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호

다큐멘터리 사진가 양종훈 - 등산

빨리 빨리? 비스타리 비스타리!

  • 글·구미화 기자 mhkoo@donga.com / 사진·김형우 기자 free217@donga.com

    입력2007-07-04 14: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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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년 킬리만자로를 등반하고 돌아온 그는 카메라에서 전혀 기억에 없는 사진들을 발견했다. 의식이 견뎌내지 못한 극한 상황에서조차 절경을 놓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카메라 셔터를 누른 것이다.
    • 그가 꾸준히 운동을 하는 것은 이처럼 의식보다 더 강한 체력을 만들기 위해서다. 그래야 운명이 손짓할 때 주저 않고 카메라를 들고 나설 테니까.
    다큐멘터리 사진가 양종훈 - 등산
    양종훈(梁淙勛·46) 상명대 영상학부 교수는 ‘위험한’ 인물이다. 1년에 한 번꼴로 작품집을 내고 사진전을 여는데, 그러기 위해 수없이 사선을 넘나든다. 2004년 21세기 첫 신생국 동티모르를 카메라에 담았고, 2005년 장애우들과 함께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를 올랐다. 작년엔 에이즈가 창궐한 스와질랜드를 헤집고 다녔는가 하면, 지난 봄엔 히말라야를 등반했다.

    “3층짜리 건물 유리창 닦느니 63빌딩 유리창 닦는 게 낫죠. 위험한 공사가 이윤이 많이 남는 법이니까요.”

    우스갯소리 하듯 가볍게 넘기지만, 캠퍼스에 방학이 가까워오면 그는 또 어디론가 떠나야 할 것 같은 강한 이끌림을 느낀다.

    “그런 점에서 전 운명론자예요. 운명의 부름을 받으면 떠나야죠. 그러려면 체력이 뒷받침돼야 하기에 평소 꾸준히 운동하죠. 사진을 아무리 잘 찍어봤자 현장에 없으면 아무 소용없잖아요.”

    킬리만자로와 히말라야를 등반할 때 그는 일행보다 2배 이상 더 걸었다. 험난한 여정을 카메라로 기록하기 위해 간 길을 되돌아오고, 비경(秘境)을 최상의 구도로 촬영하기 위해 남이 안 가는 길을 가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일행의 고통과 감동을 생생하게 담아내기 위해선 그들이 쉴 때 그는 쉴 수 없었다. 산을 오르기만 한 게 아니라 오르락내리락한 덕분에 고산증으로 고생하진 않았지만, 누구보다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다.



    다큐멘터리 사진가 양종훈 - 등산

    양종훈 교수는 종로구 신영동 CSH스포츠몰에서 매일 두어 시간씩 운동한다. 러닝머신과 스테퍼를 주로 이용하고, 요가와 골프도 배운다.

    양 교수는 평일엔 상명대에서 멀지 않은 신영동의 헬스클럽에서 두어 시간씩 운동하고, 토요일과 일요일엔 어김없이 산을 오른다. 얼마 전부터 함께 등산하는 이들이 있는데, 일명 ‘운우회(雲雨會)’ 회원. ‘운우회’는 지난해 킬리만자로 등반을 함께 한 인사들과 올해 히말라야에 함께 간 인사들이 모여 만든 등산모임으로 산악등반가 엄홍길, 소설가 박범신, 한철호 에델바이스 사장, 김병기 지오인터랙티브 사장, 전하진 전 한글과컴퓨터 사장 등이 멤버다.

    “이렇게 평소에 체력을 단련해놓으면 힘든 여정의 막판에 빛을 발해요. 더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은 최후의 순간에 쓰러지지 않고, 남은 힘으로 목표 달성의 기쁨을 누리죠.”

    열심히 준비했다는 자체가 버티는 힘이 된다. 준비가 덜 되면 그렇게 오기 부리기 힘들다. 그가 더 힘든 곳, 더 위험한 곳을 찾는 열정은, 일상화된 준비에서 비롯된다.

    그는 킬리만자로와 히말라야를 다녀온 후 북한산을 오르는 게 훨씬 편해졌다고 한다. 해발 5000m 넘는 고지에 올라섰으니 북한산쯤은 너무 싱거운가.

    다큐멘터리 사진가 양종훈 - 등산

    그는 같은 대학 이대웅 교수(디지털미디어학부), 김희정 교수(작곡과)와 함께 학교 앞 와인바를 즐겨 찾는다.(좌) 벼랑 끝을 걸을 때 사람은 똑바로 서지 못한다. 낭떠러지 반대 방향으로 몸이 자꾸 기운다. 그리고 해발 3000m 이상을 오르면 안 하던 짓을 한다. 대자연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작고 약한 존재인가. 등산을 하면 체력은 강인해지고, 생각은 한없이 유연해진다.



    다큐멘터리 사진가 양종훈 - 등산

    북한산 아래 두부요릿집에서 시장기를 달랜다.(우)

    “히말라야에 가면 현지인들이 ‘비스타리 비스타리’ 해요. 네팔어로 ‘천천히 천천히’란 뜻이래요. 산에서 성큼성큼 나아가면 빨리 갈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보폭을 작게 천천히 걷는 게 다리에 무리를 안 주면서 멀리, 빨리 갈 수 있죠. 산에 오를 땐 앞에 가는 사람 쫓아가려 해서도 안 돼요. 자기 페이스대로 가는 거죠. 박범신 선생이 그러더군요. 산의 정상은 하나가 아니라고. 남이 정해놓은 정상에 오르려고 안간힘 쓸 이유가 뭐 있습니까. 자기가 정한 정상까지 이르면 되죠.”

    그는 요즘 오후 2시경 산에 오른다. 3~4시간 산에 머물고 대여섯 시쯤 하산하면 독불장군 같던 태양도 유순해져 적당히 그늘을 드리우기에 더없이 기분이 좋다고 한다. 산을 내려와서는 어김없이 두부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단골식당을 찾는다. 시장이 반찬이요, 편안한 분위기에서 입에 맞는 음식을 먹는 것이 최상의 건강식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상명대, 헬스장, 두부요릿집, 그리고 그의 집이 모두 가까운 거리에 모여 있다. 그는 지방에 있는 산보다 북한산, 인왕산, 도봉산, 청계산 같은 서울시내 산들을 주로 오르는데, 가까이 있어 굳이 큰맘 먹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웰빙하려면 생활반경이 좁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좁은 생활반경 안에 와인바도 있다. 상명대 정문에서 멀지 않은 ‘그랑끌루’. 1층 와인숍에서 와인을 고른 다음, 지하 카페에 내려가 마실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양 교수는 호주산 ‘쉬라즈’, 칠레산 ‘산타모니카 2004’와 ‘에스쿠도 로조’를 즐겨 마시는데 ‘가격대비 맛이 좋다’는 게 이유다.

    양 교수는 침묵이 어색하지 않은, 따뜻한 동료 교수들과 그랑끌루에서 자신의 꿈을 이야기한다. 휴머니즘이 담긴 다큐멘터리 사진을 유엔사무국에서 전시하는 것.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계속해서 자신을 단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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