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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우, 절집 숲에서 놀다 ⑦

백담사에서 봉정암에 이르는 순례자의 숲길

  • 전영우│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

백담사에서 봉정암에 이르는 순례자의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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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해 한용운이 머물렀으며, 전직 대통령 내외가 은신해 더 유명해진 백담사. 백담사와 더불어 영시암과 오세암, 봉정암을 품고 있는 내설악은 그 같은 유명세와 무관하게 아름답고 평화로운 계곡과 숲으로 한결같이 중생을 감싸왔다. 불심이 다소 부족해도, 부와 권력이 없어도 한번 걸어볼 용기와 적멸보궁을 확인할 의지만 있으면, 수백 년 묵은 아름드리 나무와 맑은 물, 미소가 온화한 동행자들이 당신을 격려하고 이끌어줄 것이다.
백담사에서 봉정암에 이르는 순례자의 숲길

용대리에서 백담사에 이르는 계곡의 풍광.

여름을 향해 달리는 절기임에도 이른 아침의 백담계곡은 서늘했다. 서늘한 아침 공기를 헤치고 봉정암을 향해 걸음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삼보일배로 수행 중인 한 처사를 만났다. 처사의 행색은 단출했다. 작은 배낭 한쪽에 생수통이 담겨 있고, 종아리는 단단한 각반으로 감쌌으며, 우중(雨中)에도 삼보일배에 지장이 없도록 방수용 바지에 등산화를 신고 있었다. 땅바닥을 짚고 절하는 데 편리하도록 손에는 두툼한 장갑을 끼고 있었다. 세 걸음 걷고 한 번 절하는 행위를 말없이 반복하는 처사에게 보조를 맞추어 잠시 함께 걷다가, 용기를 내어 말을 붙였다.

“처사님 삼보일배의 여정은 어디까지입니까?”

“백담사에서 봉정암까지 할 참입니다.”

“시간이 많이 걸릴 텐데요?”

“시간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우문현답이 좀 더 이어졌지만, 더는 대화를 원치 않는 수행자에게 무례를 무릅쓰고 마지막으로 어리석은 질문을 하나 더 던졌다. “왜 삼보일배를 하십니까?” 뻔한 걸 왜 묻느냐는 듯 안타까운 침묵이 잠시 흐른 뒤에, “나 자신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란 짧은 답이 돌아왔다.

삼보일배는 ‘불보(佛寶)·법보(法寶)·승보(僧寶)의 삼보(三寶)에 귀의한다는 뜻을 담고 있으며, 흔히 첫걸음에 이기심과 탐욕을 멸하고, 두 번째 걸음에 속세에 더럽혀진 진심(塵心)을 멸하고, 세 번째 걸음에 치심(恥心·어리석음)을 멸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세 걸음 걷고 한 번 절하면서 자신이 지은 모든 나쁜 업을 뉘우치고, 깨달음을 얻어 모든 생명을 돕겠다’는 서원을 하고 있는 이에게 삼보일배를 하는 이유를 물었으니 나의 무지가 지금도 부끄러울 뿐이다.

백담사에서 봉정암에 이르는 숲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원시림 안으로 난 숲길이다. 삼보일배를 하는 처사처럼, 불자에게는 생애 한 번은 꼭 다녀와야 할 순례자의 숲길이라 할 수 있다.

세월이 가져온 내설악의 변화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 백담사와 영시암과 오세암과 봉정암을 품고 있는 내설악도 예외는 아니다. 접근 방법과 이용 제도와 찾는 사람도 수많은 변화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30~40년 전에는 상봉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속초행 첫 버스를 타고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를 4~5시간 달려 인제와 원통을 지나 용대리에서 내리면 설악산 대청봉을 향한 결연한 의지를 시험할 수 있는 20여 ㎞의 긴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텐트와 취사도구, 이틀이나 사흘치 식량이 들어 있는 배낭이 크고 무거웠지만, 산꾼들에게는 당연한 차림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새로 생긴 서울-춘천-동홍천 고속도로와 확장된 국도 덕분에 서울에서 용대리에 이르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2시간 반으로 줄어들었다. 절집에 이르는 변화는 또 있었다. 용대리에서 백담사에 이르는 8㎞의 계곡 길도 20여분 만에 주파할 수 있는 교통편이 생긴 것이다. 용대리 주민들이 운행하는 버스 편이 없던 시절엔, 그 계곡 길을 지프나 겨우 다닐 수 있었고, 대부분은 두발로 걸어야 했다.

이 땅의 여느 국립공원처럼, 내설악을 찾는 이들에게도 제약이 많다. 국립공원 제도가 정착되지 않았던 시절엔 누구나 할 수 있었던 많은 일이, 오늘날은 하면 안 되는 일, 또는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 것 또한 세월이 만든 변화라 할 수 있다. 계곡에서 수영을 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아무 곳에서나 취사를 해서도 안 되고, 함부로 야영할 수 없고, 정해진 등산로가 아닌 등산로를 이용할 수 없는 규제들이 바로 설악산을 찾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수용해야 할 변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변화는 내설악을 찾는 탐방객들의 성격이다. 등산을 즐기는 산악인들 못지않게 봉정암의 적멸보궁을 찾는 순례자가 급격하게 늘어난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절정기엔 봉정암을 순례하는 불자의 숫자가 하루에 3000명에 달한다고 하니, 등산객보다 순례자의 숫자가 더 많다는 주장에 귀를 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설악을 찾는 사람들의 행색도 단출해졌다. 순례자 대부분이 간식과 우의와 여벌옷을 넣을 수 있는 작은 배낭 하나만 달랑 메고 산을 찾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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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우│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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