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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함께하는 우리 산하 기행 ⑫

쪽빛 바닷가에서 가지는 애모의 감상

  • 최학│우송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jegang5@yahoo.com

쪽빛 바닷가에서 가지는 애모의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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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가지를 지나와 성처럼 도시를 둘러싼 고지대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작은 만(灣)을 끼고 앉은 통영 원도심은 장난감 도시처럼 올망졸망해 보인다. 저렇게 작고 예쁜 곳에 정말 배들은 닻을 내리고 자동차들은 소리를 내며 다니는 것일까. 자못 유치한 동심으로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도 그 탓이지만 막상 도심으로 내려서 보면 세상에 흔한 것들이 이곳에도 모두 들앉아 있어 적이 안심된다. 백화점이 있고, 미장원이 있고, 정보통신학원이 있다. 그리고 좁은 가도는 출퇴근 시간과는 무관하게 제대로 속력을 내지 못하는 차들로 가득하다.

나그네란 제 떠나온 곳과 다를 바 없는 풍물을 보고서도 전혀 다른 냄새를 맡을 줄 아는 이를 일컫는 말이다. 하여 통영을 찾아온 객인들은 이곳 통영만이 가진 냄새와 빛깔을 찾는답시고 코를 킁킁거리고 눈빛을 반짝이게 마련이다. ‘길 떠난 자, 통영에 오면 모두 시인이 된다’는 저 지극히 감상적인 언사도 이들이 지어낸 말에 지나지 않는다.

통영, 안쓰러운 사랑을 키우는 쪽빛 바다

‘시’와 ‘시인’이란 말이 한 도시의 수사(修辭)가 되고 있는 저간의 사정이야 새삼 일러 무엇하겠는가. 이는 통영의 복인 동시에 통영의 동통(疼痛)인 것을. 그렇지만 성긴 빗방울이라도 떨어지는 날, 포구에 정박한 배들처럼 출렁이는 걸음으로 부두 거리를 걷다가 문득 환청 같은 소리를 듣고 선상의 깃발들을 쳐다보노라면, 아무리 각박한 가슴일지언정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 같은 시 구절 하나는 읊조리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 역시 통영인 까닭에서다.

더위가 오기 직전, 나는 또 문학을 배운다는 학생들을 이끌고 통영을 찾았다. 이들 학생에게는 생애 처음의 문학답사이지만 내게는 정례적인 행사나 다를 바 없다. 그 단조로움을 덜고자 나는 해마다 행선지를 바꾸는 형편이었는데 통영은 항상 이웃 삼천포며 진주와 함께 묶어두고 있었다. 까닭은 모른다. 그냥 청마(靑馬·시인 유치환)의 시를 떠올리면 웬일인지 박재삼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진주 남강의 쪽빛 강물이 그려지는 탓인지도 모른다.

자동차가 도심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다 큰 녀석들이 창밖을 내다보며 소리쳐댄다. “우체국이 어딨어? 우체국?” 이것도 교육의 힘이다. 학생들에게 나그네의 후각을 심어주려고 사전에 ‘청마 탐구’를 시켰던 게 이런 효과를 낸다.

통영중앙우체국 건물은 좁고 복잡한 거리 한쪽에 단정하게 앉아 있다. 청마 유치환 덕에 우리나라 우체국 중에서도 가장 유명세를 타고 있다는 그 건물이다. “이럴 바엔 아예 우체국 이름을 청마 우체국이라고 하자”는 논의도 그치지 않는다는 소식도 듣고 있다. 그렇지만 막상 우체국에 들어선들 무엇이 있겠는가. 요즘 같은 세상에 창가에 서서 편지봉투에 우표를 붙이고 있는 한 사람인들 만날 수 있을 까.

남모르는 단심(丹心)을 가졌던 청마는 통영에 머물던 시기, 거의 매일같이 이곳에 와서 편지봉투에 우표를 붙이곤 했다고 한다. 요즘처럼 e메일이며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쓰지 못했던 때니 응당 그런 수고와 불편쯤은 감수했으리라.

애달픈 사랑이 전설이 된 우체국

한낮의 우체국 안은 월말의 은행처럼 번잡하다. 편지를 전해주는 일보다 돈 거래의 일이 훨씬 많아 보이는 요즘의 우체국, 이곳에서 청마의 체취를 맡고 그의 족적을 더듬는 일은 부질없다. 시간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혹한 시간조차 창밖에 드리워지는 에메랄드빛 하늘만큼은 어쩌지 못한다. 내가 천천히 창가에 다가가 청마 선생께 문후 인사를 올린다. “선생님, 요즘도 편지를 부치러 오십니까?” “그렇다네…” 웅웅, 창을 통해 전해 오는 도시의 소음도 이곳에선 바닷바람과 한통속으로 여겨진다. 한 개인이 가졌던 애달픈 사랑이 그 지극한 언어로 인해 전설로 감염되는 공간이 이곳임도 깨닫게 된다.

기념 삼아 굳이 통영우체국에서 엽서 한 장이라도 쓰겠다며 창구 앞에 줄을 서는 학생들의 모습을 바라본다. 문득 나는 친구에게, 애인에게 쓸 그들의 언어가 어떤 것인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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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학│우송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jegang5@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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