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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함께하는 우리 산하 기행 ⑬

사람 사는 이야기 품은 청정한 풍경들

충북 괴산

  • 최학│우송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jegang5@yahoo.com

사람 사는 이야기 품은 청정한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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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은 잘생긴 바위와 소나무가 많은 산이다. 송석(松石)이 빼어난 것은 산 자체의 지기(地氣)가 탁월함을 뜻한다. 속리산의 수많은 계곡 또한 모두 수려한데 괴산군 청천면의 화양동계곡도 그중 하나다. 훤칠한 바위들을 감싸고 어루만지며 흐르는 골물은 손 시리게 차고 맑으며 암벽과 수림이 이를 껴안으며 곳곳에 승경(勝景)을 빚어낸다.

한편으로 화양동계곡은 ‘사람의 역사’를 곁들이는 덕에 볼거리뿐만 아니라 생각할 거리를 주는 자연이다. 우암(尤庵) 송시열의 족적은 이 깊은 산간에도 뚜렷이 남아 있다.

계곡 초입에서 만나는 만동묘(萬東廟)부터 둘러보자. 만동묘는 도산서원 등과 더불어 조선 4대 서원으로 손꼽힐 만큼 유명했던 서원이다. 10년 전만 해도 비석 하나와 초석들만 빈 터에 남아 있었지만 2006년 복원 공사를 거쳐 현재의 형태를 갖췄다. 굳이 만동묘까지 복원을 해야 하느냐고 당시에도 논란이 많았지만 아무튼 조선 후기 수백 년간 가장 위세가 등등했던 서원 하나가 이곳에 있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우암 송시열

세상 떠나기 전, 송시열은 제자 권상하를 불러 중국 명나라의 신종과 의종 두 황제를 제사 지낼 묘우(廟宇) 짓기를 당부했으며 권상하는 스승의 유훈에 따라 전국의 유림을 동원해 이 서원을 지었다. 노론 천지의 세상에서 권력과 돈을 끌어들여 공사를 해치우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나아가 조정에서는 좋은 일을 했다며 세금도 안 내는 광대한 논밭과 노비들까지 서원에 딸려주었다.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를 도와준 명나라 황제의 은혜를 잊지 않고 영원토록 기린다는 뜻을 담은 서원이니 모화(慕華)사상이 깊던 당대에는 명분도 좋았다.

경치 좋은 곳에 고래등 같은 시설이 있으니 글줄깨나 하는 한량들에게는 이보다 좋은 놀이터가 없었다. 그리고 권력 쥔 자들이 다 이곳을 거쳐 갔으니 시골 현령 자리라도 하나 얻을라치면 엽전 꾸러미를 짊어지고 와서 이 물에서 놀아야 마땅했다. 머잖아 만동묘가 우암의 제자들이 주축이 된 노론의 아지트로 변한 것도 다 이 때문이었다.

이들은 이곳에서 자기네 파당의 영원한 권세를 위해 갖은 궁리를 짜내고 오만 가지 상소를 올리곤 했다. 마음에 안 들면 시골 원님이며 관찰사를 불러다 종아리를 걷어차기 예사였으며 서원 운영 경비를 뜯어내기 위해 양민들을 윽박지르고 두들겨 패는 일도 빈번했다. 대원군 이하응이 거렁뱅이 신세로 떠돌던 시절 이곳에 들러 밥 한 끼 얻어먹으려다가 갖은 수모를 당한 것도 이 무렵의 일이었다. 훗날 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할 때 당연히 만동묘가 제1순위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백성들은 만동묘를 없앤다는 데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가게들이 있는 마을을 지나면 개울 너머로 암벽 위에 제비집처럼 얹힌 독서당을 볼 수 있다. 한때 벼슬자리에서 물러나 있던 송시열이 책을 읽던 집이다. 경치가 너무 좋고, 너무 시원한 데 앉은 별당이라 나 같으면 되레 책 한 페이지를 읽지 못할 듯싶은데 옛 분들은 참 대단하시다. 한데, 끼니 때마다 밥상을 나르고 또 손님이 왔다고 술상이며 바둑판까지 짊어지고 벼랑길을 오르내리는 상놈은 어쩌노. 쯧쯧.

조선왕조실록에만도 그의 이름이 3000번 이상 나온다는 송시열. 그리고 전국 42개 서원에서 배향을 받고 있는 그에 대한 긍정 부정의 논란은 지금도 그치지 않고 있다. 그를 추앙하는 쪽에서는 공자 맹자의 반열에 그를 놓아 송자(宋子)라 부르기를 서슴지 않지만 반대쪽에서는 ‘시대에 뒤떨어진 학문을 갖고 자파의 이익만을 추구한 독선자’로 치부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아무튼 그는 타협을 모르는 성품 때문에 사람 관계가 좋지 못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조선 중기 당쟁을 더 심화시키고 치열하게 한 원인이 되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83세 때 그는 제주도 유배지에서 서울로 압송되어 오던 중 전북 정읍에서 사약을 받고 죽었다. 정승을 지낸 이를 사약을 내려 죽인다는 것은 조선 역사에서도 극히 드문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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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학│우송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jegang5@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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