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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전문의 최명기의 남녀 본색

죽음을 부르는 열정과 섹스

치정살인, 이별살인, 동반자살…

  • 최명기 | 청담하버드심리센터 연구소장, ‘작은 상처가 더 아프다’ 저자 artppper@hanmail.net

죽음을 부르는 열정과 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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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사회는 평균수명 40세이던 석기시대가 아니다. 경제적, 인격적 능력만 갖추면 내게 맞는 이성과 맺어질 수 있다. 도시의 익명성 덕에 소문도 잊힌다. 그러니 제발 죽일 만큼 사랑하지 말자, 죽을 만큼 사랑하지도 말자, 함께 죽지도 말자.
죽음을 부르는 열정과 섹스

일러스트·김영민

어릴 때 영화 ‘카르멘’을 본 적이 있다. 순박한 군인 호세는 카르멘의 유혹에 넘어가 약혼녀를 버리고 위험한 사랑에 빠진다. 호세는 카르멘을 구하기 위해 감옥에 간다. 출옥한 뒤에는 카르멘을 좇아 범죄자들과 어울린다. 하지만 카르멘은 호세를 배신하고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카르멘이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조롱하는데 격분한 호세는 카르멘을 찔러 죽이고 만다.
섹스란 것을 모르던 어린 나는 호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카르멘보다 더 예쁘고 착한 약혼녀를 버리는 것도, 감옥에 다녀와서도 정신을 못 차리고 카르멘을 따라다니는 것도, 여자가 다른 남자를 만난다고 칼로 찔러 죽이는 것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디 ‘카르멘’뿐이랴. 베르디, 푸치니의 유명한 오페라 중 상당수는 ‘치정살인’을 다룬다. 1년에도 수도 없이 많은 영화가 쏟아져 나오지만 이 모든 영화의 줄거리를 분석하면 딱 3개의 범주로 나눌 수 있다. 폭력영화, 사랑영화, 그리고 폭력과 사랑이 결합된 치정물이다.
현실에서도 그러하다. 흔히 살인이라고 하면 연쇄 살인범이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는 걸 떠올린다. 하지만 국내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살펴보면 가해자와 피해자 관계는 가족(23.6%), 친구 및 애인(13.9%), 지인(11.6%), 직장인(5.1%), 이웃(4.4%) 순으로 나타난다(2012년). 대부분의 살인이 낯이 익은 사람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다.
전체 살인사건 범죄자 중 남성이 82.9%인 점을 고려하면 남성이 아내, 전처, 여자친구를 죽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돈이 목적이거나, 증거인멸을 목적으로 하는 살인이 아닌 경우, 남성이 남성을 죽이는 상황 역시 치정에 얽힌 경우가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가장이 자녀를 죽인 것도 아내를 먼저 죽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살인을 저지른 여성도 남편, 전남편, 남자친구를 살해한 경우가 많다. 여성이 자녀를 살해할 때에도 대개 남편에 대한 분노가 밑바닥에 깔려 있다.



내 여자가 다른 남자와…

사랑과 살인은 이처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랑에 얽힌 살인을 유형별로 살펴보자.
우선 아내의 외도를 참지 못하고 남편이 아내를 살해하는 경우가 있다. 내 여자가 다른 남자와 섹스하는 것을 상상만 해도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미국 텍사스 주에는 아내가 다른 남자와 섹스하는 광경을 남편이 목격하는 경우 그 자리에서 아내와 상간남을 살해해도 정상 참작을 하는 법 조항이 있었다(논란 끝에 1974년 폐지됐다). 여성의 인권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일부 국가에서는 지금도 불륜을 저지른 여성을 잔인하게 처벌한다. 아내가 외도를 하거나 여자친구가 바람을 피우는 것에 남자들이 죽이고 싶을 만큼 분노하는 이유는 뭘까.
원시시대에는 유전자 검사도 없었고 혈액형도 알 수 없었다. 아내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해 출산하더라도 그 아이가 내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만약 수개월 이상 아내와 성관계를 하지 않았는데 임신했다면 아내가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가져서 임신한 것이다. 하지만 아내가 다른 남자와 몰래 관계하는 시기에 나와도 관계를 가진다면 남자로서는 그 아이가 누구의 아이인지 알 수 없다. 다른 남성의 아이더라도 모르고 키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질투심을 느낀 남자는 더욱 격렬하게 성관계를 갖는 경향이 있다. 어떤 놈이 내 아내의 자궁에 정액을 뿌렸을지 모르니까 내가 더 많은 정액을 뿌려서 이기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정자(精子)살인’을 주장하기도 한다. 한 여성이 아주 짧은 시간을 두고 두 남자와 성관계를 갖는 경우 여성의 자궁 안에서 한 남자의 정자가 ‘경쟁 상대’인 다른 정자를 죽이려 한다는 것이다. 내 아내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져도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분노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현대사회에선 입양도 권장된다. 재혼을 하면 의붓아버지가 돼 피 한 방울 안 섞인 자녀를 돌봐야 한다. 그러니 일단 아내가 낳은 이상 남의 자식인지, 내 자식인지 의심할 필요 없이 ‘그저 내 자식이려니’ 하고 키우면 된다고 주장하는 남편도 있다.



“죽일 생각은 없었다”

김동인의 단편소설 ‘발가락이 닮았다’는 성병으로 불임이 된 남성이 아내가 임신하면서 겪는 갈등을 담았다. 이 소설이 출간된 일제강점기만 해도 흉년이 들면 굶어 죽는 이들이 속출했다. 한집 형제들 중에도 누구는 살아남고 누구는 굶어죽었다. 만약 아내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출산했는데 그 아이를 자신의 아이로 알고 양육하는 경우, 다른 남자의 아이로 인해 정작 자신의 아이가 굶어 죽을 수도 있었다. 이렇듯 아내의 외도로 인해 내 자식이 죽을지도 모르기에 남자들은 더 격분했던 것이다.
더구나 아내가 아비가 다른 자식을 남긴 채 남편을 떠난다면 재앙이 벌어진다. 조선시대를 다룬 드라마를 보면 마을 주민들이 서로를 위해주는 것처럼 그려진다. ‘이웃사촌’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내 자식 키우기도 빠듯한데 남의 자식 키워줄 여유가 없다.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하면서 자식을 다 잘 돌보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인간은 진화의 산물이다. 앞에서 봤듯 남의 자식을 키우게 된다는 두려움 때문에 석기시대부터 남편은 아내의 외도에 격분해왔다. 외도를 한 아내에 대한 격분은 여성으로 하여금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그래서 스스로 알아서 행동하도록 만들었다. 남편 이외의 다른 남자와의 관계는 꿈도 못 꾸게 했다. 그리고 남자들은 동맹을 맺어 남자의 외도에 대해서는 너그럽고 여자의 외도는 가혹하게 처벌하는 세상을 만들었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었다. 질투 때문에 폭력을 휘두르면 여자는 달아난다. 남성의 과도한 질투로 괴로움에 시달리는 여성은 이혼을 요구한다. 남자들도 이제는 바뀐 세상에 적응해야 한다. 하지만 남자들 중 일부는 아직 과거의 본성을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격렬한 분노와 폭력을 통해 여성의 외도를 차단하려 한다. 그러다 보면 선을 넘어 살인으로까지 이어진다.  
아내를 죽인 남편 대부분은 “처음부터 죽일 생각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죄를 줄이려는 속셈이겠지만 진심일 수도 있다. 남자가 다른 여자와 결혼  하고 싶은데 아내가 방해물인 경우를 제외하면 남자가 여자를 죽여서 얻을 이익은 없다. 게다가 둘 사이에 자녀가 있을 경우 아내가 죽으면 남편이 양육해야 한다.
원시시대라면 아내를 죽이고 은폐할 수도 있었다. 아내의 외도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고 덮어씌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죗값을 치러야 한다. 다른 여자와 결혼할 수도 없고, 아이를 키울 수도 없다. 따라서 애초부터 죽일 생각은 아니었다는 남편의 말은 일정 부분 진실이다. 분노의 주먹질, 발길질, 몽둥이질 끝에 살인에 이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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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기 | 청담하버드심리센터 연구소장, ‘작은 상처가 더 아프다’ 저자 artppp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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