 단연 돋보이는 성과라 하겠다.

    2007년 본관을 리노베이션하고 최근 1G급 초고속인터넷망과 각 객실 무선인터넷을 설치하는 등 시설 투자에 노력한 덕분이기도 하지만, 최근 파라다이스부산의 성장 요인은 빅 데이터와 감성 마케팅의 결합에서 찾을 수 있다.

    추운 겨울에 여행하게 하려면

    요즘 파라다이스부산의 핫 아이템은 지난 4월 개장한 야외 스파 ‘씨메르(Cimer)’. 1989년 개장한 노천온천을 리노베이션해 ‘하늘과 바다를 품은 하이엔드 스파 공간’ 콘셉트로 탈바꿈했다. 배쓰(Bath) 바닥을 예전보다 약간 높게 만들어 바다에 떠 있는 듯한 기분을 주고, 가까이에 건식 사우나를 갖춰 몸을 녹이기에 좋다. 특급호텔 스파 시설로서는 예외적으로 키즈 공간도 마련했고 수제 햄버거, 파스타, 맥주 등 가벼운 식사와 음료를 1만 원대 이하에 판매한다.



    씨메르의 콘셉트와 서비스는 동절기 고객 유치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부산 해운대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름 관광지다. 그래서 하절기 객실 점유율은 94%나 되지만, 문제는 동절기 때 객실 점유율이 70%대로 뚝 떨어진다는 점이다. 여름 손님 10명 중 3명이 2박 일정인데 반해 겨울에는 2박 일정이 10%에 불과하다. 겨울에도 해운대에 찾아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파라다이스부산은 데이터에서 ‘답’을 찾았다.

    호텔 내외부 데이터에 따르면 겨울에 부산에 오는 첫째 이유는 겨울바다를 보기 위해서다. 그 다음은 힐링(healing), 즉 쉬러 오는 관광객이 많았다. 손님들은 호텔 앞 해변 정도만 다녀올 뿐 대부분의 시간을 실내에서 보냈다.

    따라서 파라다이스부산은 스파 시설을 바다를 콘셉트로 한 힐링 공간으로 꾸미기로 했다. 건식 사우나를 가까이 놓은 것도 추운 날에 스파를 이용하기 좋게 하기 위해서다. 최근 가족 단위 관광객이 증가하고 스파와 식도락을 함께 즐기는 트렌드가 확산된다는 점을 고려해 키즈 공간과 스파 내 식음료 서비스를 갖췄다.

    본관 지하 1층에 소니와 제휴해 플레이스테이션 존(Play Station Zone)을 꾸민 것도 겨울 손님들의 발길을 잡기 위해서다. 여기서는 레이싱카, 골프, 야구, 3D 게임 등 다양한 비디오게임을 즐길 수 있다. 여은주 전략추진실 마케팅홍보파트 차장은 “동절기엔 부산과 경남 등 인근 지역에서 오는 손님 비중이 증가하는 것이 데이터로 나타났다”며 “따라서 동절기 프로모션은 부산 인근 지역에 좀 더 중점을 둔다”고 말했다.

    자유여행자 잡아라

    “들리는 얘기나 감(感)에 의존하지 말라.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객관화된 데이터에 근거해 판단하라.”

    빅 데이터 활용 ‘감성 서비스’ 디자인
    “서비스는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하는 것이다. 고객 경험과 감성에 초점을 맞춰라.”

    파라다이스부산의 경영지침을 요약하자면 위와 같다. 이 같은 전략을 중시하는 것은 사업을 성장시키려면 FIT(Free Independent Traveller·자유여행자를 뜻하는 호텔 용어), 즉 일반고객 시장을 확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벡스코(Bexco) 개관 이후 비즈니스 행사가 증가했다 하더라도 이 분야는 경기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따라서 독자적인 경쟁력을 갖추려면 전체 고객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일반고객을 계속 늘려나가야 하는 것이다.

    체계적인 데이터 축적과 활용을 위해 파라다이스부산은 2010년부터 전산 시스템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고객에 대해 이 호텔이 수집하는 데이터는 이렇다. 어떤 타입의 객실을 선호하고, 동행 인원은 몇 명이고 누구인지, 며칠을 머무는지 등은 기본이다. 숙박 며칠 전에 예약하는지, 무얼 타고 오는지, 어떤 메뉴를 선호하는지 등도 전산에 기록한다. 어떤 불만을 제기했는지도 기록에 남는다. 레스토랑 직원들은 손님이 몇 시에 누구와 와서 무엇을 주문했는지, 특별히 부탁했다거나 어떤 평가를 남겼는지를 컴퓨터에 입력한다.

    이런 상세한 고객 정보 관리에 대해 여 차장은 “로컬 호텔은 자체적으로 마케팅 능력을 키울 수밖에 없는 입장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체인호텔들은 본사에서 고객이나 상품 트렌드에 대한 정보를 받고 체인끼리 비슷한 상품을 내놓지만, ‘기댈 언덕’이 없는 토종 호텔은 스스로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마케팅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확보된 데이터는 개별 고객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도 쓰이고, 고객 니즈에 맞는 상품을 개발하는 데도 활용된다. 손님들이 보통 투숙 며칠 전에 예약하는지, 며칠간 머무는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상품 출시 시기나 상품 내용을 정확히 설정할 수 있다. 파라다이스부산은 보통 1000명 이상의 고객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해 시즌별 타깃별 패키지 상품을 고안한다. 같은 동절기라도 12월에는 연인이, 1~2월에는 가족이 주로 온다는 점도 데이터에서 나왔다.

    상품 내용이나 마케팅 언어는 ‘감성’에 기초해 구성된다. 요즘 손님들은 호텔에 ‘자러’ 가지 않고 ‘놀러’ 가는 트렌드에 맞추기 위해서다. 호텔이 휴식과 레저, 문화를 즐기는 공간으로 소비되는 것. 그래서 파라다이스부산의 패키지 상품은 이름부터 ‘미인들의 수다’ ‘4일간의 행복’ ‘야마하와 함께 하는 재즈 스파’ 등으로 경험과 감성을 강조한다.

    파라다이스부산은 자사 홈페이지를 이들 상품의 주요 판매처로 활용한다. 여 차장은 “온라인 여행사에서는 가격경쟁이 심하다”며 “우리는 상품 자체의 가치에서 경쟁력을 갖고자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패키지 상품을 통해 할인 대신 티 라운즈 서비스, 뷰 업그레이드 등 추가 서비스를 제공한다. 즉, 깎아주기보다는 덤을 얹어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자 친구들끼리의 여행에 맞춘 ‘미인들의 수다’ 패키지에서는 야식 룸서비스를 제공하고 보드게임이나 파티 용품을 대여한다.

    빅 데이터 활용 ‘감성 서비스’ 디자인

    본관 지하1층에 마련된 플레이스테이션존. 가족이 함께 즐길 만한 게임도 구비되어 있다.



    빅 데이터 활용 ‘감성 서비스’ 디자인
    이런 전략도 데이터 분석이 기초가 됐다. 데이터를 통해 온라인 여행사에서 상품을 구매하더라도 해당 호텔 홈페이지를 방문하는 패턴을 읽은 것이다. 따라서 파라다이스부산은 호텔 홈페이지에 접속한 고객이 그 자리에서 예약하게 하기 위해 고객이 실시간으로 예약 가능한 상품이나 룸 타입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또 홈페이지에 호텔 블로그나 페이스북 등을 연계해 상품 정보나 리뷰 등을 편리하게 확인해볼 수 있도록 했다.

    이런 패키지 상품으로 파라다이스부산은 이 지역 FIT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 올해는 경기침체의 여파로 작년과 달리 선박 명명식 같은 대형 비즈니스 행사가 급감했음에도 파라다이스부산의 10월 매출은 전년 대비 감소하지 않았다. 객실 예약을 담당하는 강지숙 계장은 “패키지 상품의 판매 호조로 일반고객이 1000실가량 증가했다”고 귀띔했다.

    파라다이스부산이 여타 호텔들이 시도하지 않는 ‘특이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데이터에서 그 실마리를 찾았다. 대표적인 것이 KTX역 수하물 서비스와 운동화 대여 서비스다.

    파라다이스부산은 손님의 30%가 KTX를 타고 부산을 찾는다는 점, 정오에 체크아웃한 뒤 오후 6~7시에 KTX에 탑승하는 패턴이 나타난다는 점에 착안해 부산역에 ‘레일데스크’를 설치했다.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레일데스크에 짐을 맡긴 후 이곳저곳 다닌 뒤 호텔에 오면 짐이 이미 와 있다. 체크아웃 할 때도 호텔에 짐을 맡기면 부산역에서 짐을 찾을 수 있다.

    We’ the Service Designer

    또 정장 차림의 비즈니스 고객들이 해운대 해변을 산책하고 싶어 한다는 점에 착안해 운동화 80벌을 갖추고 대여해주고 있다. 이 서비스는 특히 외국인들에게 반응이 좋다고 한다. 전시기획사 투웨이컴즈의 이미옥 대표는 “일본인 부부 고객을 파라다이스부산에 묵게 하고 나는 해외 출장을 갔는데, ‘운동화 빌려 신고 해변을 걷고 있는데 다시 신혼부부가 된 기분이다. 감사하다’며 국제전화를 걸어왔다”고 전했다. 이 서비스의 반응이 좋게 나오자 파라다이스부산은 아예 트레이닝복과 양말까지 대여해주고 있다.

    마케팅뿐만 아니라 서비스 활동의 근간도 데이터다. ‘우리는 서비스 디자이너(We’ the Service Designer)’라는 슬로건하에 직원들은 각각의 메뉴 레시피를 전산상에 기록하고, 손잡이 하나도 언제 달았는지, 교체 시기는 언제인지 역시 컴퓨터에 입력한다. 신승혜 US Army 과장은 “어느 식당이 맛있었는지 얘기한 걸 기억해 다음에 올 때 그 식당에 예약해주는 등 고객 개개인에게 신경을 많이 쓴다는 느낌을 받은 덕에 업무차 이 호텔을 즐겨 애용한다”고 말했다.

    파라다이스부산은 세계적인 호텔만 가입한다는 ‘The Leading Hotels of the World’에 국내에서는 신라호텔에 이어 두 번째로 가입했다. 2011년 암행 평가 점수는 87.6점. 이인배 총지배인은 “평균점수가 80.1점이었는데, 우리 호텔은 객실 부문과 식음료 부문에서 90점 이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우리는 절대 데이터를 내다버리지 않는다.”

    빅 데이터를 가장 잘 활용한 기업으로 평가받는 아마존닷컴의 창업주 제프 베조스(Jeff Bezos)가 한 말이다. 파라다이스부산 역시 “고객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축적해 활용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만이 가질 수 있는 경쟁력”이라는 공감대를 갖고 앞으로도 데이터 관리 시스템에 지속적으로 투자해나갈 계획이다.

    그 일환으로 최근에는 국내 호텔 중 최초로 CTI(Computer Telephony Integration)를 구축했다. 이는 고객이 전화를 걸면 그 번호에 해당하는 고객 데이터를 상담 직원의 컴퓨터 화면에 자동으로 띄워주는 시스템이다. 권은준 전략추진실장은 “현재 고객의 문의, 평가, 불만사항 등 정성 데이터를 정량화하는 작업에 착수했다”며 “객관적 데이터에 기초해 섬세하게 디자인한 감성적인 서비스로 토종 호텔의 자존심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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