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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 세계 평정한 ‘미국식 자본주의 요리사’

스티븐 슈워츠먼 블랙스톤 회장

  • 하정민│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dew@donga.com

사모펀드 세계 평정한 ‘미국식 자본주의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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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의 블랙스톤은 작고 보잘것없었다. 창업 당시 자본금은 40만 달러에 불과했고 두 창업자를 제외한 직원이 2명이었다. 최대 경쟁자인 KKR은 블랙스톤보다 20여 년 먼저 창업했고 RJR 나비스코 인수라는 초대형 거래를 성사시키는 등 질주를 거듭하고 있었다.

후발주자인 블랙스톤은 KKR의 강점인 LBO에 섣불리 도전하지 않았다. 그 대신 부동산,헤지펀드, 부실기업 등 투자 대상을 다변화했고,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모하다고 여겨질 만큼 공격적인 입찰가격을 제시해 경쟁자를 물리쳤다. 덕분에 KKR보다 늦게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블랙스톤의 운용자산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블랙스톤이 상장한 2007년에 이미 운용자산이 830억 달러에 달해 KKR의 2배에 육박했고 현재 운용자산은 1370억 달러가 넘는다. 2010년 사업보고서에서 밝힌 창립 후 연평균 수익률은 25%에 달한다.

슈워츠먼은 어릴 때부터 ‘월가의 새로운 황제’가 될 만한 기질을 보였다. 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고 무슨 일이든 시작하면 악착같이 물고 늘어질 정도로 승부 근성이 남달랐다. 그는 15세 때 소규모 잡화점 운영에 만족하는 아버지에게 “상점을 계속 늘려야 한다”고 독려했다. 학창 시절에는 167cm라는 단신을 극복하기 위해 고난도의 농구 기술과 전술을 연마했다.

“먹잇감을 전멸시켜라”

슈워츠먼의 이 같은 승부 근성은 블랙스톤 설립 당시에도 발휘됐다. 그는 처음부터 10억 달러짜리 대형 펀드를 조성하려 했지만 동업자 피터슨은 20분의 1인 5000만 달러짜리 펀드 조성을 제안했다. 둘은 애초에 스케일이 달랐다. 이렇게 탄생한 첫 펀드의 규모는 8300만 달러였지만 슈워츠먼의 승부사 기질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준다.



1980년대 말 저축대부조합위기(S·L Crisis), 1990년대 말 닷컴버블 등으로 미국의 거대 기업이 속속 무너진 것은 블랙스톤에 큰 호재였다. 이 기간 블랙스톤은 100여 개의 유망 기업 인수에 참여했다. 부동산 인수합병의 귀재인 헨리 실버먼과 손잡고 부동산 투자에도 뛰어들었다. 재간접펀드, 메자닌펀드 등 다양한 형태의 펀드에 투자하고 유럽지사를 설립해 해외 기업에도 손을 뻗쳤다.

금융위기 이전 세계 금융시장이 최고 호황을 누리던 2000년대 중반에는 바이오멧, 힐튼호텔, 선가드, 닐슨 등 대형업체들의 인수전을 주도하며 세계 금융시장과 산업계의 큰손으로 부상했다. 슈워츠먼은 2004년 독일 화학기업인 셀라니스를 인수할 때도 승부욕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처음 그는 셀라니스 측에 주당 17달러를 인수가로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러자 이를 떨어뜨리기는커녕 오히려 주당 24달러로 대폭 올렸다. 그래도 거절당하자 28달러, 32달러까지 인수가를 높이더니 결국 주당 32.50달러에 셀라니스를 손에 넣었다. 이후 블랙스톤은 6배의 차익을 남기고 셀라니스를 되팔았다.

2006년 9월에는 당시 세계 최대 휴대전화용 반도체 제조업체인 프리스케일 세미컨덕터 인수를 놓고 업계 최대 라이벌인 KKR과 격돌했다. KKR이 먼저 프리스케일에 시장 가격의 2배에 가까운 파격적인 인수가를 제안했다. 슈워츠먼은 곧바로 KKR보다 8억 달러 많은 176억 달러를 제시해 프리스케일을 사들였다. 당시 그는 프리스케일 이사회에서 “24시간 안에 결정을 지으라”며 이사진을 강하게 압박했다.

2007년 2월 블랙스톤은 미국 최대 오피스 빌딩 소유업체인 에쿼티오피스 프라퍼티를 두고 부동산 신탁회사 보나도 리얼티 트러스트와 맞붙었다. 블랙스톤이 먼저 에쿼티오피스를 인수하기로 하고 계약 성사 일보 직전 단계까지 갔지만 보나도의 추격도 끈질겼다. 슈워츠먼은 이때도 입찰가격을 계속 올리는 한편 에쿼티오피스에 “우리가 맺은 계약에 따라 블랙스톤이 인수하지 않으면 당신은 우리에게 막대한 계약 파기 보상금을 물어야 한다”고 위협했다. 에쿼티오피스가 빠져나갈 수 없게 퇴로를 차단한 셈이다. 당시 블랙스톤은 에쿼티오피스 인수에 실패해도 보상금으로만 7억2000만 달러를 벌 수 있었다. 블랙스톤은 결국 보나도를 물리치고 389억 달러에 에쿼티오피스를 인수했다.

사모펀드 세계 평정한 ‘미국식 자본주의 요리사’
돈은 ‘존재의 이유’

압권은 인수 직후다. 슈워츠먼은 인수 계약서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에쿼티오피스가 보유한 알짜 자산인 130억 달러짜리 빌딩을 팔아치웠다. 그 자리에서 인수금의 3분의 1을 회수한 것이다.

이런 예에서 보듯 슈워츠먼은 먹잇감을 발견하면 일격을 가하고 ‘전멸(kill off)’시켜야 직성이 풀리는 공격적 성향을 갖고 있다. 그가 “나는 소소한 전투를 계속 벌이기보다 대전을 원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블랙스톤은 2007년 6월 사모펀드 회사 중 처음으로 뉴욕 증권거래소(NYSE)에 입성한다. 블랙스톤은 기업공개(IPO)를 통해 당시 IPO 금액 중 최대 규모인 41억 달러(약 4조5510억 원)를 조달했다. 블랙스톤은 이 돈을 바탕으로 더 많은 기업을 사들여 덩치와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었다. 22년 전 블랙스톤이 불과 40만 달러로 출발한 점을 감안할 때 엄청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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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민│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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