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호

41년간 ‘안전한 약’…갑자기 ‘부작용 많다’ 말 바꾸기

정부 사전피임약 병의원 처방 추진의 불편한 진실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12-07-24 11: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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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년간 ‘안전한 약’…갑자기 ‘부작용 많다’ 말 바꾸기

    7월 4일 국회 보건복지위 남윤인순(민주통합당·위 사진) 의원실과 여성단체 주최로 열린 ‘여성의 결정권과 건강권 측면에서 본 피임약 재분류 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 여성단체와 학계 대표들은 “피임약 재분류 결정의 주체는 여성이며 사전피임약의 전문의약품 전환은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7월 중순 어느 커피 전문점에서 있었던 일이다. 인근 회사의 부장과 직원 관계인 듯한 여성 2명이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목소리가 작지 않아 애써 엿듣지 않아도 자연스레 그 내용이 귀에 들어온다.

    “부장님 이야기 들었어요? 이제 먹는 피임약 사려면 산부인과 가야 한대요.”

    “어, 정말? 큰일 났네. 남편이 그거(콘돔) 싫어해서…. 미리 좀 사놓아야겠네. 언제부터래?”

    “8, 9월쯤 결정된다는데 벌써 약국에선 사재기가 시작됐대요.”

    “산부인과 가서 처방받으라면 누가 피임약 먹냐. 여자들이 산부인과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남자는 몰라. 혹 잘못 갔다가 오해라도 받으면 어쩌냐.”



    “그러게 말이에요. 저도 미리 좀 사두려고요. 남편이 자기만 일방적으로 피임하는 건 불공평하다 해서 (피임을) 몇 달 씩 번갈아서 하고 있거든요.”

    “약국에서 잘 팔던 걸 갑자기 왜 그런대?”

    “먹으면 안 되는 사람이 많고 부작용이 적지 않다는군요.”

    “참나, 그럼 나같이 거의 매달 먹는 사람은 뭐냐? 우리 엄마 때부터 먹던 약을 가지고 이제 와서….”

    이들이 사재기를 해야겠다고 하는 피임약은 성관계를 맺기 전에 미리 먹어 임신을 방지하는 경구용(먹는) 사전피임약을 가리킨다. 피임약의 주성분인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프로제스틴)이 난자의 생산 자체를 막거나 배란을 연기한다. 21일 동안 같은 시간에 약을 먹고 7일 쉬는 식으로 반복해서 먹으면 피임이 된다. 사전피임약에 대한 여성들의 쑥덕거림은 그동안 약국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었던 사전피임약을 식품의약품안전청(식약청)이 의사의 처방을 받아 먹도록 하는 안을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피임약 재분류 날 선 공방

    식약청은 6월 7일 일반의약품(약국 판매 일반약)으로 분류된 273개 약을 전문의약품(의사 처방 필수 전문약)으로 전환하고, 212개 전문약을 일반약으로 변경하는 의약품재분류안을 발표했다. 바로 이 재분류안에 지난 41년간 일반약이었던 사전피임약을 전문약으로 바꾸고 전문약이었던 긴급피임약(사후피임약, 응급피임약)을 일반약으로 돌리는 방침이 포함돼 있다. 식약청은 다른 약은 열람과 의견제출 과정을 거쳐 7월 말까지 안을 확정할 계획이지만 피임제에 대해서는 “과학적 판단뿐 아니라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며 확정 시기를 못 박지 않았다.

    긴급피임약은 사전피임약에 들어가는 두 가지 호르몬 중 프로제스틴의 용량을 단독으로 4~6배가량 늘린 것으로 성관계 후 72시간 안에 먹어야 피임이 되며, 빨리 먹으면 먹을수록 그 효과가 커진다. 배란 전에는 배란을 지연하거나 방해하고 수정이 됐을 경우에는 수정란의 자궁내막 착상을 막는다. 착상 전에 임신을 막는다는 점에서 ‘낙태약’은 아니다. 대다수 선진국에선 일반약으로 팔지만 우리나라는 2002년부터 전문약으로 지정돼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 살 수 있다. 식약청은 이 약을 이번에 일반약으로 변경키로 했다.

    피임약의 재분류안이 발표되자 여론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거의 모든 시민·사회·종교·이익단체가 반대하고 나섰다. 하지만 반대의 내용은 서로 달랐다. 일부 종교계와 낙태 반대 시민단체, 그리고 의사들(특히 산부인과)은 사전피임약의 전문약 전환에 대해선 찬성하면서 긴급피임약의 일반약 전환을 반대한다. 반면, 여성단체와 보건의료 관련 시민단체, 경실련, 대한약사회는 긴급피임약의 일반약 전환을 환영하면서 사전피임약의 전문약 변경에 대해 비판한다.

    그래서 전자들은 식약청에 긴급피임약이 전문약으로 남도록 의견을 냈고, 후자들은 사전피임약을 일반약으로 그대로 둘 것을 요구하고 있다. 6월 15일 식약청 주최로 열린 공청회에선 식약청의 피임약 재분류안를 두고 각 단체 간 난상토론이 벌어졌지만 팽팽한 신경전만 벌이다 끝내 접점을 찾지 못했다. 즉, 대한의사회를 비롯한 그룹은 사전이든 긴급이든 피임약은 모두 의사의 처방을 받도록 전문약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여성단체를 비롯한 그룹은 이 모두를 약국에서 소비자가 직접 살 수 있는 일반약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산부인과 혐오증

    41년간 ‘안전한 약’…갑자기 ‘부작용 많다’ 말 바꾸기

    일부 내과, 소아과에서 남성에게 발급한 긴급피임약 처방전.

    사전피임약은 1971년 국내 시판 당시부터 약국에서 팔기 시작했다. 세계적으로는 1960년 미국에서 전문약으로 첫 시판됐지만 최근 미국을 비롯한 각 나라에서 일반약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우리와는 상황이 정반대다. 정부는 1970년대 산아제한 시기에 콘돔 사용과 사전피임제 복용을 적극 홍보하고, 권장하기도 했다.

    식약청은 재분류안 발표 당시 보도자료를 통해 “사전피임제는 여성호르몬 수치에 영향을 미치고, 혈전증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으며, 투여 금기 및 신중 투여 대상이 많아 복용 이전에 의사와 상담 및 정기적 검진이 권장되는 의약품”이라고 밝혔다. 이런 식약청의 발표에 대해 대한의사협회는 “당연한 일”이라고 했고 대한산부인과의사회와 대한산부인과학회는 긴급피임약의 일반약 전환만을 집중적으로 비판했다.

    의협은 성명을 통해 “사전피임약의 전문약 전환으로 조제료를 더 많이 받게 되기 때문에 약사들은 반대할 명분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이득을 가장 많이 볼 이들은 의사다. 의사들의 초진 수가는 1만2890원인 데 반해, 약사의 조제료는 4020원에 불과하다. 더욱이 의사들은 없는 수입이 새로 생기는 것이지만 기존에 약국에서 사전피임약을 팔던 약사들은 전문약 전환으로 판매량이 떨어진다면 오히려 손해를 볼 수도 있다. 병의원에 들렀다 다시 약국에 가야 하는 불편함과 산부인과에 대한 여성의 뿌리 깊은 혐오증을 고려하면 판매량이 줄 것은 불 보듯 뻔한 상황. 대한약사회는 의원의 진료비와 약사의 조제료가 추가됨으로써 연간 환자부담액이 지금의 52억 원에서 230억 원으로 3.4배 늘 것으로 예상한다.

    말이 나온 김에 우리나라 여성들의 산부인과 혐오증이 어느 정도인지 터놓고 얘기해보자. ‘신동아’가 입수한 병의원 발행 긴급피임약 처방전에 따르면 산부인과도 아닌 일부 내과와 소아과 전문의들이 긴급피임약 N제품을 남성 환자에게 처방한 것으로 나타났다(사진 참조). 긴급피임약을 불법적으로 모아 팔려는 게 아니라면 임신을 걱정한 여성이 파트너 남성에게 긴급피임약을 처방받아오라고 시켰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남성에게 여성용 피임약을 처방하는 의사들도 문제지만 우리나라 여성들이 산부인과 가기를 얼마나 싫어하는지를 보여주는 한 단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의사도 “사전피임약은 일반약”

    식약청과 의협이 사전피임제의 전문약 전환을 요구하며 그 세부 근거로 내세운 것은 ‘심각한 부작용과 투여 금기 및 신중 투여 대상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흔한 부작용은 월경불순, 질 출혈, 구역, 구토 등이고 심각한 부작용은 혈전증이었다. 투여 금지 대상자는 유방암, 자궁내막암 환자나 이러한 질환이 의심되거나 병력이 있는 환자, 중증도 이상의 고혈압 및 간 장애 환자이고 신중 투여 대상은 심혈관계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40세 이상의 여성, 비만자, 고혈압 환자, 흡연자 등이었다. 하지만 식약청은 41년간 약국 판매를 통해 드러난 심각한 부작용의 사례와 통계를 공개하라는 각 단체들의 요구에 묵묵부답이다. 내놓을 자료가 없다는 뜻이다.

    더욱이 사전피임약의 전문약 전환에 이론적 근거를 대고 있는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정작 자신들의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피임약을 ‘건강한 여성이라면 누구나 먹을 수 있는 매우 안전한 약’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산부인과의사회 홈페이지에 있는 ‘피임·생리이야기’라는 홍보 코너에 들어가면 식약청의 주장을 완전히 뒤집는 내용이 이어진다. 식약청이 흔한 부작용이라고 지적한 증상은 몸의 적응과정이며 오히려 피임약을 장기복용하면 유방암, 자궁내막암의 발생을 줄여준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일부 여성에게서 발생하는 메스꺼움, 두통, 가슴 땅김, 불규칙한 출혈 등은 대개의 경우 발현 정도가 심하지 않고, 피임약의 복용 초기에 우리 몸이 적응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증상이다. 구토나 발진 등 심한 부작용을 겪으면 에스트로겐 함량이 낮은 피임약으로 바꾸면 된다. 2000년 이후 호르몬(에스트로겐)의 함량이 계속 낮아져 부작용이 완화됐다. 현재까지 피임약과 유방암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5개월 이상 복용하면 난소암은 40%, 자궁내막암은 50% 예방 효과가 있다. 5년 이상 먹으면 난소암의 발병률이 60%, 자궁내막암 발병률이 50% 감소하며 복용을 중단해도 최소 15년간 효과가 지속된다.’

    피임의 최고 전문가 집단이라고 자부하는 대한산부인과학회(제 50권 제11호)에 게재된 논문 ‘호르몬 피임약의 사용’에 따르면 식약청이 심각한 부작용으로 지적한 혈전증도 최근 피임약의 에스트로겐 함량이 줄어들면서 그 발병 가능성이 많이 낮아진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나온 결과들은 혈전색전증, 뇌졸중, 심혈관질환들에 대해 훨씬 낮은 위험도를 보이고 있다. 혈전증의 과거력, 혈관질환, 심혈관질환, 백혈병, 암, 심각한 외상 등을 앓은 전력이 없는 한 위험도가 높지 않다.’

    오히려 이 논문은 ‘고령의 여성, 정맥 혈전색전증의 과거력이 있거나, 임신 혹은 산후의 상태에 있는 여성, 비만, 수술, 비행기 여행 중인 여성, 혈액응고장애의 가족력이 있는 여성은 에스트로겐 호르몬 제제(사전피임약)의 복용이 여성의 정맥 혈전증의 위험도를 높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재분류 결정권은 여성에게 있다

    41년간 ‘안전한 약’…갑자기 ‘부작용 많다’ 말 바꾸기

    사전피임약이 부작용과 투여 금기 대상이 많아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돼야 한다는 주장을 정면 반박하는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홈페이지의 피임 홍보 코너.

    미국산부인과학회(ACOG)는 이렇듯 사전피임약에 부작용을 보이는 여성들은 긴급피임약인 프로제스틴 단독제제(POP 제제)를 쓰라고 권한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POP제제에 대해 “고용량 호르몬(프로제스틴)이 들어가 있어 안전성에 위험이 있다”며 전문약 유지를 주장하지만 POP제제는 미국 프랑스 등 선진국에선 변두리 약국에서도 쉽게 살 수 있는 일반약이며 그만큼 안전에 대한 자료가 널리 확보돼 있는 상태다. 비록 프로제스틴 호르몬이 사전피임약보다 4~6배 들어가 있지만 비상시 1회 사용하는 데다 구역, 구토, 부정 출혈 등 일부 부작용은 48시간 이내에 사라진다는 게 정설이다.

    산부인과의사회는 또한 “긴급피임약을 약국에서 팔 경우 환자들의 오남용 우려가 있고, 피임의 효과가 사전피임약보다 떨어져 결국 낙태(임신중절수술)가 늘어나고 무책임한 성 문화가 확산될 것”이라고 걱정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등의 조사로 이 모든 주장이 근거가 없음이 밝혀졌지만 언뜻 생각해도 앞뒤가 맞지 않고 황당한 주장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 달에 몇 번씩 긴급하게 응급피임약을 먹어야 하는 상황을 발생시킬 여성이 얼마나 있겠으며, 긴급피임약을 믿고 무책임한 성관계를 할 여성은 또 누가 있겠는가.

    사전피임약보다 피임 효과가 떨어진다는 주장도 억지다. 사전피임약 98~ 99%, 긴급피임약 95~96%로 그 차이는 미미하다. 따라서 이미 ‘일’이 벌어졌다면 빠른 시간 안에 가까운 약국을 찾아 정확한 복약지도를 받고 긴급피임약을 먹는 게 속수무책으로 기다리다 미혼모가 되거나 낙태수술을 강요당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여성에겐 유익하다. 도대체 산부인과 혐오증으로 인해 피임약을 피하며 의학적 근거도 전혀 없는 피임법을 고수하다 신세 망치는 여성들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41년간 ‘안전한 약’…갑자기 ‘부작용 많다’ 말 바꾸기


    답은 나와 있다. 사전이든 긴급이든 몸이 심하게 아팠거나 현재 아픈 사람은 병의원을 찾아 의사와 상담하고 진료를 받아 피임약을 먹고, 건강한 사람은 가까운 약국에서 제대로 된 복약지도를 받고 피임약을 먹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피임약 복용 여부의 결정권과 어디에서 살 것인지의 선택권이 식약청이나 의사, 약사에게 있는 게 아니라 임신과 출산의 주체인 여성에게 있다는 점이다. 여성·시민단체들이 식약청의 사전피임약 전문약 전환이 확정될 경우 헌법소원을 하겠다고 벼르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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