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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종주기③|복성이재에서 빼재까지

장엄한 해돋이, 드넓은 구름바다 …

“산은 보일 때 걸어야지”

  • 글: 육성철 국가인권위원회 공보담당 사무관 sixman@humanrights.go.kr

장엄한 해돋이, 드넓은 구름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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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른 아침 엷게 언 땅 ‘사각사각’ 밟으며 산 정상에 오르니 온통 억새 천지다. 정상인지 평원인지 모를 봉화산에서 중치 지나 백운산까지는 줄곧 오르막. 산 아래 펼쳐진 산죽밭 배경 삼아 해 넘어가고, 하루를 뒤돌아보니 온종일 아무도 없는 산속을 혼자 걸었다.
장엄한 해돋이, 드넓은 구름바다 …

무룡산 운해.

지난해 12월9일 ‘백두대간 보호에 관한 법률’이 마침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법률은 그동안 관련 부처마다 서로 다른 입장 때문에 표류를 거듭해왔었다. 국회는 일단 ‘환경부가 산림보호 기본계획의 원칙과 기준을 수립하고, 산림청이 보호지역 지정·관리를 맡는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국회가 백두대간의 오염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를 수용해 무분별한 개발에 제동을 건 것은 의미 있는 결정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이, 백두대간 보호는 법률 제정보다도 실천이 더 중요하다. 벌써부터 각 정부부처는 ‘백두대간 보호에 관한 법률’을 달리 해석하고 있어 업무조정 단계에서 자칫 갈등을 빚을 수도 있을 것 같아 보인다. 또한 백두대간 개발을 둘러싸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시민단체와 지역주민의 이해관계가 여전히 첨예하게 부딪치고 있다. 특히 백두대간 보호지역 가운데 약 36.8%는 사유림이어서 재산권 분쟁도 꺼지지 않은 불씨로 남아 있다.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바로 백두대간을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다. 한반도 곳곳에서 백두대간의 지형을 변형시키고 있는 각종 위락시설과 채석장도 가슴 아픈 일이지만, 백두대간을 단순한 하이킹 코스 내지는 관광단지 정도로 여기는 우리네 의식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선 지 오래다. 필자는 백두대간의 상처를 발견할 때마다 덕유산의 어느 골짜기에 붙어 있는 문구를 떠올리곤 한다. ‘오지 않았던 것처럼 머물다 가십시오’. 백두대간 보호의 첫걸음은 바로 그렇게 내디뎌야 하지 않을까?

무진장으로 가는 길목에서

‘무진장’. 전라북도 사람들은 동북쪽의 산간지역을 흔히 그렇게 부른다. 무주 진안 장수의 앞 글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무주는 전북에서 경작지 면적이 가장 적고, 진안은 산지의 비율이 80%에 달하며, 장수는 평균 해발고도가 430m에 이른다. 이렇게 보면 무진장이 ‘전라북도의 지붕’으로 불리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12월27일 새벽. 이따금씩 들르던 남원역 근처 식당은 문을 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시외버스터미널로 발길을 돌려 24시간 김밥집을 찾았다. 순두부찌개에 김밥 한 줄을 추가로 시켜 먹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는데, 문득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은 아저씨의 배낭이 눈에 들어왔다. 필자의 배낭보다 3배는 더 무거울 것 같아 보이는 초대형 배낭이었다. 호기심이 발동한 필자는 그에게 한 수 배우고 싶었으나, 그는 서둘러 식당을 빠져나갔다. 왠지 그가 예사롭지 않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남원에서 인월까지 버스로 이동한 뒤, 인월에서 택시로 갈아타고 복성이재에 도착했다. 아침 7시40분. 산속이라 그런지 아직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첫걸음은 무겁다. 고갯마루에 올라서자 멀리 지리산 쪽에서 해가 떠올랐고, 몸에서 적당히 땀이 배어나면서 발걸음도 빨라졌다.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사각사각’ 소리가 들려왔다. 기온이 내려가면서 땅속의 물기가 지면을 밀어올려 흙 속에 빈 공간이 생기고 그 사이에 엷은 얼음이 들어선 탓이다.

아침 9시10분. 봉화산(920m)에 올랐다. 남원시 아영면과 장수군 번암면에 걸쳐 있는 이 산은 철쭉이 곱기로 유명하다. 타지역 사람들은 인근의 바래봉 철쭉을 더 높이 치지만, 이 동네 사람들은 봉화산 철쭉이 바래봉에 뒤지지 않는다고 평한다. 봉화산의 또 다른 명물은 억새다. 봉화산 정상 언저리에는 키가 2m를 넘는 억새가 거대한 평원을 이루고 있는데, 늦가을에 찾아가면 제대로 취할 수 있다.

월경봉에서 중치(중재)로 가는 길은 얕은 구릉을 오르내리는 편안한 코스다. 중치 표지판 앞의 너럭바위에 앉아 남원에서 사온 김밥으로 점심을 때웠다. 필자가 “백두대간을 간다”고 하자, 김밥집 아주머니는 “탈이 나면 큰일”이라며 은박지로 겹겹이 싸서 비닐봉투에 넣어주셨다. 덕분에 산속에서도 마르지 않은 김밥을 먹을 수 있었다.

온종일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중치에서 백운산으로 가는 길은 고단했다. 어지간한 산이면 오르내림이 반복되게 마련인데, 백운산은 줄곧 오르막이다. 중치를 출발할 때만 해도 눈앞에 백운산 정상이 들어왔는데, 안으로 들어갈수록 깊이 묻히는 느낌이었다. 눈 쌓인 응달을 통과하면서는 몇 번이나 길을 찾지 못해 애를 먹었다. 백운산은 과연 지리산과 덕유산을 연결할 만한 준봉이었고, 해방 전후의 빨치산들이 주요 근거지로 활용할 만한 심산이었다.

가쁜 숨을 토해내고 정상에 오르자 가장 먼저 까마귀떼가 맞아준다. 수십 마리가 산 정상 주위를 떼지어 선회하고 있었다. 한국에선 ‘흉조’로 알려져 있는 까마귀지만 산꼭대기에서 만나서일까, 그리 싫지가 않았다. 더욱이 까마귀떼가 날아다니다 잠시 머무는 곳을 바라보면 반드시 멋진 조망이 펼쳐졌다. 필자는 책을 펴들고 봉우리의 이름을 하나씩 맞춰보았다. 동쪽으로 기백산, 북쪽으로 덕유산, 서쪽으로 팔공산, 남쪽으로 지리산…. 이제서야 사람들이 백운산을 명산으로 꼽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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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육성철 국가인권위원회 공보담당 사무관 sixman@humanright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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