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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곤 박사의 ‘왕의 한의학’

‘정기(精氣)누설’ 일삼은 시대의 색골

광기의 남자 연산군

  •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한의학 박사

‘정기(精氣)누설’ 일삼은 시대의 색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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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精氣)누설’ 일삼은 시대의 색골

영화 ‘왕의 남자’에서 경복궁 근정전 내부에 연산군이 서 있는 장면.

조선 왕들 중 부모의 비참한 죽음을 알거나 목격한 사람은 3명이다. 연산군, 경종, 정조다.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 씨는 사약을 받고 일찍 세상을 떠났다. 경종의 어머니 장희빈은 인현왕후를 저주하다 사약을 받고 죽었다. 장희빈이 죽은 시점과 경종의 병력(病歷)이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그가 복용한 처방들은 간질을 치료하는 것이었다. 정조는 평생 화증(火症)에 시달려 인삼은 거의 입을 대지 못할 정도였다.

스코틀랜드의 정신과 의사 로널드 데이비드 랭은 광기를 이렇게 평했다. “광기는 정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돌파구다.” 조선왕조 역사상 성군(聖君)의 길을 가장 극렬히 역주행한 광기의 폭군으로 기록된 연산군, 그를 바라보는 좌표는 바로 어머니다. 연산군을 ‘있어선 안 됐던 임금’으로 매도하는 것보다 그의 광기를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이해하는 작업이야말로 ‘왕의 한의학’이 추구하는 지향점이 아닐까.

어머니와 아이 사이의 애착을 진화론적으로 설명한 이론가는 영국의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였던 존 보울비다. 그는 신생아는 완전히 무력하기에 생존을 보장받기 위해 어머니에게 애착을 느끼도록 미리 설정돼 있으며, 어머니와 아이를 떼어놓는 상황은 아이에게 불안감과 공포감을 형성한다고 규정했다. 연구 결과, 어머니가 결손된 아이들은 훨씬 거칠게 놀았고 과도하게 흥분할 때가 많았으며, 감동결여성 인격장애를 앓은 것으로 밝혀졌다.

동물실험에서도 이런 관점은 증명됐다. 미국 위스콘신대 심리학과 해리 할로 교수팀은 원숭이로 실험을 했다. 그때까지의 정설은 갓 태어난 새끼원숭이가 젖을 먹으려 어미에게 달라붙는다는 것이었다. 실험 결과 새끼원숭이는 엄마와의 ‘접촉’을 더욱 중요하게 여겼다. 온몸을 철사로 두르고 우유병을 든 가짜 원숭이와 젖병은 없지만 따뜻한 헝겊으로 몸을 감싼 가짜 원숭이를 우리에 놓아뒀다. 그러자 새끼원숭이들은 후자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그러나 헝겊 인형 대리모와 함께 있던 새끼원숭이들도 정상적인 원숭이로 크지는 못했다. 그 원숭이들은 우울했고, 다른 원숭이들과 친밀감을 느끼거나 교류하는 등의 행동을 발달시키지 못했다. 마치 자폐증에 걸린 것 같았다. 할로 교수는 그것이 부모와의 상호작용 부족 때문이란 걸 밝혀냈다. 중요한 건 엄마가 아기에게 반응하고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어머니의 부재와 불행

조선 제10대 왕 연산군(燕山君·1476∼1506, 재위 1494∼1506)은 폭군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폭군으로서 연산군의 행보는 이전부터 시작됐다. 일화를 보자. 성종이 세자인 연산군을 불러 다가가려 하는데, 난데없이 사슴 한 마리가 달려들어 세자의 옷과 손등을 핥아댔다. 세자는 사슴이 옷을 더럽힌 것에 화가 난 나머지 부왕이 보는 앞에서 사슴을 발길로 걷어찼다. 이 광경을 지켜본 성종은 화를 내며 세자를 꾸짖었다.

성종이 죽자 왕으로 등극한 연산군은 가장 먼저 그 사슴을 활로 쏘아 죽여버렸다. ‘조선왕조실록’은 이렇게 기록했다. “성종이 승하하자 왕은 상중에 있으면서도 서러워하는 빛이 없으며, 후원의 순록(馴鹿)을 쏘아 죽여 그 고기를 먹으며, 놀이 즐기기를 평일과 같이 하였다.”

연산군이 내린 형벌은 전례가 없는 잔인한 것들이었다. 손바닥 뚫기, 불에 달군 쇠로 당근질 하기, 가슴 빠개기, 뼈 바르기, 마디마디 자르기, 배 가르기, 뼈를 갈아 바람에 날리기 등의 이름이 붙어 있었다.

연산군이 특히 좋아한 유희는 탈놀이인 처용무다. 기록을 보자. “소혜왕후가 늘 왕의 행동이 무도함을 근심하니, 왕이 하루는 얼굴에 처용 탈을 쓰고 처용 옷차림으로 칼을 휘두르고 처용무를 추면서 앞으로 갔다. 그러자 소혜왕후는 크게 놀랐다.” “왕이 풍두무(?頭舞·풍두라는 탈을 쓰고 추는 춤)를 잘 췄으므로, 매양 궁중에서 스스로 가면을 쓰고 희롱하고 춤추면서 좋아하였으며, 사랑하는 계집 중에도 또 사내 무당놀이를 잘하는 자가 있었으므로, 모든 총애하는 계집과 흥청(興淸) 등을 데리고, 빈터에서 야제(夜祭)를 베풀었는데, 스스로 죽은 자의 말을 하면서 그 형상을 다하면 모든 사랑하는 계집들은 손을 모으고 시청하였다. 왕이 죽은 자의 우는 형상을 하면 모든 흥청도 또한 울어, 드디어 비감하여 통곡하고서 파하였다.”

흥청은 연산군 10년에 나라에서 모아들인 기녀를 말한다. 탈과 가면은 얼굴에 드러나는 표정이나 그로 인해 알아차릴 수 있는 마음속 인격체를 숨긴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어릴 적 마음의 상처를 입은 경우가 많다. 그때의 상처는 자기보호 기질을 발동시켜 스스로 마음을 닫게 한다. 종종 마음을 열 때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서둘러 자신을 꽁꽁 감추고 만다는 게 심리학적 분석이다. 연산군은 어쩌면 마음속 깊이 어머니의 부재와 불행을 느끼고 있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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