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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재계3세 집중탐구

냉·온탕 담금질하며 ‘그룹 재건’ 전력투구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사장

  • 배수강 기자 | bsk@donga.com

냉·온탕 담금질하며 ‘그룹 재건’ 전력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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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할아버지 회사, 반드시 살려내겠다”
  • ● ‘고난의 행군’으로 워크아웃 졸업
  • ● 스킨십 경영, 겸손·소탈 리더십 호평
  • ● “그룹은 아직 생사 갈림길…보람 찾을 겨를 없다”
냉·온탕 담금질하며 ‘그룹 재건’ 전력투구
박세창(41) 금호타이어 부사장은 금호가(家) 3세 중 맏형이지만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불혹(不惑)을 갓 넘긴 신진이기도 하거니와, 최근 들어 다른 그룹의 ‘손위’ 3세 경영인들이 적극적으로 자기 색깔을 내는 것과 달리 금호의 부침(浮沈) 속에서 그저 묵묵히 제 일을 해왔기 때문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창립한 고(故) 박인천 창업주는 슬하에 5남3녀를 뒀다. 박세창 부사장의 아버지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3남,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4남이다. 금호가의 3세 중 아들은 장손 박재영 씨(46·박인천 창업주의 장남인 故 박성용 2대 회장의 맏아들)와 박 부사장, 38세 동갑인 박철완(차남 박정구 3대 회장의 아들)·박준경(4남 박찬구 회장의 아들) 금호석유화학 상무다.

장손 박재영 씨가 2009년 금호 계열사 지분을 모두 팔고 미국으로 건너가 박 부사장은 그룹 3세의 맏형이 됐다. 부친 박삼구 회장이 그룹을 경영하고 있는 만큼 재계 서열 25위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유력 후계자이기도 하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한때 두산그룹처럼 박삼구·찬구 회장의 ‘형제 경영’이 이뤄졌지만, 인수합병을 둘러싼 갈등으로 현재는 금호아시아나(금호산업, 금호타이어, 아시아나항공)와 금호석유화학으로 ‘사실상’ 계열분리가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그룹은 격랑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박세창 부사장에게 지난 5년은 ‘고난의 행군’이었다. 그룹 전략경영본부에서 2010년 워크아웃에 돌입한 금호타이어의 영업본부장(상무)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그는 회사를 살려내야 하는 지상명령을 실천할 구심점이 돼야 했다.

비싼 수업료

2009년 12월 채권단 관리를 선언하고 이듬해 금호타이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개시 결정이 내려졌지만, 채권단을 설득하지 못하면 워크아웃은 물 건너 갈 수도 있던 상황. 회사를 어떻게 살릴지를 설명하면서 그는 “할아버지의 피와 땀이 서린 금호타이어를 반드시 살려내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당시 제시한 조건은 ‘90% 원금보장, 10% 출자전환’. 보기 드문 ‘원금보장’ 약속과 “목숨 걸고 살려내겠다”는 36세 청년의 진정성에 채권단은 “일단 믿어보자”며 도장을 찍었다. 박 부사장은 2010년 워크아웃에 돌입하던 상황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채권단은 ‘우리도 이만큼 희생할 테니 너희는 경영으로 보답하라’고 했다. 그러니 우리로서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할 수밖에 없었다. 채권단 분들도 고생 많으셨지만, 돌이켜 보면 워크아웃 졸업을 위해 우린 정말 뼈를 깎는 노력을 했다.

금호그룹은 2006년 대우건설(6조6000억 원)과 2008년 대한통운(4조1040억 원)을 인수하며 한때 재계 7위(자산규모 24조3000억 원)로 뛰어올랐지만, 인수금융과 대우건설 풋백옵션에 발목이 잡혔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유동성 위기이자, 인수합병(M·A) 주도 기업에 종종 따라붙는 이른바 ‘승자의 저주’였다. 결국 2009년 12월 경영정상화 계획을 발표하면서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는 워크아웃에 돌입했고, 금호석유화학과 아시아나항공은 자율협약에 들어갔다. 유동성 위기를 부른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은 다시 매각됐다.

채권단의 동의를 받은 만큼 박 부사장뿐 아니라 모든 임직원은 신발끈을 동여매야 했다. 2009년 당시 회사는 매출액 1조8900억 원, 영업이익 -2135억 원, 당기순이익 -7762억 원, 부채비율이 3636%였다. 워크아웃 시기도 정해져 있어 전력투구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회사의 역량을 모두 투입하는 ‘공격 경영’ 속에, 박 부사장은 먼저 영업 대리점주의 어려움과 요청 사항을 직접 듣고 문제를 푸는 ‘현장 스킨십’을 통해 ‘무조건’ 매출과 영업이익을 끌어올려야 했다.

격납고 PT, 경기장 PT

그는 2011년 특화유통점 ‘타이어 프로’를 앞세워 전국을 돌면서 대리점 정책 설명회를 열었고, 2012년에는 국내외를 총괄하는 영업부사장이 돼 북미, 유럽, 중국 등 국내외 업무를 직접 챙겼다. 당시만 해도 신제품 설명회 프레젠테이션(PT)은 연구소나 제품 관련 부서가 주로 맡았지만, 박 부사장은 신제품이 나오면 직접 PT에 나서 업계의 관심을 끌었다. 재계 관계자는 그때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박 부사장이 직접 PT를 한 것은 오너 일가가 신제품의 품질을 책임진다는 의미도 있었고, 임직원의 본보기가 되는 효과도 있었다. 2012년 신제품 PT는 인천국제공항 격납고에서 했는데, 젊은 나이(38세)에 부담이 컸을 텐데도 진지하고 자신 있는 모습으로 PT를 했다. 그때는 허리띠 졸라매고 워크아웃 졸업하려고 애쓰던 때라 신제품 출시로 영업이익 수직 상승을 고대했다. 직원 모두가 이심전심으로 응원한 기억이 난다.”

그해 설명회장에서 박 부사장은 신제품 ‘에코윙 S’를 소개한 뒤 “금호타이어 품질은 최고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며 ‘최고품질’ 선언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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