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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청과 함께하는 지구촌여행(76)|키프로스

그리스계와 터키계가 으르렁거리는 남북 분단의 땅

  • 만화가 조주청

그리스계와 터키계가 으르렁거리는 남북 분단의 땅

그리스계와 터키계가 으르렁거리는 남북 분단의 땅
지중해 동쪽, 그러니까 중동 앞바다에 우리나라 경기도 면적보다 훨씬 작은 섬나라가 키프로스(Cyprus, 혹은 Kypros)다. 섬 위치가 이러하다 보니 그리스계와 터키계 주민이 양분돼 늘 으르렁거리는 곳이다.

민족과 종교로 갈라져 끊임없이 유혈극을 벌여온 키프로스는 중동 못지 않은 화약고다.

전체 인구 95만명 중 80%가 그리스계, 20%가 터키계다. 지금은 남쪽 60%의 땅을 그리스계가 차지하여 ‘키프로스 공화국’이라 하고, 북쪽 40%의 땅은 터키계가 차지하여 ‘키프로스연방 터키계 주민공화국’이라고 하는데, 2000여명의 유엔 평화유지군이 완충 역할을 하고 있다.

레바논의 베이루트에서 그리스계 키프로스 공화국의 라나카 국제공항까지 날아가는데 채 한 시간이 안 걸린다. 공항 안내센터에 가자 예쁜 아가씨가 상큼한 미소를 보낸다.

“터키계 키프로스로 가는 비행편이 있느냐?”

그녀의 미소는 순식간에 달아나고 말투가 퉁명스럽다

“노(NO)! 다시 레바논으로 돌아가서, 터키 앙카라로 날아갔다가 앙카라에서 그곳에 갈 수 있다.”

라나카 해변 샌드비치캐슬이라는 조그만 호텔에 방을 잡았다. 손님이 나 혼자뿐이라 바닷가 식당에 앉으면 리셉션 아가씨 마리아가 언제나 생글생글 웃으며 다가와 이런저런 말을 붙여온다.

그렇게 친절하고 싹싹하던 아가씨가 갑자기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것은 4일째 되던 날 저녁부터다.

“터키계 키프로스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없겠냐?”

마리아는 갑자기 목소리를 높여 “북쪽 땅은 터키군이 강점하고 있는 우리 땅이지 터키계 키프로스가 아니에요. 분쟁지역이라 절대 들어갈 수도 없구요!”라고 한다.

이튿날 아침 합승택시를 타고 키프로스섬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이 나라 수도 니코시아(Nicosia)로 갔다.

니코시아 역시 남북으로 분단돼 우리나라 휴전선처럼 철조망이 겹겹이 쳐 있고 유엔 평화유지군이 지키고 있다. 남쪽 그리스계는 분쟁지역 경계선이라 부르고 북쪽 터키계는 국경이라 부른다.

그리스와 터키는 기독교(그리스정교)와 이슬람교로 종교가 판이한데다 역사적으로도 오랜 세월 반목으로 일관해 왔다. 터키의 오스만 투르크는 15세기부터 400년간 그리스를 지배했고, 발칸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그리스가 터키를 공격해 영토를 할양받았다. 20세기에 접어들자 그리스계와 터키계가 함께 살고 있는 키프로스 섬이 양국에 새로운 분쟁 불씨가 되었다.

그리스계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은 이 섬에서 1974년 그리스와 통합하기를 바라는 극렬 그리스 민족주의자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자, 터키군은 즉시 키프로스를 침공해 북부 40%의 땅에 터키계 정부를 수립했다.

남쪽 그리스계 키프로스 공화국은 유엔에 가입한 독립국이지만, 북쪽 터키계 키프로스는 터키만 국가로 승인했다. 터키계 키프로스엔 많은 터키군이 주둔해 있고 터키화폐 TL(Turkish Lira)이 사용되고 있다.

터키시 키프로스에서 터키 본토까지는 불과 60km로, 보트로 3시간밖에 안 걸리지만 그리스까지는 700km나 떨어져 있다. 그리고 그리스 인구는 700만명인 데 비해 터키 인구는 6000만명으로 군사력에서도 비교가 안 된다. 이런 여건들이 오늘의 키프로스를 만들어 놓았다.

니코시아 남북 분단 경계선을 따라가다가 철조망과 불에 탄 집들 사이에 국경 검문소가 적막에 싸여 있었다. 그 앞에서 음료수를 파는 노인에게 물어보니 놀랍게도 외국인은 북쪽 터키시 키프로스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단 9시간만 체류할 수 있단다.

이튿날 아침 8시, 그리스계 사복 국경 경찰의 싸늘한 심문(?)을 받은 후 100여m나 되는 음산한 완충지역을 지나 터키시 키프로스 국경 검문소에 닿았다.

그들은 대환영이다. 택시를 세내 8시간 동안 손바닥만한 북키프로스를 돌아다니다 데드라인(dead line)인 오후 5시 이전에 남키프로스로 돌아왔다. 북쪽에서 쇼핑한 물건은 모두 압수한다는 엄포때문에 담배 한 갑만 사왔다.

그날 밤 라나카 바닷가 호텔에서 마리아에게 “호텔 데스크가 투숙 손님에게 터키시 키프로스에는 갈 수 없다는 엉터리 정보를 줄 수 있느냐”고 따졌다. 그러자 그녀는 “몰랐다”라고 싸늘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작년 8월 터키 지진과 9월 그리스 지진 발생 이후 양국이 상호 구조대원을 파견하고 구호물자를 보내며 봄날을 맞기 시작했지만, 키프로스의 그리스계와 터키계는 여전히 풀릴 기미가 없다.冬

여행 안내

유럽 대부분의 대도시와 중동에서 키프로스(남쪽 그리스계)로 가는 비행편이 있다. 국제항공이 있는 라나카는 조그만 해변도시로 호텔이 많아 상대적으로 호텔 값이 싼 편이다. 꽤나 번잡스러운 이 나라 수도 니코시아에 갈 필요 없이 라나카에 머물 일이다(샌드비치캐슬 호텔 방값 55달러).이 나라엔 합승택시라는 독특한 교통 시스템이 있어 편리하기 짝이 없다. 호텔 프런트 데스크에 부탁하면 합승택시가 오고 승객이 내릴 곳까지 데려다 준다. 이 나라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가도 요금은 6달러밖에 되지 않는다.

값싸고 질 좋은 포도주가 이나라 여행의 매력이다. 사실 볼거리는 남쪽 그리스계 키프로스보다는 북쪽 터키계 키프로스가 휠씬 많다. 수많은 로마 유적과 빼어난 자연경관이 있지만 당일치기를 해야 한다는 아쉬움이 있다. 키프로스에 가면 분단과 관련한 정치적인 얘기는 하지 않는 게 좋다.

신동아 2000년 5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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