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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함께하는 우리 산하 기행 ⑩

고가(古家) 기왓장에 쌓인 세월

안동 편

  • 최학│우송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jegang5@yahoo.com

고가(古家) 기왓장에 쌓인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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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마을에서는 어느 쪽으로 들든 결국 풍산 류씨 종택인 양진당에 이르게 마련이다. 이 고가를 중심으로 하여 골목들이 방사선 꼴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을 이끌고 가는 때면, 이 종택에 이르러 나는 어김없이 그들에게 한 명 한 명 차례대로 신발을 벗고 툇마루에 올라보게 한다. 툇마루 가운데서 대문 쪽을 바라보며 오른편으로 두세 걸음만 옮기면 된다. 그러곤 반듯이 선 채로 좀 전에 통과한 대문 지붕 너머로 해서 시선을 멀리 보낸다. 무엇이 보이는가? 신기하고 재미나다. 종지 하나를 엎어놓은 듯한 산봉우리가 지붕선 위로 얼굴을 봉긋이 내밀기 때문이다. 풍수에 관심이 없는 요즘의 학생들도 이 장면에서는 쉬 탄성을 지는다.

드물지 않게 학생들을 인솔해 하회에 들를 때마다 내게는 적잖은 고민이 있었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게 할 것인가, 이에 대한 구체적인 답을 가지지 못한 때문이었다. 류씨 문중과 서애 류성룡을 말하고 하회탈춤이며 줄불놀이를 얘기하고 강물이 휘돌아가는 풍광에 곁들여 풍수지리를 일러줘본들 그것은 판에 박힌 학습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이는 “경치가 제법 그럴싸하네” “민속촌처럼 옛날 집들을 잘 보존하고 있구나” “양반 동네에 뭐 먹을 만한 게 없을라나”하며 대충 이 집 저 집을 기웃거리고 기념품 가게에 걸린 탈이나 구경하다가 양진당, 충효당을 거쳐 강가 솔밭으로 나오기가 예사인 요즘의 젊은 세대들에게, 하회마을이 던져줄 언어들이 너무 경직돼 있음을 토로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회마을에 앉은 시간

그 무렵 내가 읽은 풍수책 하나가 썩 재미있었다. 태극 형국으로 마을을 감싸 도는 강에 대한 얘기며 연화부주형의 마을 형세에 대해선 그동안 많은 언급이 있었지만 이 책에서 주목하는 삼태봉 이야기는 그렇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 책은 쉬 관념화될 수 있는 풍수를 현장 중심으로 구체화해 직접 현상을 목격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점이 마음에 드는데, 삼태봉 이야기도 그중 하나였다.

양진당 툇마루에서 대문 지붕 위로 볼 수 있는 산봉우리에 관한 이야기는 대강 이런 것이다. 하회마을 나들목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세 봉우리 산이 있는데 이것이 삼태봉이다. 풍수에서 삼태봉은 삼정승의 배출을 기약한단다. 양진당 대문 위로 보이는 산봉은 마늘봉이라고 하는데 삼태봉과 직접 연결되면서도 적잖은 간격을 두고 있다. 풍수 형국에서 보면 마늘봉은 삼정승이 임금 앞에 설 때 손에 드는 홀(笏)에 해당한다. 계급사회의 신분증이나 다름없는 홀 하나를 집안으로 끌어들인다면 삼태봉이 기약한 삼정승 모두를 집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나 같다. 굳이 양진당이 마늘봉을 향해 좌향을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고 이 책이 설명하고 있는데 그럴싸하며 재미있다. 이렇듯 하회마을 또한 사소한 하나라도 눈여겨볼라치면 볼 것이 참으로 많지만 그렇지 않은 뜨내기 눈에는 용인 민속촌보다 볼 것이 없는 강가 시골 마을에 지나지 않는다.

냇물이 마을을 돌아 흐른다고

하회(河回)

오늘도 그 냇물은 흐르고 있다.

세월도 냇물처럼 흘러만 갔는가?

아니다. 그것은 고가(古家)의 이끼 낀 기왓장에 쌓여

오늘은 장마 뒤 따가운 볕에 마르고 있다.

그것은 또 헐리운 집터에 심은

어린 뽕나무 환한 잎새 속에 자라고,

양진당(養眞堂) 늙은 종손(宗孫)의 기침소리 속에서 되살아난다.

서애대감(西崖大監) 구택(舊宅) 충효당(忠孝堂) 뒤뜰,

몇 그루 모과(木瓜)나무 푸른 열매 속에서,

문화재관리국 예산으로 진행 중인

유물전시관 건축 공사장에서 그것은 재구성된다.

- 김종길 시 ‘하회에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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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학│우송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jegang5@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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