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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중앙은행장들의 총명한 스승

스탠리 피셔 미 연준 부의장

  • 하정민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dew@donga.com

세계 중앙은행장들의 총명한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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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로 재직하며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 의장 등 수많은 후학을 길러냈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부총재 시절에는 세계 각국의 외환위기를 수습하며 1997년 한국의 구제금융을 진두지휘했다. 세계 1위 금융회사였던 씨티그룹 부회장도 지냈고 2005년에는 사상 최초로 외국인 신분을 지닌 채 한 나라의 중앙은행 총재가 되는 진기록도 세웠다. 세계 최고의 경제정책 전문가로 유명한 스탠리 피셔 미 연준 부의장이다.
세계 중앙은행장들의 총명한 스승

2012년 2월 스탠리 피셔 당시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가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경제 분야의 경쟁력 강화에 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101년 미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 역사상 가장 파워풀한 부의장” “세계 각국 중앙은행장의 아버지”“세계에서 가장 경험이 많은 경제정책 전문가”“연준에 뜬 환상의 팀(Great Te-am)”….

2014년 1월 10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스탠리 피셔(71) 전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 겸 전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부총재를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의 부의장으로 지명한 후 세계 언론이 내린 평가다. 지난해 10월 사상 최초로 여성인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이 미 중앙은행 수장(首長)으로 뽑혔을 때의 주목과 관심 못지않다. 대체 피셔가 어떤 인물이기에 이렇게 호평 일색일까.

피셔 부의장 발탁은 여러 측면에서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우선 그의 화려한 이력과 탄탄한 인적 네트워크가 지니는 중량감은 그야말로 독보적이다. 피셔 부의장은 학계, 업계, 관계, 국제금융계를 두루 거치며 각각의 분야에서 눈부신 커리어를 쌓았다. 1973년부터 1988년, 1990년부터 1994년까지 두 차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한 그는 이곳에서 벤 버냉키 전 미 연준 의장,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로런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 올리비에 블랑사르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 등 현재 세계경제계를 주름잡는 인물들을 길러냈다. 여기에 피셔 부의장 본인까지 현역으로 복귀함에 따라 “MIT 학파가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한다”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세계은행 이코노미스트와 IMF 수석 부총재도 역임한 피셔 부의장은 IMF 재직 시절 한국과도 남다른 인연을 맺었다. 그는 1997년 외환위기를 맞은 한국은 물론 인도네시아, 멕시코, 브라질 등의 구제금융을 주도하며 고금리와 뼈를 깎는 경제 구조조정 등을 요구해 ‘IMF의 저승사자’로 이름을 떨쳤다. 많은 언론은 이때 ‘신흥국 전문가’로 명성을 날린 그의 이력이 연준의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 정책으로 큰 타격을 입은 아르헨티나, 터키, 인도네시아, 인도 등 주요 신흥국과의 소통에도 장점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블룸버그통신은 “금융위기 후 국가 간 통화정책 공조가 중요해지면서 국제 감각은 중앙은행 임원의 매우 중요한 덕목으로 떠올랐다”고 분석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피셔는 경제학자로서의 능력은 물론 세계 각국 중앙은행 임원에게 갈수록 중요해지는 능력, 즉 외교 감각과 정치력까지 겸비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때 벤 버냉키 의장의 후임자로도 거론되던 그가 연준 부의장이 되자 일각에서는 ‘옐런 의장-피셔 부의장’ 조합에 우려의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피셔 부의장은 옐런 의장보다 세 살 많은 데다, 학계 경험이 대부분인 옐런 의장과 달리 정관계 경험도 훨씬 풍부하다. 특히 경기 부양과 일자리 창출을 중시하는 비둘기파 성향의 옐런 의장과 달리 물가 상승을 우려하는 매파 성향이라는 점에서 두 사람의 충돌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상당하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옐런-피셔’ 팀이 호흡을 잘 맞출 것이라는 기대감이 더 크다. 일단 그를 부의장으로 천거한 사람이 옐런 의장 본인이라는 점,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이던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맞아 주요국 중 가장 먼저 금리를 내렸을 정도로 유연한 통화정책을 구사한다는 점, 전 세계 중앙은행 총재나 재무장관 등과의 교분이 돈독하다는 점 때문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피셔와 옐런이 ‘그레이트 팀(Great Team)’을 이룰 것으로 확신한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1913년 설립된 101년 역사의 연준 사상 가장 존재감 있는 2인자인 피셔 부의장은 테이퍼링 충격으로 들썩이는 미국과 세계경제를 잘 다독일 수 있을까.

유대인 출신 경제학자

피셔 부의장은 1943년 10월 북로디지아(지금의 잠비아)의 마자부카에서 유대인 후손으로 태어났다. 이곳에는 아프리카에서 보기 드문 1200명 규모의 조그만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다. 다만 대부분의 주민이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이스라엘, 남아프리카공화국, 영국 등으로 떠나면서 현재는 공동체가 사실상 해체된 상태. 피셔 부의장 역시 13세이던 1956년 가족을 따라 남로디지아(지금의 짐바브웨)로 이주했다.

피셔 부의장이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본격적으로 눈뜬 것은 1960년 이스라엘을 처음 방문했을 때다. 한 키부츠에서 열린 여름캠프에 참석한 그는 이스라엘 생활에 매료돼 예루살렘 헤브루대 진학을 꿈꿀 정도였다. 하지만 영국의 명문 런던정경대(LSE)에서 장학생 제안이 들어오자 이를 포기하고 영국으로 가 본격적인 경제학자의 길을 걷는다.

LSE에서 경제학으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딴 그는 미국으로 적을 옮긴다. 1969년에는 MIT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는다. 당시 그의 지도교수는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고(故) 폴 새뮤얼슨 교수. 이후 4년간 시카고대에서 조교수로 활동한 피셔는 1973년 모교 MIT의 교수가 됐다. 이때부터 그가 길러낸 제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1976년에는 미국 시민권도 취득해 정식 미국인이 된다.

피셔 부의장의 경제학과 제자는 아니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현 이스라엘 총리도 1977년 MIT 슬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를 땄다. 이때 인연을 맺은 피셔 부의장과 네타냐후 총리는 이후 남다른 친분을 쌓았다. 2005년 피셔가 거액 연봉이 보장되는 씨티은행 부회장직을 내던지고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가 된 것도 당시 재무장관이던 네타냐후의 설득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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