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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 대한민국 건설의 최전선을 가다

“초고층빌딩, 예술 건축물도 우리 없으면 불가능했죠”

(주)해성기공 문일섭 대표

  • 최호열 기자 │honeypapa@donga.com

“초고층빌딩, 예술 건축물도 우리 없으면 불가능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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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송도ATT, 새빛둥둥섬, 아부다비공항 관제탑…
  • ● 저가 수주 경쟁 싫어 해외시장 개척
  • ● 원도급사 채무, 하도급사에 덤터기…외담대 개선 필요
  • ‘건설산업’ 하면 대형 종합건설업체를 떠올린다. 하지만 대형건설사로부터 공종별로 하도급을 받아 건설 현장의 최일선에서 실제 시공하는 ‘전문건설업계’야말로 우리나라 건설산업을 실질적으로 떠받치는 주역이라 하겠다. 대표적인 전문건설업체를 찾아 우리나라 전문건설 기술의 우수성을 살펴보고, 그들의 애환을 통해 건설업계의 구조적 문제점을 짚어보면서 대안을 모색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초고층빌딩, 예술 건축물도 우리 없으면 불가능했죠”
우리나라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오른 인천 송도 동북아무역센터를 보면 ‘어떻게 저렇게 만들 수 있지?’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난다. 높이도 높이지만, 여느 고층건물과는 외형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한강 반포대교 남단에 새로 들어선 새빛둥둥섬도 마찬가지다.

철골구조물은 구조물의 형상(곡선이나 아치 같은)을 자유자재로 변형하기 쉽고, 고층빌딩 시공 시 공기를 단축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초고층빌딩이나 특이한 디자인의 건축물은 대부분 철골구조로 뼈대를 세운다. 대형 경기장, 공항터미널, 발전소 등도 마찬가지다.

(주)해성기공은 이런 철골구조물을 생산, 시공하는 강구조물(steel structure) 전문건설업체다. 철골 제조와 시공을 합쳐 지난해 16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동종 업계에서 1, 2위 규모다. 일본 등 해외시장까지 진출한 우리나라 강구조업계의 대표 기업이라 할 수 있다.

문일섭(67) 해성기공 회장은 스무 살에 일용직 근로자로 시작해 철골업계 일인자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40년 넘게 한길을 걸어온 철골업계의 산증인이기도 한 그는 지난 1월 강구조물공사업협의회 회장으로 추대됐다.

“시골에서 농사짓다 기술을 배우겠다고 서울로 올라왔는데, 처음 한 일이 철골이었다. 당시는 오함마(대형 망치)로 철골을 자르는 등 모든 일을 사람 손으로 다했다. 선배 기술자들을 보며 이 업계에서 1등이 되겠다고 결심했는데, 그 꿈을 이룬 셈이다.”

강구조물 외길 인생

1971년 보성공업사를 창업한 문 회장은 해성기공을 인수하면서 1983년 (주)해성기공으로 재창립했다. 건설 경기가 호황이던 시절이라 회사는 쑥쑥 성장했다. 그는 돈을 버는 대로 전부 재투자했다. 다른 업종으로 눈길을 돌리지도 않았고, 종합건설회사를 만드는 등 몸집을 부풀리려 하지도 않았다. 오직 철골업계 한길을 걸었다.

“1992년 인천 검단공단에 강구조업계 최초로 기계자동화라인을 갖춘 대형공장을 세웠다. 우리 공장을 본 다른 기업들이 우리를 모델 삼아 비로소 자동화라인을 갖추기 시작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검단공장으로는 부족했다. 1998년 충남 천안으로 공장을 확장 이전했다. 약 15만7000㎡(4만7000평) 부지에 공장 시설 4개를 세웠다. 이곳에서 연간 건축 분야 철골구조물 6만t과 토목 분야 강재 교량구조물 1만5000t을 생산한다. 천안공장은 1999년 건설교통부에서 시행하는 ‘철강구조물 제작공장 인증제’에서 전문건설업체로서는 처음으로 건축분야 1급 공장인증을 취득했다.

“천안공장을 준공하면서 고부가가치 파이프(PIPE) 구조물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인천공항터미널과 한강 새빛둥둥섬이 우리 파이프 구조물로 만든 것이다. 파이프 구조물 분야에서는 우리가 선두주자다.”

▼ 위기가 있었다면?

“위기는 늘 있다. 3, 4년에 한 번씩은 원청업체가 부도를 냈다. 특히 2000년 여러 원청업체로부터 연이어 부도를 맞았는데, 그 금액이 커서 회사의 존속까지 걱정할 정도였다. 대형건설사는 부도를 내면 정부에서 국고로 지원해준다. 그런데 정작 부도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하도급업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원도 하지 않는다. 죽으란 이야기다.”

▼ 어떻게 위기를 극복했나.

“무리하게 외부 차입을 하지 않는 등 보수적인 경영을 한 게 컸다. 당시 진행하던 인천국제공항터미널 공사로 겨우 버틸 수 있었다. 또한 문학월드컵경기장, 인천대교 등 사회간접시설 공사를 수주하며 생산기술 및 품질 수준을 한층 높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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