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월호

인천 영종도

세계를 향해 열린 한반도의 가슴

  • 글: 민병욱 사진: 박수룡

    입력2003-01-03 13: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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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영종도

    일출에 물든 영종도 개펄. 날아오르는 비행기도 발갛게 물든다.

    깨어 있으면서 꿈을 만든다는 건 날아오르는 것만큼 멋진 일이다. 만나고, 헤어지고, 설레고, 아쉬워, 발을 구르면서도 희망과 기대를 부풀려 꿈을 꾸어보는 공간. 먼길 여행의 시발점이자 종착점이기도 한 곳. 공항에서 사람들은 초롱 눈을 뜨지만 머리와 가슴으론 저마다 하나씩 수천 수만의 꿈을 그린다.

    바다를 차고 떠오르는 꿈

    ‘나는 도시(The Winged City)’, 인천국제공항엔 그런 ‘날개 달린 꿈’이 가득하다. 하루 평균 350대 비행기가 그 양력(揚力)으로 뜨고 내린다. 낮 시간엔 2분에 한 대꼴. 충북 진천 인구와 맞먹는 5만7000명의 승객이 들고난다. 반도의 심장부를 차고 세계의 하늘로 날아오르며, 또는 지친 다리를 쉬려고 집으로 돌아오며 사람들은 이 관문을 보고 거기 또 꿈을 심는다.

    인천 시내 공장의 굴뚝을 비집고 떠오른 겨울 해도 공항 지역에선 꿈을 꾼다. 발 아래 올망졸망 박힌 섬 사이를 오가는 통통선과 희부염 퍼지는 해무에 졸던 해는 날개를 펄럭이며 비상하는 날것의 굉음에 눈을 뜨고, 저도 그만 떠나고 싶은 마음에 발갛게 볼을 달군다. 새 아침을 가르며 나는 비행기가 화답하듯 동체를 태양 빛으로 물들인다.

    “길 떠나면 고생이요, 두려움”이라는 건 이제 옛말이다. 최신식 대형 제트기로 열린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것은 도전이요 도약이다. 불과 100년 전 나랏문을 절대 열 수 없다며 ‘양이(洋夷)’들과의 전쟁을 불사했던 바로 그 인천 앞바다에 아시아 최대급이자 세계 3위권의 국제공항이 들어선 것도 어찌 보면 꿈이 빚은 잔치 같기도 하다.



    2001년 3월 29일. 착공 8년 만에 인천공항이 문을 열기 전 언론은 한바탕 난리를 피웠다. 항공관제 시스템이나 여객 화물처리 능력이 떨어져 엄청난 혼잡과 부작용은 물론 대형사고가 터질 가능성도 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날 이후 지난해 말까지 항공기 21만대, 여객 3500만명, 화물 330만톤이 인천공항을 통과했다. 물론… 큰 사고는 없었다.

    회초리 맞고 자란 자식이 경쟁력이 있다 했던가. 한 언론은 공연한 호들갑이 무색했는지 “유쾌한 오보였다”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그때의 질책 덕분인지 인천공항은 이제 한국의 간판 관문으로 손색 없는 위용을 갖추었다. 파란 하늘과 쪽빛 바다에 매치시킨 터미널의 청자빛 외관은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유혹을 간질이며 색감과 질감을 자랑한다.

    인천공항은 인천 앞바다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 바닷길을 메워 만든 해상 공항이다. 여객 터미널과 활주로가 있는 자리는 심청이 빠진 인당수 만큼은 아니어도 물길이 제법 깊은 곳이었다. 여기에 15톤 트럭 1800만대분의 토사와 자갈돌 등 골재에 레미콘 아스콘 160만대분을 쏟아부어 서울 여의도 면적의 18배에 이르는 공항부지를 조성했다.

    48만장의 설계도에 따라 연 1380만명의 건설 인원이 동원됐고 사업비 6조2370억원이 투입됐다. 기행문답지 않게 웬 복잡한 수치냐고 짜증을 낼지 모르나 그러지 않고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인원, 물자, 장비와 돈을 쓴 것이다. 헤아리기 힘든 사람들이 쏟은 땀이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며 꾸는 꿈으로 이어졌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여객 터미널 안에도 꿈의 공간이 있다. 터미널 한가운데 지하 1층에서 지상 3층까지 대리석 벽으로 연결된 만남의 장소, 밀레니엄홀이 그 곳이다. 홀 중앙 연못에는 사람들이 자신의 소중한 꿈을 담아 던진 동전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일주일에 보통 70만~80만원어치씩 수거되는 그것들은 한국인의 소망과 정성으로 포장돼 국제아동기금에 보내진다.

    인천  영종도

    들고 나는 비행기에 실려 있는 건 오래 두고 버릴 수 없는 꿈이다(왼쪽). 인천공항 입구. 건축물의 우아한 곡선이 비행기의 은빛 날개와 잘 어울린다.

    한껏 멋 부린 다리들의 환송

    공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여기는 일찌감치 비행장이 될 숙명을 타고난 곳”이라고 말한다. ‘영종’과 ‘용유’라는 이름부터 그렇다는 것이다. 주 섬인 영종도는 한자 이름을 풀면 ‘긴 마루’, 요즘 식으로 말해 활주로와 같다나. 거기에 용유도는 하늘의 용이 노니는 곳이니 이 두 섬이 합쳐지면 활주로를 차고 하늘로 오르는 비행기의 모습이 아니고 무어냐는 것이다.

    생각나는 대로 갖다 붙인 해석일 터이다. 하지만 서울서 인천공항에 이르는 쭉 뻗은 40km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정말 긴 마루 같다’는 느낌이 저절로 든다. 특히 인천 장도에서 영종도까지 바다 건너 육지와 섬을 잇는 현수교 영종대교를 건너면서는 “아아 이 마루를 달려 그 힘으로 하늘 끝까지 뻗는구나” 하는 감탄마저 새어나온다.

    다리 위 두 개의 탑을 연결한 케이블과 로프가 다리 상판을 지탱하는 영종대교는 한국 전통 기와지붕의 처마 곡선을 형상화했다. 미끈하게 하늘로 뻗은 탑들은 머리 위로 두 팔을 올려 맞잡고 손님을 환영하는 모습과도 같다. 다리 밑으론 바다와 갯벌이 조화를 이루고 재두루미, 가창오리 등 철새들이 물 속에 머리를 박고 고기를 낚아 올린다.

    공항행 다리 입구 오른쪽에 선 영종대교 기념관 3층에 오르면 4420m에 이르는 다리 전경과 주변의 바다, 섬, 갯벌, 갈대, 새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먼 길을 떠나며 설레는 마음을 달래려는 건지, 아니면 오히려 방랑벽을 부추기자는 건지 자연 경관은 사람의 눈을 잡고 도무지 놓아주지를 않는다.

    인천공항 고속도로에는 영종대교, 방화대교 두 개의 다리가 있다. 그 중 어느 다리가 더 아름답고 멋있는지는 그야말로 보기 나름이다. 영종교가 우람한 남성의 맛을 풍긴다면 방화교는 우아한 여성의 멋을 살렸다. 이륙하는 비행기 이미지를 매끄러운 곡선미로 그렸는데 언뜻 보면 여인의 젖가슴 형상이다. 오렌지색으로 치장해 더욱 보는 이의 눈을 홀린다.

    서울 강변북로에서 방화대교를 타면서 뭉클 들던 부드럽고 아름답다는 찬탄은 영종대교에선 멋지고 시원하다는 느낌표로 안겨든다. 그러고 보면 한국을 나가거나 들어오는 사람들은 각각 남성적, 여성적인 이 두 다리의 멋진 환영, 환송을 받는 셈이다. 바다와 강에 누운 듯 얹힌 두 다리 위에 부는 바람도 출영객마냥 손을 흔든다.

    인천  영종도

    여전히 아름다운 낙조를 감상할 수 있는 용유도 해변(왼쪽). ‘하늘의 용이 노닌다’는 뜻을 가진 용유도.어쩌면 용유도는 비행장이 될 운명을 타고난 섬인지도 모른다.

    섬은 그대로 있네

    처음 영종도에 공항을 짓는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해변 절경과 백사장, 송림이 아름다운 인천 앞 섬들이 모두 까뭉개질 것으로 알았다. 영종·용유·무의도는 물론 장봉·해녀·신도·시도와 실미도 등이 개발에 밀려 사라지거나 최소한 불구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을왕리·왕산·마시란·하나개 해수욕장도 쓰레기더미가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물론 삼목도, 신불도 같은 몇 개의 섬은 선착장이나 인터체인지 정도로만 그 이름이 남았다. 그들은 갯벌을 매립한 공항 부지에 제 살을 다 나누어주고 섬으로서의 수명을 다했다. 그러나 그 밖의 섬과 그들이 갖고 있던 송림, 해수욕장, 갯벌, 기암절경들은 여전히 살아남았다. 환경생태학적으로는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을지 모르나 모습은 옛 그대로이다.

    용유도 서쪽 해변은 수도권에서 접근이 쉬운, 아름다운 낙조를 볼 수 있는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썰물 때면 폭 200여 미터의 넓은 모래밭이 펼쳐지고, 미처 바다로 나가지 못한 배 몇 척은 기우뚱 갯벌에 기대어 조는 듯하다. 그런 배들 사이로 연인과 가족들이 손잡고 거닐거나 뻘을 파헤쳐 조개를 잡기도 한다.

    해질 무렵이면 해변에 즐비한 횟집과 매운탕집, 조개구이집들이 부산해진다. 방 전체로 노을을 받는 전망 좋은 집은 일찌감치 손님으로 가득차고 뒤늦게 당도한 사람들은 갯바위에 서서라도 노을을 본 다음 다시 와 식사하겠다며 문턱에서 돌아 나선다. 해는 금시라도 떨어질 듯 먼 바다와 맞닿아 마지막 정염을 불사르는데 어린아이들은 그것도 아랑곳없이 마냥 깔깔대며 해변을 뛰어다닌다.

    밤이 깊어가는데도 공항을 오르내리는 비행기의 전조등은 낮처럼 영종도의 밤하늘을 가른다. 공항을 빠져나온 사람들은 영종대교와 방화대교의 불빛을 보며 모처럼 고향에 돌아온 듯한 편안함과 따뜻함을 느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서울의 번잡하고 요란한 불빛을 마주하는 순간 꿈은 인천공항에 두고 왔음을 절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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