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호

영국정치의 저력 보여준 6일간의 총선

  • 전원경│작가 winniejeon@hotmail.com│

    입력2010-06-04 09: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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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슬란드 화산재가 유럽 상공에서 물러날 즈음, 영국은 선거 열기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3년 전 선거를 치르지 않고 총리직을 물려받았던 고든 브라운과 집안·학벌·인물 어느 하나 흠잡을 데 없는 보수당 당수 데이비드 캐머런, 식상한 양자택일 구도에 새 바람을 몰고 온 닉 클렉 자유민주당 당수가 경합을 벌인 선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흥미진진하게 진행됐다. 한 달여 선거과정과 깔끔한 마무리는 영국의 오랜 의회주의 전통을 실감케 했다.
    영국정치의 저력 보여준 6일간의 총선

    영국 총리 겸 노동당 당수였던 고든 브라운. 최근 총선 패배 책임을 지고 공직에서 사퇴했다.

    별다른 뉴스거리가 없어서 늘 심심한 영국 언론이 오랜만에 부산해졌다. 4월 내내 각종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선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 사건의 여파가 제법 심각했다. 화산재가 전 유럽 상공을 뒤덮는 바람에 유럽을 오가는 항공기 운항이 금지된 4월 셋째 주가 하필 영국의 부활절 휴가 막바지였기 때문이다. 아이슬란드 화산이 폭발했을 때는 적잖은 영국인이 스페인이나 북아프리카 등 남쪽으로 휴가 여행을 떠난 상태였다. 그리고 이들이 막 집으로 돌아올 무렵인 4월15일 목요일부터 유럽의 공항들이 일제히 폐쇄된 것이다. 그 결과로 부활절 휴가와 방학이 끝난 후에도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직장인과 학생들이 속출했다. 특히 전통적으로 영국인들이 좋아하는 휴양지 스페인에 발이 묶인 사람이 많았다. 영국 정부는 군함 3척을 스페인으로 급파해 스페인에 모여 있는 아프간 파병 영국군과 민간인들을 대거 런던으로 실어오는 사상 초유의 ‘작전’을 펼쳤다.

    영국의 뉴스, 특히 BBC 뉴스는 테러나 사망사고 같은 사건이 아니면 대체로 유쾌하게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 뉴스를 심각하게 보도하기보다 영국인 특유의 블랙유머를 섞어 보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수만 명의 영국인이 갈 곳을 잃고 해외의 공항과 거리를 떠돌고 있는 와중에도 BBC 뉴스 화면에서는 소풍이라도 다녀온 것처럼, 군함 뱃머리에 나란히 앉아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드는 군인과 민간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비행기 대신 렌터카와 배와 기차를 타고 3박4일 동안 영국으로 달려온 여행객은 “아이고, 영국인이 이 정도 어려움이야 극복 못하겠습니까?”하고 함박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사실 이 사상 초유의 항공 대란은 우리 집에도 약간의, 아니 적잖은 파장을 남기고 갔다. 영국에서 열리는 학회에 출장 왔다가 글래스고에 들른 남편이 그만 일주일이나 발이 묶여버린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집에 머물러 있는 동안 남편은 한 시간에 한 번씩 공항 상황을 체크하며 초조해서 어쩔 줄 몰라 했지만, 아이들은 “화산이 한 달쯤 계속 터졌으면 좋겠다”며 그 상황을 즐겼다. 딸 희원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남편을 본 희원이 친구 엄마들은 “어머, 희원이 아빠가 화산재 때문에 한국에 못 가고 희원이네 가족이랑 같이 있더군” “나도 희원이 아빠 봤어. 요즘 희원이 엄마가 그래서 좀 편하겠네” 하면서 유치원 문 앞에서 신나게 이야기꽃을 피웠다. 세계 어디나 아줌마들의 화젯거리는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바꿀 때가 됐다”

    영국정치의 저력 보여준 6일간의 총선

    영국의 신임 총리가 된 데이비드 캐머런 보수당 당수.

    우여곡절 끝에 남편은 일주일 뒤 비행기표를 간신히 구해 한국으로 돌아가고, 독일과 스페인, 방콕과 모로코 휴양지에 발이 묶여 있던 영국인들도 하나 둘 돌아오면서 사상 초유의 항공 대란은 잠잠해졌다.



    항공 대란이 잠잠해지기도 전, 영국은 선거 열기에 들썩이기 시작했다. 4월6일 고든 브라운 총리는 총리공관인 다우닝가 10번지에 모여든 노동당 내각 멤버들 앞에서, 한 달 후인 5월6일에 영국 총리선거를 실시하겠다고 선언했다. 진짜 선거운동 기간은 한 달에 불과했지만 이미 올해 초부터 영국은 총리선거 무드에 휩싸여 있었다. 그리고 BBC를 비롯한 대부분의 영국 언론이 주저 없이 차기 총리로 데이비드 캐머런 보수당 당수를 지목했다.

    내각제인 영국의 총리 선출 방식은 매우 간단하다. 총 650석인 하원의원(MP·Member of Parliament) 선거를 실시해서, 하원의 과반수인 326석 이상을 차지한 정당이 집권 내각을 구성한다. 그리고 승리한 당의 당수가 총리가 되는 것이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를 한 번에 해치우는 셈이다. 그리고 내각의 모든 멤버는 하원의원으로 구성된다. 자연히 권력은 내각에 집중된다. 재미있게도 집권당에 내분이 일어나 당수가 바뀌면 선거 없이 총리가 바뀔 수도 있다. 현 고든 브라운 총리가 바로 이런 경우다. 1997년 노동당의 대선 승리로 집권한 토니 블레어 총리 겸 노동당수가 2007년 노동당의 정책 실패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서, 정권의 2인자였던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Chancellor)이 당수 경선에서 승리해 총리 자리에 올랐다.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되기 전, 아니 올해 초부터 영국의 여론은 ‘올해 안에 총리가 바뀔 것’이라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매일 저녁 10시부터 방영되는 BBC 뉴스를 빠짐없이 보는데, 뉴스를 보고 있으면 현 총리가 고든 브라운인지, 데이비드 캐머런인지 헛갈릴 정도로 영국 언론이 입을 모아 캐머런과 보수당을 지지했다. 여론이 보수당 쪽으로 움직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바꿀 때’가 됐다는 점이다. 300년 이상 양당내각제를 유지해온 영국인의 균형감각은 한 정당이 오래 집권하면 본능적으로 다른 쪽 정당으로 기운다. 노동당은 1997년 이래 13년째 집권하고 있는 상황이다. 영국 유권자들의 ‘내각제 DNA’가 ‘이젠 바꿀 때’라는 여론으로 수렴된 건 어쩌면 당연한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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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닉 클렉 자유민주당 당수.

    영국의 정론지들 중 ‘더 타임스’와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전통적으로 보수당을, 그리고 ‘가디언’은 노동당을 지지한다. 반면 ‘인디펜던트’는 이름 그대로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며, BBC TV 역시 중도적이다. 그런데 올해 들어 유독 ‘가디언’을 제외한 주요 언론이 일제히 보수당과 캐머런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노동당의 정책 실패에도 그 이유가 있겠지만, 언론이 보수당을 지지한 근본적인 이유는 영국인의 뿌리 깊은 균형감각 때문인 듯싶다.

    노동당 내각의 실정(失政)도 여론몰이에 한몫을 한 게 사실이다. 2008년 이래 세계적인 경기 불황이 시작되면서 영국인들은 새삼 고든 브라운 총리에게 기대감을 가졌다. 고든 브라운은 토니 블레어 정부에서 10년 이상 재무장관을 지내면서 영국의 경기를 줄기차게 호황으로 이끈 유능한 재정전문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유능한 경제전문가라고 해도 세계적인 경기 불황을 되돌릴 능력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점을 이해 못하는 영국인도 아니었다. 영국인이 분통을 터뜨린 것은 세계적 불황 중에서도 영국의 경기 침체가 유독 심각하게 전개됐기 때문이다. 영국 경기는 지난 6분기 연속 침체를 기록했고 이젠 정부의 재정적자 폭까지 늘어나는 등, 영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파운드화 환율도 최근 1년 사이 30% 가까이 하락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참을성 많은 영국인들도 “브라운이 한 게 뭐냐”며 총리를 탓하게 됐다. 더욱이 고든 브라운은 선거를 통해 총리가 된 게 아니라 노동당수가 되면서 총리 자리를 계승한 경우라 대중적 지지 기반도 약했다.

    ‘엄친아’냐 ‘제3의 선택’이냐

    사실 고든 브라운은 뚱한 표정에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전형적인 중산층 영국 남자 스타일이다. 그에 반해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은 그야말로 ‘잘생긴 훈남’이다.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인 데다가 훤칠한 미남이고 연설도 잘한다(영국에서 연설 솜씨는 정치가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구나 이튼스쿨-옥스퍼드로 이어지는 최고의 학벌에, 윌리엄 4세 왕의 핏줄을 이어받은 명문가 출신이다. 가문, 학벌, 인물 등 뭐 하나 빠지는 구석이 없다. 심지어 옥스퍼드 대학도 우등생으로 졸업했다. 너무나 완벽한 나머지 서민에게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처음 의회에 입성한 지 불과 4년 만인 2005년에 서른아홉의 나이로 일약 보수당 당수 자리에 오른 것도 그만큼 흠을 찾기 어려운 신예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캐머런은 2001년 옥스퍼드셔에서 하원의원으로 처음 당선됐다).

    영국정치의 저력 보여준 6일간의 총선

    보수당의 2인자 조지 오스본.

    보수당의 ‘뉴 페이스’는 캐머런뿐만이 아니다. 내각제인 영국에서 야당은 집권할 미래를 대비해서 미리 ‘그림자 내각(Shadow Cabinet)’을 구성해둔다. 이 그림자 내각에서 정권의 2인자 역할인 재무장관을 맡고 있는 조지 오스본은 1971년생이니 영국 나이로 따지면 이제 겨우 서른여덟이다. 역시 옥스퍼드대학 출신인 오스본은 14대 오스본 준남작의 장남이니 진짜 귀족에다 억만장자이고, 부인 역시 남작집안의 딸이다. 한마디로 보수당 내각의 핵심인물들은 최고의 가문에 최고의 학벌을 자랑하는 준수한 남자들이다.

    사실 나는 이들의 너무나 말끔하고 미끈한 모습에 오히려 거부감이 든다. 물론 능력 있고 잘생긴 게 흠이 될 수는 없지만, 저렇게 귀하게 자란 부잣집 자제들이 총리와 재무장관이 되면 노동자 계급의 어려움을 헤아려주기나 할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영국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계급제가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영국사회에는 ‘정치는 상류층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동안 보수당 내각의 핵심인물들이 대부분 가문과 학벌이 빼어났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그에 비하면 글래스고의 목사님 댁 장남으로 공립학교를 나와 에든버러 대학을 졸업한 고든 브라운은 서민적이기는 하지만, 캐머런에 비해 개인적 매력이 상당히 부족한 편이다.

    아무튼 영국의 여론은 선거운동이 본격화되기 전까지 확연히 보수당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런데 막상 선거운동이 시작되자 의외의 사태가 벌어졌다. 노동당, 보수당에 이은 제3당인 자유민주당(Liberal Democrat)의 당수 닉 클렉의 인기가 치솟은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영국은 사상 최초로 TV 토론을 실시했는데, 이 토론을 구성할 때만 해도 제3당인 자유민주당의 당수가 포함되느냐 마느냐 하는 얘기가 나왔을 정도로 닉 클렉은 무명에 가까운 정치인이었다. 그런데 막상 TV 토론에 나선 닉 클렉의 모습은 단연 발군이었다. 너무도 완벽하고 미끈해서 약간의 거부감을 주는 캐머런이나, 뚱한 모습에 지나치게 낮은 음성인 브라운에 비하면 산뜻하고도 신선한 외모에 차분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클렉의 모습은 영국인들에게 양당제 외에 다른 선택의 길도 있음을 깨닫게 해줬다. 사실 영국인 중에는 ‘노동당도 싫고 보수당도 싫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노동당은 13년이나 집권을 했으니 이제 내각을 물려줄 때가 됐고, 보수당은 런던이나 잉글랜드 남부의 중상류층 위주의 정책을 펼 테니 싫다는 것이다(정말로 선거 결과를 보면 영국도 지역색이 확연하다. 런던과 잉글랜드 남부는 보수당, 잉글랜드 북부와 스코틀랜드는 노동당이 꽉 잡고 있다). 이런 유권자들에게 닉 클렉은 ‘제3의 선택’이 있음을 호소했고, 그 호소는 확연하게 먹혀들어갔다.

    노동당과 마이크의 악연

    거기에 더해 선거가 열흘도 남지 않은 4월28일, 노동당에 치명적인 사건이 터졌다. 이날 고든 브라운 총리는 맨체스터에서 선거운동을 하다 질리안 더피라는 예순이 넘은 여성 유권자와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물론 사전에 선거운동팀이 주선한 ‘유권자와의 대화’였고 취재진도 따라붙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뚱한 표정의 할머니는 브라운 총리를 만나자마자 대뜸 “요즘 이 동네에 폴란드 사람이 너무 많다”며 “왜 영국 사람들도 못 받는 혜택을 동유럽 이민자들이 받아야 하냐”며 따지듯 물었다. 브라운은 적당히 할머니를 달래고 웃으며 대화를 마쳤으나, 할머니의 어처구니없는 질문에 상당히 ‘열을 받았던’ 모양이다. 그는 차에 올라타 비서에게 말했다. “이건 완전 재앙이야. 누가 저 여자 섭외했어? 다시는 이런 거 하지 마. 고집쟁이 여편네(Bigo-ted woman) 같으니.”

    문제는 차 안에서 이 대화를 나눌 때 브라운이 옷깃에 꽂고 있던 TV 인터뷰용 마이크를 깜박 잊고 끄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고집쟁이 여편네’라는 브라운의 푸념이 그대로 BBC로 흘러갔고, BBC는 이 사실을 그대로 보도했을 뿐만 아니라 질리안 할머니에게 “브라운 총리가 당신을 고집쟁이라고 평가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묻기까지 했다. 브라운 총리가 뒤늦게 질리안 할머니를 찾아가 40분이나 사과하는 걸로 해프닝이 일단락되었지만, 노동자 계층의 지지를 받고 있는 노동당으로서는 ‘총리가 노동자 계급 유권자를 무시했다’는 사실이 뼈아픈 실책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경제 불황으로 허덕이는 영국의 현 상황에서 동유럽 이민자와 불법이민자 문제는 중요한 선거 이슈 중 하나다. 현재 영국에는 불법이민자를 제외하고도 일자리를 찾아 이민 온 유럽연합 국가의 국민이 적지 않다. 영국은 유럽연합의 일원이기 때문에 이들의 이민을 제한할 방법이 없다. 특히 폴란드 사람들은 유창한 영어실력과 성실한 태도로 영국에서 정착률이 높은 동유럽 국민으로 손꼽힌다. 희원이의 유치원 친구 중에도 한나라는 폴란드 친구가 있다. 한나의 아버지 마치는 전기기술자인데 스코틀랜드에 이민 온 지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서 영국 사람과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완벽한 영어를 구사한다. 그러니 영국 실업자들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의 일자리를 뺏어가는 폴란드 사람들이 달가울 리 없다. 보수당은 불법과 합법을 막론하고 이민자들에 대해 강경 정책을 고수하는 반면, 노동당과 자유당은 상대적으로 유연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질리안 할머니처럼 “동유럽 사람들 다 쫓아내야 돼, 그 사람들이 우리 아들, 손자 일자리 뺏어가잖아” 하고 불만을 갖는 노인들은 노동당 정부에 불만이 많다. 이런 분위기에서 참으로 미묘한 사건이 터진 셈이다.

    이 사건에 대해 ‘더 타임스’를 비롯한 신문들은 “과연 총리의 푸념이 그토록 크게 보도할 만한 사건이었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내 연구실 동료인 앤디는 “이건 어느 당을 지지하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선거에 대한 언론의 보도가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흐르고 있다는 증거”라고 한탄했다. 영화과 박사과정 친구인 에이미 역시 “아니, 그 할머니는 진짜 고집쟁이 맞더라. 이민자들이 영국인들이 받을 혜택을 뺏어간다는 말이 대체 대꾸할 가치나 있는 거야? 폴란드 사람들이 영국에서 잘사는 건 폴란드 사람들이라서가 아니라 성실하고 유능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하며 흥분했다(에이미는 아일랜드 사람이다. 아무래도 외국인인 만큼, 이런 문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아무튼 블레어 전 총리도 그 옛날 부시 전 미 대통령과의 사적인 대화가 그대로 마이크로 흘러나가는 바람에 곤욕을 치른 적이 있는데, 노동당과 TV 마이크는 뿌리 깊은 악연이라도 있는 모양이다.

    선거 직전에 세 번째로 열린 BBC의 후보 토론 직후, 자유민주당 닉 클렉 당수의 지지도는 28%까지 올라가 보수당 캐머런(33%)의 뒤를 바짝 쫓았다. 브라운의 선호도는 27%에 불과했다. 언론은 17세기 후반 이래 300년 이상 이어져온 양당제가 이번 선거에서 무너질 것인가 하는 우려 반 기대 반의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자, 과연 영국 정치에 신선한 바람이 불어올 것인가? 대학의 영국 친구들은 대부분 노동당이나 자유민주당에 투표하겠다고 말했다. 이쯤 되니 사실 선거 결과와 큰 상관이 없는 나 역시 슬슬 궁금증이 일었다.

    300년 이어온 양당제

    그러나 막상 선거가 치러지자 또 한 번의 반전이 일어났다. ‘황색 돌풍(자유민주당의 색깔은 노란색, 보수당은 파란색, 노동당은 빨간색이다)’을 예상한 언론 보도와 달리, 자유민주당의 의석은 겨우 57석에 그쳤다. 지난 2005년 총선 때보다 오히려 5석이나 잃은 결과였다. 보수당은 307석, 노동당은 258석으로 아무 당도 하원의 과반 이상을 차지하지 못했다. 하원의석 수는 650석이기 때문에 326석 이상을 차지한 당이 내각을 구성할 권리가 있는데 어떤 당도 이 과반수를 넘기지 못한 것이다.

    선거 전부터 어떤 당도 하원의 과반을 차지하는 못하는 ‘헝 팔리아먼트(Hung Parliament)’의 출현이 예상되고 있었지만, 자유민주당의 결과는 정말 예상 외였다. 역시 영국인들은 전통의 양당제를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유권자들이 닉 클렉에게 호감을 느낀 것은 분명 사실이었지만 영국인의 뿌리 깊은 특성, 즉 변화를 기피하는 성향은 ‘토리(Tory, 보수당의 별칭)도 레이버(Labour, 노동당)도 아닌’ 제3의 당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건 1600년대 후반 이후로 줄기차게 이어져온 양당제를 포기하는 일이니 말이다.

    헝 팔리아먼트

    선거 전부터 전문가들은 ‘헝 팔리아먼트가 되면 노동당과 자유민주당이 연정을 구성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었다. 그러나 선거 결과를 보니, 노동당과 자유민주당의 의석 수를 합해도 315석으로 과반인 326석에 미치지 못했다. 두 당이 연정을 구성해도 내각을 조각할 권한은 없는 셈이다. 선거 다음 날, 침통한 표정으로 기자들 앞에 선 닉 클렉은 “일단 보수당과 연정 구상을 협상하겠다. 과반은 차지하지 못했으나 국민은 보수당을 선택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선거 전까지 닉 클렉을 ‘믿을 수 없는 사람’ ‘정책에 대한 아무 비전도 없다’고 맹공하던 보수당 측은 이런 닉 클렉의 제안에 반색했지만, 막상 협상을 시작하고 보니 세금, 복지, 외교, 이민 등 정책 곳곳에서 보수당과 자유민주당의 색깔은 너무도 달랐다. BBC 뉴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교육 부문 지출을 늘리자고 주장하는 점만 빼면 두 당의 정책은 모두 다른’ 지경이어서 협상은 영 지지부진했다.

    선거 사흘 후인 5월9일까지 협상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10일 노련한 정객 고든 브라운 총리가 초강수를 던졌다. ‘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고 노동당 당수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는 곧 연정 구상과 상관없이 총리 자리에서도 물러난다는 뜻이다. 다시금 노동당-자유민주당 연정안이 힘을 얻었고, 군소 정당 중 하나인 스코틀랜드 국민당(SNP)까지 이에 가세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11일 오전에는 데이빗 밀리밴드 외무부장관이 브라운 총리 뒤를 이어 노동당 당수를 맡을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자유민주당이 실제로 노동당과 접촉했다는 사실마저 밝혀졌다. 세 명의 후보가 아닌 ‘제4의 인물’이 총리가 되고 노동당이 정권 유지에 성공하는 극적 드라마가 실현되나 싶었다. 그러나 영국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원리원칙이었다. 닉 클렉의 말대로 ‘국민이 보수당을 선택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고, 이를 무시하는 연정 구상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세 정객의 진검 승부

    11일 오후, 고든 브라운은 총리 퇴임을 선언하고 곧바로 다우닝가 10번지를 떠났다. 보수당과 자유민주당의 협상이 타결된 것이다. 부랴부랴 버킹엄궁에 들어가 여왕을 알현한 데이비드 캐머런은 다우닝가 10번지 앞의 공터에서 연설문도 심지어 연단도 없이 ‘여왕께서 총리직을 맡아 새 내각을 구성해줄 것을 부탁하셨고 황공한 마음으로 이를 받아들였다’는 총리 수락 연설을 했다.

    장장 6일에 걸친 선거는 이렇게 캐머런의 승리로 막을 내렸지만 아직도 해결해야 할 문제는 적잖아 보인다. 정치색깔이 판이한 보수당과 자유민주당이 어떻게 내각 안에서 화합할 것인가라는 난제가 남은 것이다. 부총리를 맡게 될 닉 클렉이 보수당 위주의 내각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할지도 관심거리다. 영국 내각에서 원래 부총리는 실권이 거의 없다. 사실상의 부총리는 ‘챈슬러’로 불리는 재무장관이기 때문이다.

    영국정치의 저력 보여준 6일간의 총선
    전원경

    1970년 출생

    연세대, 런던 시티대 대학원(석사) 졸업

    월간 ‘객석’, ‘주간동아’ 기자

    저서 : ‘영국: 바꾸지 않아도 행복한 나라’ ‘짧은 영광, 그래서 더 슬픈 영혼’ ‘역사가 된 남자’ 등

    現 영국 글래스고대 문화정책 전공 박사과정 재학 중


    그러나 이런 모든 문제보다도 내게 이번 선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세 정객의 진검승부, 그리고 패배자의 깨끗한 승복이었다. 11일 오후 고든 브라운은 “내 인생에서 두 번째로 중요했던 직업을 그만두어야 할 순간이 왔다. 이제는 내게 가장 소중한 직업인 아버지와 남편의 위치에 충실하겠다”고 기자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그러고는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의 손을 잡고 재무장관 10년, 총리 3년으로 통산 13년을 보냈던 다우닝가를 떠났다(재무장관은 총리 관저 옆 건물인 다우닝가 11번지를 관저로 사용한다. 이는 내각의 2인자가 재무장관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띠기도 한다). ‘철의 재무장관 (Iron Chancellor)’이라고 불리며 영국의 한 시대를 이끈 고든 브라운, 전임자인 토니 블레어 총리처럼 화려한 언변이나 대중을 사로잡는 카리스마는 없었지만 성실하고 우직한 태도와 굳건한 신념으로 21세기의 영국을 이끌었던 한 인물이 역사의 한 페이지로 퇴장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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