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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욱·박수룡의 화필기행

충남 공주∼부여

1300년 전으로의 시간여행

충남 공주∼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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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타는 왕궁, 창칼의 맞부딪침이 지금이라도 눈에 보일 듯하다. 쫓고 쫓기는 군사의 함성과 꽃잎처럼 절벽 아래로 몸을 날리는 여인들의 비명 또한 금세라도 들릴 것 같다.
충남 공주∼부여

공산성 머리 위로 두둥실 달이 떴다.

금강에 달은 느닷없이 떠오른다. 짧게 졌던 노을이 어스름에 묻히기 무섭게 쟁반만한 달덩이가 불쑥 강을 타고 솟아올라 눈 가득 달려든다.

불그스름하다. 아직 사위지 않은 노을 기가 달에 비낀 걸 왜 모르겠는가. 그런데도 그걸 먼 옛날 백제의 멸망을 지켜보았던 달이 아직 그 통한을 못 이겨 붉은색을 띠었다고 생각하는 건 기자만의 센티멘털리즘일까.

금강에 떠오르는 붉은 달

금강을 낀 두 고도(古都), 충남 공주와 부여 기행은 일부러 찡한 아픔을 찾아 느끼는 감상여행이다. 475년, 백제 개로왕이 한강 아차산성에서 고구려군에 참살당하자 그의 아들 문주왕이 남쪽으로 내려와 새롭게 도읍을 정한 곳이 금강 곰나루, 지금의 공주다.

거기서 5대 64년을 보내고 백제는 다시 서남으로 이동했다. 부여 부소산 자락 사비성에 새 궁터를 잡고 왕국의 부흥을 꿈꾸었다. 그래 한때는 3국 최고의 문화를 꽃피우며 강국의 기틀을 다졌으나 끝내 신라·당나라 연합군의 협공에 멸망하고 만다. 지금으로부터 1300여 년 전, 사비 천도 123년 만의 일이다.

스러진 재기의 꿈과 망국의 서러움, 그리고 유린당한 백성의 한숨이 두 도시엔 서려 있다. 벌써 십수세기가 지난 일인데 그런 아픔과 슬픔이 여태 남았겠느냐는 질문은 의미 없다. 금강 남쪽 둑을 따라 공주 부여를 잇는 ‘백제 큰길’을 달리다 보면 덧없이 흐르는 강물과 외로운 소나무, 나그네 가슴을 치는 주인 없는 정자와 바보처럼 덩그러니 떠오르는 달까지, 그 모든 게 형언키 어려운 서글픔을 안았다.

백제 큰길은 지난해 11월 개통했다. 공주 웅진동에서 부여 탄천까지 22.5km 구간은 굽이굽이 강 흐름을 따라 서남으로 뻗는다. 앞으로 부여 읍내 7km 길을 추가개통하면 6세기 백제인들이 공주에서 부여까지 남부여대, 걷거나 우마차를 밀며 천도해 갔던 그 길이 자동차로 미끈하게 달리는 현대식 도로로 재탄생된다. 충남도는 백제 큰길의 개통을 기념해 가을엔 여기서 전국 마라톤대회도 열 계획이란다.

널찍하고 시원하게 뚫린 길 옆의 풍광은 참으로 삽상하다. 그런가 하면 잊고 지낸 과거도 역사의 페이지에서 조금씩 들추어준다. 그러기에 공주 공산성에서 부여 부소산성에 이르는, 백제의 옛 자취를 더듬어 가는 길은 불과 반나절 행보지만 시간여행에 나선 듯한 감회를 안긴다. 불타는 왕궁, 창칼의 맞부딪침이 지금이라도 눈에 보일 듯하다. 쫓고 쫓기는 군사의 함성과 꽃잎처럼 절벽 아래로 몸을 날리는 여인들의 비명 또한 금세라도 들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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