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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운의 지중해 편지

슬로베니아 피란

아드리아에 온몸을 맡기다

  • 사진/글·최상운(여행작가) goodluckchoi@naver.com

슬로베니아 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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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베니아 피란

전형적인 휴양지 피란에서는 길거리에서도 수영복 차림의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탈리아 북쪽의 국경도시 트리에스테를 떠나 슬로베니아로 가는 버스 안에서 당신에게 편지를 쓴다. 차는 지중해 속의 작은 바다 아드리아해를 따라 내려가고 있다. 아드리아의 바다는 깊이 때문인지 조금 검푸르게 보인다.

슬로베니아 피란

바닷가 방파제 앞 카페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

수다 속에 사라진 국경

차 안에는 여행객보다 슬로베니아 할머니가 더 많다. 이들은 하나같이 바구니며 보자기를 들고 있다. 무슨 용도인지 궁금했는데 나중에 이들이 국경을 넘어 슬로베니아에 내릴 때 정류장에 차를 대고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을 보고서야 알게 됐다. 이들은 국경 넘어 이탈리아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한 나라와 다른 나라의 국경선이 이렇게 물렁해도 되는 건가. EU에 속한 나라들끼리 국경을 개방한 것은 많이 봐왔지만 할머니들이 장을 보러 국경을 넘나드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국경에 대한 경직된 생각을 가진 나 같은 이방인에게 이런 광경은 충격적이면서도 신선하다. 슬로베니아 할머니들의 수다 속에 이탈리아-슬로베니아의 국경은 통쾌하게 사라지고 없었다.

슬로베니아 피란

방파제에서 아이들이 다이빙과 수영을 즐기고 있다.

창밖으로 슬로베니아의 풍경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여행을 떠나오기 전 막연히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전원 풍경과 집들에서 유럽의 여느 선진국 못지않은 부유함과 여유가 묻어난다. 옛 유고연방을 구성했던 나라들 중 가장 잘사는 나라였다는 말이 실감나게 다가온다. 나중에 이 나라의 국민소득을 알아봐야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우리의 짧은 지식이나 선입관이 실제와는 얼마나 다른지, 여행은 우리의 무지를 깨우쳐주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남프랑스 느낌의 피란항

남쪽으로 더 내려가 목적지인 피란(Piran)이 가까워지니 아드리아의 해변 휴양지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창밖으로 보이는 휴양지의 분위기 또한 고급스럽다. 불과 10여 년 전에 유고 내전이 있었지만 슬로베니아는 겨우 10여 일의 짧은 전쟁을 치르고 독립을 했다.

슬로베니아 피란

피란 출신의 유명한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작곡가인 타르티니의 동상이 있는 중앙광장.



나중에 발칸반도 국가 중 최초로 EU에 가입했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일원이 됐다. 그러니 슬로베니아에서 살벌한 유고 내전의 기억을 끌어낸다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다. 하기야 이제는 예전 부족 간 피비린내 나는 살육이 벌어지던 아프리카에서도 사파리용 지프가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세상이다. 여행은 이제 산업이 됐고, 최소한 그 테두리 안에서 우리는 편하고 안전하게 활보할 수 있다. 가끔 그 테두리를 벗어나고 싶은 유혹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럴 때는 신변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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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글·최상운(여행작가) goodluckcho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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