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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전문의 최명기의 남녀 본색

죽음을 부르는 열정과 섹스

치정살인, 이별살인, 동반자살…

  • 최명기 | 청담하버드심리센터 연구소장, ‘작은 상처가 더 아프다’ 저자 artppper@hanmail.net

죽음을 부르는 열정과 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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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유전자를 남길 기회

살인은 연인 사이에도 일어난다. 이런 경우,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것을 깨달은 뒤에는 겁에 질리거나 얼이 빠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살인을 무효화하고 싶다. 피해 여성의 얼굴을 이불로 덮기도 하고, 살아 있는 것처럼 바로 눕히기도 한다. 시체의 피를 닦아내기도 한다.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시체와 몇날 며칠을 함께 지내기도 한다. 그러다 자수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살을 시도한다.   
여자가 자신을 버리고 떠난다는 것이 확실할 때 벌어지는 것이 ‘이별살인’이다. 이별살인은 남자가 여자보다 나이가 훨씬 많거나, 남자의 사회적 지위가 여자에 비해 훨씬 떨어지는 경우에 주로 발생한다. 전과자에다 무직인 남자가 명문대를 나온 전문직이라고 신분을 속이고 여성을 사귄 경우가 있다. 여자가 그 사실을 알아채고 헤어지려 하자 남자가 여자를 살해했다.
흔히 남녀가 헤어지면 ‘세상에 깔린 것이 여자(혹은 남자)’라고 말하면서 위로하곤 한다. 하지만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이유는 뭘까.
100년 전만 해도 대부분 시골에서 마을 단위로 살았다. 장날에 읍내라도 나와야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50~100명 안팎의 마을 사람들 중에서 절반을 차지하는 남자, 임신이 불가능한 노인, 어린이를 빼면 혼인 적령기의 남자와 맺어질 수 있는 여자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축첩(蓄妾)이 가능한 시기에는 그나마 괜찮은 여자들을 부와 권력이 있는 이들이 차지했다. 평범한 남자가 괜찮은 여자와 사귈 확률은 극히 낮았다.
이런 현실에서 여자에게 버림받으면 자신의 유전자를 남길 기회가 어쩌면 영원히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더구나 그 여자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지면 그 남자의 유전자가 세상에 더 많이 퍼지게 된다. 내가 기회를 잃는 만큼 타인이 기회를 더 많이 얻게 되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여자에게 버림받았다는 소문이 퍼지면 남자로서의 매력도 떨어진다. ‘오죽 능력이 없으면 여자에게 버림받았겠냐’는 평판이 돌면, 여자들은 그 남자를 기피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할 기회를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살인 욕망에 사로잡힌다. 여자를 죽일 수 없다면 경쟁자라도 제거해야 한다. 전남편이 현재의 남편을 죽이기도 하고, 현재의 남편이 전남편을 죽이기도 한다. 지금 남친이 전 남친을 죽이기도 하고, 전 남친이 지금 남친을 죽이기도 한다.



화풀이 대상 찾기

죽음을 부르는 열정과 섹스

스카프로 내연남을 목 졸라 살해한 여성이 체포됐다.

아내를 죽이고도 분이 풀리지 않는 경우, 혹은 아내를 죽이지 못하는 경우 다른 대상에게 화풀이를 하기도 한다. 예컨대 자신을 떠나면 여자의 가족을 해치겠다고 협박하는 남자들이 있다.
협박에 그치지 않는 수도 있다. 실제로 여자의 아버지, 어머니를 죽인다. 아내가 있는 곳을 알려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처가 식구들을 협박하다 죽이기도 한다. 아내와 헤어지도록 종용했다고 처가 식구들에게 보복하기도 한다. 처제를 성폭행한 남자의 심리엔 아내가 자신을 떠났으니 아내의 동생을 대신 아내로 취하겠다는 무의식이 반영됐을 수 있다.
의붓자식에게 범죄행위를 하기도 한다. 아내더러 자신에게 오라고 의붓자식을 인질로 잡고 협박한다. 아내가 오지 않으면 아내 대신 의붓자식을 죽인다. 여자에게 가장 잔인한 고통을 주기 위해서다. 재혼 가정에서 아내가 떠난 후 남편이 의붓딸을 성폭행하는 경우도 있는데, 앞서 본 것처럼 처제를 성폭행하는 것과 같은 본능이다. 아내가 자신을 떠났으니 의붓딸을 대신 아내로 취해야겠다는 것이다.  
아내나 애인이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한다는 이유로 살인을 저지르는 사례도 있다. 남자로서의 능력을 무시당하면 자존심이 상처를 입는다. 여자가 외도한다는 증거는 없지만 자신이 남자로서 무능력하면 여자가 결국 다른 남자에게 갈 것이라는 불안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여자가 섹스를 거부하거나 성적인 능력을 모욕하면 살인사건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남자가 모욕을 당한다고 느끼면서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다.
무시당하는 게 싫고, 조롱받는 게 싫다면 여자를 떠나면 된다. 하지만 맹목적인 분노에 사로잡히다 보면 여자가 죽어 없어지기 전에는 자신의 분노가 사그라지지 않을 것 같다. 자신이 여자를 떠나면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갈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내를 죽이고, 여자친구를 죽인다. 이처럼 살인의 동기가 증오일 때 살해 방법은 잔인하다. 수십 차례 흉기를 휘둘러 난자하거나 얼굴을 못 알아볼 정도로 망가뜨리기도 한다. 여성의 얼굴에 염산을 뿌리기도 한다. 



죽음에 準하는 혼돈

아내를 죽이면서 자식을 함께 죽이는 남편도 있다. 자신은 감옥에 가고 아내는 살해되고 없으니 자식을 키울 사람이 없다. 내 자식이 부모 없이 살거나, 살인자의 자식으로 사느니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거다. 이 경우 가장 합리적인 대안은 남편이 아내를 죽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아내에 대한 분노에 사로잡히면 맹목적이 된다. 자신에게 지긋지긋한 아내이다 보니 아이들에게도 지긋지긋한 어머니가 될 것이라 여긴다. 이렇게 지긋지긋한 어머니 밑에서 자라느니 자식들도 죽기를 원할 것이라고 합리화한다.
자녀가 아버지인 자신을 싫어하는 경우 자식에 대한 분노도 생겨난다. 그래서 자신이 사랑하는 자녀가 없을 때 아내와 다른 자녀를 죽이는 경우가 있다. 자신이 사랑하는 자녀만 살아남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때는, 자신이 사랑하는 자녀는 혼자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합리화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미워하는 자녀는 ‘이상한 어머니’ 밑에서 부적절한 양육을 받느니 죽는 것이 더 낫다고 합리화하는 것이다. 일가족 동반자살의 경우 부모가 모두 죽음에 동의한 경우도 있지만, 남편이 아내를 살인하고 자식도 죽이면서 결과적으로 동반자살이 되는 사례도 있다.
열정 혹은 섹스가 죽음을 불러오는 이유는 뭘까. 혹자는 ‘한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은 곧 한 생명이 죽어가는 순간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원래 단세포 동물이었다. 단세포 동물이 두 개의 세포로 갈라지면 새로운 생물이 탄생한다. 그런데 원래 단세포 동물 처지에서는 자신의 몸이 둘로 갈라지는 순간 죽음을 맞게 된다. 반대로 새로운 두 개의 세포로서는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난 것이다.
물론 인간은 단세포 동물이 아니다. 섹스를 한다고 매번 임신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다. 더욱이 피임을 한다면 섹스를 아무리 많이 해도 임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섹스에는 죽음에 준하는 혼돈과 강렬함의 냄새가 풍긴다. 그래서 섹스를 하고 나서 잠시 허탈한 공허의 시간이 찾아오는 것을 어떤 이는 일시적인 정신적 죽음에 비유한다.





유전자의 치명적 속삭임

단세포 동물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서 인류가 됐다. 남성과 여성은 섹스를 통해 서로의 유전자를 맞바꾼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인간을 ‘유전자 전달자’라고 정의한다. 부모를 ‘진본’, 자식을 ‘카피본’으로 일컫는다. 진본인 부모는 자식이라는 카피본에 각자 정확히 2분의 1씩 자신의 유전자를 전달한다. 자식의 염색체 2분의 1은 아버지로부터, 나머지 2분의 1은 어머니에게서 유래한다.
석기시대에는 40세를 넘겨 살아가는 이들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대개 10대 중반~20대 초반에 자식을 낳고, 자식이 성인이 되기까지 키운 뒤 30대 후반~40대 초반에 죽음을 맞았다. 자식을 낳고 키우는 것이 인생의 전부였다. 그런 시절에는 유전자 전달체로서의 삶이 인생의 전부였다. 유전자를 전달할 기회를 잃어버리면 삶은 의미가 없다. 치정살인, 이별살인의 당사자는 사랑 때문에 죽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뇌 속 유전자의 속삭임으로 인해 이성을 잃고 맹목적이 된다.
지금은 평균수명이 100세에 달한다. 생식 후 연령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옛날에는 먹고, 일하고, 생식하는 것이 삶의 전부였다. 지금은 인간으로서 느껴야 하는, 그리고 느낄 수 있는 너무나 다양한 즐거움이 존재한다. 유전자 전달자로서의 삶에 지배돼선 안 된다. 우리 조상들은 상상할 수도 없었을 많은 사람이 도시에 몰려 살아간다. 경제적, 인격적으로 능력만 갖추면 내게 맞는 이성과 맺어질 수 있다. 사랑하는 이와 헤어져도 또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나에 대한 소문은 도시의 익명성 덕에 잊히게 마련이다.
그러니 제발 죽일 만큼 사랑하지 말자. 죽을 만큼 사랑하지도 말자. 함께 죽지도 말자.




신동아 2016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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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기 | 청담하버드심리센터 연구소장, ‘작은 상처가 더 아프다’ 저자 artppp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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