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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욱·박수룡의 화필기행 붓 따라 길 따라

풍류가 흐르는 강, 영험이 깃든 산 경남 밀양

풍류가 흐르는 강, 영험이 깃든 산 경남 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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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결 풍경 소리에 마음은 한없이 산사 주변을 떠돈다. 창문을 여니 운무가 맞배지붕을 누를 듯 내려앉고 있다. 석등에서 나온 가물가물한 빛이 그런 운무와 어울려 무지개처럼 절을 감싼다.
풍류가 흐르는 강, 영험이 깃든 산 경남 밀양

밀양강변 대밭에 있는 아랑사당 주변에는 나비와 들장미가 지천이다

바람이 풍경(風磬)을 울리는가, 아니면 풍경이 바람을 부르는가. 산속 요사채에서 맞는 밤은 그야말로 청아하다. 먼 듯 가까운 듯 나무들이 울고 계곡이 우릉대는 소리 또한 낮고 중후한 배경음으로 깔린다.

찰그랑거리는 풍경 소리에 마음의 티끌이 털려 나간다. 어쩌다 신발 끄는 소리라도 들린 듯싶어 문을 열면 바람만 가볍게 문풍지를 간질이고 있다. 졸졸대는 약수터 옆 돌계단을 지나 대광전 이르는 길에 밝혀놓은 보라색 불빛도 어슴프레하다. 객의 마음은 벌써 명징의 세계로 달려간다.

표충사 감싸안은 불기둥

산의 이름은 재약산, 절은 표충사다. 산에 덮인 풀이 모두 약초요, 흐르는 물 또한 약수란 뜻에서 재약(載藥)이란 이름을 얻었다. 원래 죽림사, 영정사로 명명됐던 절은 임진왜란·정유재란 때 승병을 이끌어 왜군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사명당 송운대사의 사당(祠堂)을 이 곳으로 옮기며 표충사란 이름을 갖게 됐다.

표충사 주지는 혜오스님이다. 경남 밀양시내에서 불과 20분 거리여서 저녁 공양(식사) 전에 도착한다고 했으나 경관에 취한 우리 일행이 해질 녘에야 절에 닿자 스님은 약간 삐쳐 있었다. 방에 들인 뒤에도 차만 서너 잔 거푸 권할 뿐 좀처럼 말머리를 잡지 않는다.

“절 입구 상수리나무가 승군(僧軍)처럼 도열했고 그 사이로 흐르는 내는 마치 세월을 담고 있는 듯해 그걸 감상하느라 늦었다”고 지각 변명 겸 절 찬양을 하자 스님은 그제서야 천천히 말문을 연다.

“잘 오셨소. 이 절은 정말로 진기가 서린 곳이오, 작년에 내 눈으로 그걸 직접 확인했다오….”

작년 12월7일 오후 6시경 저녁 공양을 마치고 주지실로 막 들어서는데 아래켠에서 불이 났다며 소동이 일었다는 것이다. 놀라 나가보니 가람 입구 쪽 표충사당에서 벌건 불기둥이 하늘로 솟았고 이내 경내 맨 위켠 관음전에서도 불기둥이 솟더니 어느덧 두 쌍이 어우러져 무지개처럼 절 전체를 감쌌다는 것이다.

“땅의 기운과 우주의 기운이 합해졌을 때 진기가 불기둥처럼 하늘로 솟구친다고 그래요. 중 생활 몇십 년 만에 그런 영험스런 일은 나도 처음 보았다오.” 신심이 깊은 사람이야 스님의 설명에 어찌 토를 달겠냐만 기자는 그럴 수 없는 법. “혹시 사진을 찍었다던가 뭐 그런 증거라도 없습니까?”고 물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스님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곤 아무렇지도 않게 “사진을 찍었는데 빼보니까 해를 찍은 것처럼 그냥 허옇게 나와요”라고 한다. 그러더니 “사는 데는 직견과 곡견이 있는 법. 있었으면 있었던 것이지 그걸 없다고 의심하거나 있었음을 증명하려고 애쓰는 것이 다 부질없는 일 아니겠오”라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어쩐 일인가. 요사채에 들어서도 잠은 오지 않는다. 바람결 풍경 소리에 마음은 한없이 산사 주변을 떠돈다. 창문을 여니 운무가 맞배지붕을 누를 듯 내려앉고 있다. 석등에서 나온 가물가물한 빛이 그런 운무와 어울려 무지개처럼 절을 감쌌다. 그예 화백을 깨워 절 밑 주막에 내려가 약초술을 대여섯 사발 들이켜고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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