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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기의 살맛나는 경제

52시간 근로시간 단축

‘저속기어’ 하는 삶을 향해

  • | 김용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 ykimatajou@gmail.com

52시간 근로시간 단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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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선 ‘21시간 노동’ 주장도

런던 소재 싱크탱크 신경제재단(New Economics Foundation)의 수석연구위원 안나 쿠테는 ‘주당 노동시간 단축이 필요한 10가지 이유’를 통해 노동자의 건강과 노동생산성 향상 등 알려진 이유 외에도,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남녀 간 평등을 도모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 여성이 남성에 비해 많은 시간을 무급 가사노동 등에 쏟고 있는데, 주당 노동시간을 단축할 경우 일을 둘러싼 성별 역할에 대한 태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남성의 유급 노동이 줄고, 여성의 그것은 늘려 사회 전체적으로 유급 대비 무급 노동의 비중이 같아지면,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로 간주돼온 무급 노동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종일 탁아의 경우 부모가 분담해 아이를 돌보면 비용 부담이 줄고, 은퇴 후 갑작스러운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충격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 봤다. 정년 때까지 장기 노동에 시달리다가 갑자기 은퇴해 할 일도, 그에 따른 보수도 잃어버릴 경우 심각한 충격이 올 수 있고, 그것이 종종 병과 조기 사망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신경제재단은 현재 40시간 기준의 주당 노동시간을 21시간으로 축소하자고 주장한다. 그럴 경우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로, 실업, 과소비, 환경오염, 낮은 복지 등의 문제를 해결하고, 상호 배려와 삶의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21시간은 현재 영국의 유급 노동시간 전부를 노동가능인구(신경제재단은 남성의 경우 15~64세, 여성은 15~59세 인구 전부로 규정)로 나눈 숫자다. 

OECD 통계에 따르면 현재 영국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유급 노동시간/전체 취업자 수)은 1676시간으로 취업자 1인당 연평균 주당 32.23시간을 일한다. 취업자 수에 실업자를 더한 게 경제활동인구이며, 여기에 비경제활동인구(취업자와 실업자를 제외한 나머지 15세 이상 인구)를 더하면 노동가능인구가 된다. 영국의 전체 유급 노동을 노동가능인구로 나누면 21시간에 근접한다. 영국의 주당 평균 무급 노동(대표적인 게 육아를 포함한 가사노동) 시간도 21시간 언저리에 있다. 

되도록이면 21시간 언저리에 유급 노동시간을 맞춤으로써, 현재 40시간 이상 노동하는 남성 근로자의 경우 유급 노동시간을 절반으로 줄이고 나머지 시간을 육아나 요리 등 무급 노동을 할 수 있도록 한다. 나아가 현재 40시간 이상 무급 노동을 하는 가정주부의 무급 노동을 줄이고 21시간 정도의 유급 노동에 나서게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할 경우 노동에 대한 성별 역할이 차별적이지 않게 되고, 무급 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달라질 것이다. 현재의 전체 유급 노동시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남녀 간, 장기근로자와 단기근로자(실업자 포함)의 유급 노동시간을 잘 나누기만 해도 사회는 확실히 변하게 된다는 것이다.




대공황 시절, 켈로그의 ‘앞선’ 실험

미국 시리얼 회사 켈로그의 소유주 W.K.켈로그는 1930년대 말 공장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주당 6시간 노동 실험에 나서 크게 성공했다. [Wikimedia commous]

미국 시리얼 회사 켈로그의 소유주 W.K.켈로그는 1930년대 말 공장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주당 6시간 노동 실험에 나서 크게 성공했다. [Wikimedia commous]

역사적으로 보면 이미 1930년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자신의 짧은 글 ‘우리 손자시대의 경제적 가능성’에서 현재의 생산성 향상을 감안할 때 향후 100년이 지나면 기본적인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노동시간은 주당 15시간이면 충분할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철학자 버틀란드 러셀 또한 1932년 저작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임금소득자가 하루 4시간을 일하면 충분히 생활할 수 있고, 실업 또한 없을 것이라 전망했다. 

노동법이 19세기 중반에 최초로 마련됐을 때 그 주요한 목적은 유아 노동을 줄이는 것이었다. 1919년 ILO는 첫 번째 협약에서 주당 노동시간을 48시간으로 제한했다. 노르웨이는 이미 이때 주당 법정 최장 근로시간을 48시간으로 규정했다. 당시 ILO 협약은 제조업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고, ILO는 1930년 30호 협약에 이르러서 48시간 노동의 원칙을 상업과 사무직 노동자에게까지 확대했다. 그리고 1935년 47호 협약을 통해 주당 노동시간의 40시간 기준 원칙을 천명했다. 

노동생산성 증가로 여가시간이 늘어나고 노동시간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실현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소비주의를 꼽는다. 더글라스 맥그레거는 ‘Y 이론’을 통해 욕구가 무한정하다는 가설하에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인간은 더욱 많은 일을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자 내부에서도 소비를 위해 소득을 늘리려 하고, 이에 따라 여가가 확대되는 것을 경계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유럽보다는 특히 미국에서 그러했다. 

미국은 유럽에 비해 노동시간이 긴 나라지만, 미국에서도 일부 혁신적인 기업가에 의해 하루 6시간 노동 원칙이 천명되고 유지된 적이 있다. 시리얼을 만드는 회사 켈로그에서의 일이다. 대공황이 시작되던 1930년 말, 미국 켈로그의 소유주 W. K. 켈로그는 당시 켈로그 사장 루이스 J 브라운의 제안을 받아들여 시리얼 공장의 근무 형태를 기존 3교대 8시간에서 4교대 6시간으로 바꿨다. 교대 조 하나가 통째로 새로 만들어지자 지역의 해고 노동자와 실업자에게 새 일자리가 주어졌다.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어려움은 노사가 분담했다. 노동자들은 주급이 다소 줄어드는 것을 받아들였고, 경영진은 총비용의 증가를 감수했다. 시간당 임금을 인상하고 고용자 수를 늘린 결과 경영진은 비용의 증가를 피할 수 없었다. 경영진은 하루 6시간 노동 시행과 동시에 시간당 임금을 12.5% 인상했고, 다음 해에 다시 12.5%를 올렸다. 

켈로그의 6시간 실험이 성공했을까?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실험 5년 후 켈로그 생산 라인의 취업자 수는 39% 증가했고, 공장 내 재해도 41% 줄었다. 결근율은 51%나 감소했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5년 후 단위당 노동비용이 오히려 10% 감소했다는 사실이다. 켈로그의 이윤은? 이전보다 2배 증가했다. 

켈로그의 실험은 이후 소유주 켈로그가 회사 경영권을 시카고 은행가 출신 W.H. 밴더플뢰그(Vanderploeg)로 넘기면서 소멸의 길로 접어들었지만, 켈로그 노동자들은 일부 생산 라인에서나마 6시간 노동제를 1985년까지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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