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4월호

인재 (人災) 와 천재 (天災) 사이에 태어난 비극의 땅

  • 만화가 조주청

    입력2006-11-06 14: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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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재 (人災) 와 천재 (天災) 사이에 태어난 비극의 땅
    중앙아메리카 니카라과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서구 열강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콜럼버스가 스페인의 건달들을 데리고 니카라과에 상륙한 때는 1502년. 당시 니카라과엔 100만여 명의 인디오가 물에서 고기 잡고 땅에서 농사지으며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스패니시(Spanish)들은 사슴사냥하듯 인디오 남자들을 죽이고 여자들을 겁탈했다. 더 가증스러운 것은 십자가를 앞세우고 하느님의 이름으로 살육을 즐겼다는 사실이다. 원주민 인디오 100만여 명은 스페인에 정복당한 지 불과 20∼30년 만에 수만명으로 격감했다.

    1821년, 니카라과는 중미연방공화국의 일원으로서 스페인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한다. 그러나 원주민 인디오들에게는 이 독립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던 스패니시들이 본국 스페인의 간섭과 통제에서 벗어나 저들 마음대로 인디오들을 주무를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그러다가 니카라과에는 근세에 들어 미국이 개입하면서 웃지 못할 희극이 벌어진다.

    1854년 니카라과의 양대 도시 레온과 그라나다가 대립했다. 가난한 농민들을 주축으로 한 진보파는 레온에 진을 치고, 지주와 교회가 연합한 보수파는 그라나다에 진을 쳐 내전의 불이 타올랐다.



    다음해인 1855년 레온파는 미국의 용병을 불러들인다. 월리엄 워커라는 31세의 미국 청년은 불과 56명의 부하들을 이끌고 와서는 막강한 화력으로 그라나다를 박살내버린다. 그리고는 뒤돌아서서 레온파의 지도자들을 모두 처형해 버리고 자신이 니카라과의 대통령임을 선포한다.

    인재 (人災) 와 천재 (天災) 사이에 태어난 비극의 땅
    이에 미국 정부는 즉각 워커 정부를 승인해버린다. 엉터리 대통령 워커는 영어를 공용하고, 노예 제도를 도입하고, 놀랍게도 나머지 중미 국가를 정복하겠다고 공언한다.

    이후 워커는 중미연합군에 패퇴했으나 미 해군의 도움을 받아 미국으로 두 번이나 도망쳤다. 세 번째는 온두라스 해안에 상륙, 당시 카리브해에서 미국을 견제하던 영국 해군에 체포돼 온두라스 정부에 넘겨졌고 1860년에 결국 화형당했다.

    중남미에서 스페인과 영국 세력이 몰락하자 미국이 본격적으로 개입한다. 1911년에 이 나라 대통령이 된 아돌프 디아스는 니카라과에 진출한 미국 광업회사 경리부장 출신이다.

    그후 미국의 꼭두각시인 소모사 정권과 산디니스타의 내전으로 나라는 쑥대밭이 돼버렸다. 결국 산디니스타가 정권을 잡자 미국의 지원을 받는 콘트라가 도전, 이 나라를 또다시 파국으로 몰고 갔다.

    산디니스타의 오르테카 대통령이 콘트라와 휴전하고 총선거를 실시, 1990년에 차모르 여사가 승리했다.

    ‘인재(人災)와 천재(天災)가 만나 낳은 사생아.’

    인재 (人災) 와 천재 (天災) 사이에 태어난 비극의 땅
    니카라과를 일컫는 말이다. 이 땅을 할퀴고 물어뜯고 만신창이로 만드는 것은 인간들만이 아니다. 하늘도 한몫 단단히 한다. 8월에서 10월 사이 허리케인이 이 나라를 휩쓸고 지나가는 것은 연례행사다.

    가난한 열대의 나라에서는 집을 튼튼하게 짓지 않아 허리케인이 한번 지나가면 판잣집들은 휴지조각처럼 날아가버린다. 그래도 허리케인은 참을 만하다.

    시도 때도 없이 온나라를 흔들어 놓는 지진은 언제나 이 나라 국민들의 가슴을 죄이게 한다. 지질학적으로 니카라과 단층은 부글부글 끓는 용광로 위에 함석 한 장 덮어놓은 꼴로 지반이 약한 지진 다발지역이다.

    작년 8월5일에도 이 나라 수도 마나과에서 북서쪽으로 60km 떨어진 곳에 있는 세론네그로 화산 세 군데가 터지면서 화산재와 분출 가스가 반경 10km를 뒤덮었고 강력한 지진이 마나과까지 흔들었다.

    정부는 그 이튿날인 8월6일 국가 최고 경계령을 발동, 재해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런데 그 시간, 대통령 알레만은 미국 마이애미에서 23세 연하의 여교사와 약혼식을 올리고 있었다.

    여행 안내

    서울의 뿌연 하늘 아래서 독가스를 마시며, ‘개판정치’로 도배한 조간신문을 보며 하루의 기분을 잡치고, 전국 방방곡곡 발길 닿는 곳마다 쓰레기 천지에 강물이 썩어 있는 우리나라에 살아도 니카라과에 가보면 “우리나라 좋은 나라” 하고 두손 들어 외치고 싶어진다.

    이 나라로 가려면 미국 LA를 거치는 게 첩경이다. 수도 마나과 공항은 우리나라 시골 정거장 역사만하고, 시내까지는 멀고 외진 길이라 낮에 도착할 일이다. 밤이면 을씨년스럽게 조용하지만 물가는 싸고, 인심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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