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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우, 절집 숲에서 놀다 ⑥

마음을 씻고 마음을 여는 개심사 솔숲

  • 전영우│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

마음을 씻고 마음을 여는 개심사 솔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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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 소나무 고유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하는 화가나 사진작가, 또는 시인들은 오히려 굽은 형태의 소나무에서 역동의 기운과 생명력을 느낀다. 그래서 쭉쭉 곧은 소나무보다 굽은 형태의 소나무를 더 선호한다. 굽은 소나무가 표출하는 조형적 아름다움 때문이다. 예술가들의 소나무관(觀)은 소나무를 베어서 쓸 재목으로 바라보는 임업적 시각과 전혀 다른 것이다. 이는 아마도 곧은 소나무보다 굽은 소나무들이 문학과 예술의 소재로 더 멋지게 형상화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외나무다리로 영지(影池)를 건넌다. 개심사가 코끼리 형상을 한 상왕산 자락에 안겨 있기에 영지는 코끼리의 물통을 상징한다던가. 사방으로 가지를 뻗은 배롱나무가 먼저 객을 맞는다. 마음을 여는 절, 개심사는 654년(백제 의자왕 16년)에 창건되었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걸쳐 고쳐 짓거나(重建), 수리(重修)하거나 또는 낡은 건물을 헐고 다시 짓는(重創) 과정을 여러 번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개심사는 조선 성종 6년(1475)에 있었던 산불로 절집이 모두 소실되었다고 한다. 산불은 충청도 절도사를 지낸 김서형의 사냥 때문에 일어났고, 절집은 물론이고 주변의 모든 숲이 화마를 피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후, 이 고장의 다른 절집들은 임진왜란으로 전소되거나 파괴되었지만, 개심사는 전란의 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절집의 규모가 작은데도 개심사가 충남의 4대 사찰로 명성을 얻고 있는 이유는, 근대 한국불교 선종의 중흥조로 불리는 경허스님이 이곳에서 수도생활을 한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개심사가 품고 있는 보물로는 대웅전(보물 143호)과 영산회괘불탱(보물 1264호) 등이 있다.

절집 꽃나무와 육법공양

마음을 씻고 마음을 여는 개심사 솔숲

영지의 외나무다리를 건너면 해탈문에 이른다.

개심사가 품고 있는 또 다른 보물은 이곳에 터 잡은 자연유산이다. 바로 매화와 복사꽃, 그리고 청백홍의 색깔로 꽃을 피우는 겹벚나무들이다. 이들 꽃나무(花木)들 중에서도 초여름이 시작될 시점인 음력 4월 초파일 전후에 3가지 색깔의 겹꽃을 피워내는 왕벚나무의 꽃이 유별나다. 어린아이 주먹만한 크기의 개심사 왕벚꽃은 희고 붉고 푸른 꽃을 피워내기에 5월의 개심사를 꽃 대궐로 탈바꿈시킨다. 특히 다른 곳에서 쉬 볼 수 없는 청색의 벚꽃이 단연 압권이다. 청벚꽃은 붉은빛이 덜한 반면, 꽃심이 청포도 같은 연한 녹색을 띠고 있어서 푸르스름해 보인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보면 마치 병든 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청벚꽃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개심사에서만 자란다고 알려져 있다. 허름한 해우소 옆이나, 돌로 대충 쌓아 지은 오래된 낡은 창고 곁에서 변함없이 아름다운을 꽃을 피워낸 벚꽃의 화려함을 감상하면, 개심사를 꽃 대궐로 부르는 이유를 수긍할 수 있다.

벚나무는 예로부터 절집과 인연을 맺어왔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에 이르는 십리벚꽃길, 백양사 초입의 벚꽃 길이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화엄사의 올벚나무, 개심사의 삼색 왕벚나무처럼, 절집에 이르는 도로변이나 절집에 벚나무를 심는 이유는 불가에서 벚꽃을 속세를 떠나 극락(피안)의 세계로 들어가는 ‘피안앵(彼岸櫻)’의 상징처럼 여기기 때문이다.



봄은 남녘의 화신이 북상하면서 무르익기 시작하는데,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절집의 동백이 개막 테이프를 끊고, 매화와 복사꽃이 그 뒤를 잇는다. 벚나무는 어쩌면 조금 늦게 봄이 무르익고 있음을 알리는 최종주자일지 모른다. 여름의 문턱에서 왕벚꽃으로 장식되는 꽃 대궐의 장관을 못 잊어 개심사에 왕벚나무의 개화 여부를 전화로 문의했다. ‘벚꽃’이라는 이야길 꺼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답이 돌아왔다. “아직 피지 않았습니다. 2~3일 더 있어야 필 것 같지만, 짐작일 뿐 그건 꽃이 피고 싶어야 피는 것 아닙니까?” 왕벚꽃의 개화시기를 궁금해 하는 확인 전화가 전국 각지에서 얼마나 많이 걸려왔으면 바로 이런 답변이 튀어나올까? 불사나 스님의 안위보다 벚꽃의 개화를 확인하려고 수없이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 보살의 심경을 헤아려봤다.

이 땅의 사찰들은 장구한 역사의 사연만큼이나 각기 다른 꽃나무를 키우고 있다. 백련사, 선운사, 화엄사처럼 동백꽃이 봄철을 장식하는 절집이 있는가 하면, 직지사처럼 절집 마당 한구석에 자라고 있는 수백 년 묵은 개나리가 봄의 절기를 알리는 절집도 있다. 또 상원사나 부석사처럼,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야생목인 산돌배나무의 꽃이 생명의 계절이 왔음을 알리기도 한다. 절집마다 제각각 다른 화목들이 자라는 데는 절집의 유구한 전통이나 스님들의 독특한 취향을 무시할 수 없지만, 불가에 전해 내려오는 육법공양(六法供養)의 전통으로 짐작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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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우│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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