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2월호

13억 중국인의 마음의 고향 泰山

  • 입력2003-11-28 17:5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13억 중국인의 마음의 고향 泰山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태산의 능선 너머로 화베이(華北)지방이 내려다보인다.

    거대함. 중국이라는 나라를 표현할 때 이보다 더 적합한 단어가 있을까. 광활한 국토와 어마어마한 인구, 오랜 역사만큼이나 중국 곳곳에는 다양하고 흥미로운 인류유산이 가득하다. 그 중에서도 으뜸을 꼽으라고 한다면 중국인들은 서슴지 않고 도교의 성지이자 시선(詩仙) 이백의 마음을 사로잡은 태산(泰山)을 먼저 이야기할 것이다.

    중국인들에게 방향은 계절을 상징한다. 중국의 5대 명산 중 가장 동쪽에 위치한 태산은 봄을 뜻한다. 산밑 거점도시인 타이안(泰安)에서 태산으로 오르는 데에는 케이블카와 버스도 있지만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험난하고 가파른 계단을 선택하는 까닭은, 이 산에 있는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가 각별한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리라.

    하늘에 맞닿은 문

    태산으로 향하는 길의 출발점은 타이안에 자리잡고 있는 대묘(岱廟)다. 중국을 대표하는 3대 건축물 중 하나라는 대묘는 당나라 현종 13년(725년)에 완성된 후 여러 명의 황제에 의해 증축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고대 중국의 건축양식에 따라 사방을 성벽으로 두르고 팔방으로 연결된 8개의 문과 동서남북 네 곳에 누각(樓閣)을 배치한 대묘의 크기는 자그마치 10만㎡. 규모도 규모거니와 그 공간구성이 퍽 아기자기하다. 길이 62m, 폭 3.3m의 대형 벽화와 한무제가 심었다는 측백나무는 방문객들의 발길을 잡아끄는 명물이다.

    대묘에서 정상인 천주봉에 이르는 10km 남짓의 등산로는 7412개에 이르는 계단으로 이어져 있어 서너 시간은 족히 걸린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크고 작은 바위와 그 위에 새긴 글귀는 신선들의 산책로를 연상케 하며, 독특한 형태와 의미를 간직한 기념문과 건축물은 이곳이 예사롭지 않은 장소임을 말해준다. 중간에 설치된 좁은 난간에서 바라본 기암괴석과 주변의 풍광은 아름다움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하다.





    13억 중국인의 마음의 고향 泰山

    6000번째 계단 위에 만들어놓은 승선방에서 남천문으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

    아무리 올라도 끝이 없을 것 같은 돌계단이 이어지자, 등정은 점점 고통이 되고 이백의 시구는 입가에서 맴돌다 사라져버린다. 준비해간 음료수를 모두 마시고서야 가까스로 닿은 곳이 하늘로 연결되는 입구라는 남천문(南天文). 그러나 주변 풍경은 천상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 이곳저곳에 좌판을 펼쳐놓고 음식과 기념품을 파는 상인, 좁은 계단에 매달려 기념촬영에 분주한 방문객, 가파른 계단을 막 올라와 땀을 닦으며 심호흡을 하는 어린아이부터 할머니까지, 시선에 잡히는 것은 온통 사람뿐이다.

    황제들의 즉위의식 ‘봉선’

    남천문을 뒤로하고 가파른 계단을 따라 동쪽으로 30분쯤 더 올라가면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사찰 벽하사(壁霞祠)에 이른다. 송대(1016년)에 창건된 이 절에는 태산의 여신 ‘벽하원군’이 모셔져 있는데, 중국의 옛 황제들이 즉위할 때‘봉선(封禪)’의식을 행하던 장소다. 봉선의식은 황제가 자신의 즉위를 하늘에 고하고 태평성대를 기원하던 행사. 지금도 ‘묘회’라는 이름으로 해마다 봄철에 재연 축제가 열리고 있다.

    벽하사 위쪽으로는 공자의 위패를 모셔둔 사당이 자리잡고 있다. 규모나 세련미에서 공자의 고향인 취푸(曲阜)에 있는 대성전과 비교할 수 없지만, 웅장하고 아름다운 사당은 방문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공자의 사당에서 다시 수백 개의 계단을 더 오르면 태산의 최고봉인 천주봉(天柱峰)에 이른다.

    해발 1545m 정상에는 옥황전(玉皇殿)이라는 건축물이 자리잡고 있다. 옥황상제에게 제사를 지내던 이 건물의 주변에는 태산을 방문했던 황제와 문인들의 흔적을 간직한 유적지가 곳곳에 흩어져 있다.



    13억 중국인의 마음의 고향 泰山

    태산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는 상인들과 관광객.

    해가 서산 너머로 뉘엿뉘엿 모습을 숨기기 시작하지만 산에 오른 사람들은 하산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대신 정상인 천주봉과 벽하사 부근으로 모여드는 이들은 하나같이 두터운 솜 외투 차림이다. 그대로 태산 정상에서 밤을 새우고 다음날 새벽 일출을 맞기 위해서다. 경치로는 일몰이 훨씬 황홀하지만 의미로 따지자면 ‘동쪽의 산’ 태산에서 맞는 일출이 훨씬 각별하다. 밤이 되면 급격히 떨어지는 기온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죽음 이후 자신의 영혼이 이곳에 머물 것이라 굳게 믿고 있는 중국인들에게 태산은 그런 산이었다. 13억 중국인 모두가 일생 동안 꼭 한번은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영혼의 안식처이자 마음의 고향.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흔들리지 않는 중국의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장소가 바로 태산이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