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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함께하는 우리 산하 기행 ⑮

사라진 문명을 만나러 가는 길

충남 부여

  • 최학│우송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jegang5@yahoo.com

사라진 문명을 만나러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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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하늘 밑

너도야 왔다 가는구나

쓸쓸한 세상 세월

너도야 왔다 가는구나



다시는 못 만날지라도 먼 훗날

무덤 속 누워 추억하자,

호젓한 산골길서 마주친

그 날, 우리 왜

인사도 없이

지나쳤던가, 하고.

- 신동엽 시 ‘그 사람에게’ 전문

신동엽에게도 이런 적막한 시가 있음이 반갑고 고맙다.

백제가 지금의 공주 땅에서 부여로 수도를 옮긴 것은 538년(성왕 16년)의 일이다. 그 뒤 여섯 명의 왕을 세우면서 부여는 120년간 명실상부한 정치문화의 중심지가 됐다. 번성기에는 13만여 호(戶)가 살았다 하니 당시의 부여가 지금의 부여보다 더 크고 번창했음도 짐작할 만하다. 그러나 멸망한 나라는 후대에 남기는 것이 거의 없다. 텅 빈 정림사 절터에 서 있노라면 그 허망감, 고절감이 가슴을 친다.

텅 빈 정림사 절터

이제 3000여 평이나 되는 이 절터도 발굴조사를 마치고 정리가 되었고 근처에 번듯하게 박물관도 세워졌다. 풀풀 먼지가 피어나던 때와는 격세지감이 있지만 사라진 문명에 대한 공허감이 제대로 정리되는 것은 아니다. 남아 있는 기록이 없는 탓에 오랜 기간 이 절터는 그냥 절터로만 존재해왔다. 그러다가 일제 때 처음 조사가 실시됐고, 그때 출토된 기와 조각에 ‘정림사(定林寺)’란 글자가 또렷이 적혀 있은 덕에 사라진 절의 이름을 찾게 되었다.

지금은 금당(金堂) 자리에 최근에 복원한 건물만이 덩그렇게 서 있지만 본래의 절은 회랑이 전체를 빙 두르고 가운데 연못까지 두고 있던 운치 있는 절간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보(제9호)로 지정되어 있는 정림사지 5층 석탑도 이곳에 있다. 오늘날까지 부여 땅에 남아 있는 백제탑이라곤 오직 이것뿐이다. 한때 탑에 새겨진 소정방 관련 비문으로 인해 소정방이 백제를 평정하고 이를 기념해 세운 탑으로 오해했던 적도 있었다.

마멸 상태가 극히 심한 석불좌상도 예전엔 맨땅에 방치돼 있었는데 이제는 복원된 전각 안에 모셔져 있다. 불신(佛身)은 겨우 형체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오른쪽 팔과 왼쪽 무릎 등은 완전히 없어졌다. 평평한 얼굴에 이목구비가 형식적으로 처리되어 있어 부처의 형상과는 거리가 먼 편이다. 정림사 남쪽의 궁남지도 격을 갖추어 새 단장을 마친 덕에 찾아오는 이들의 발걸음이 그치질 않는다.

이 정도의 복원과 정리만으로는 백제에 대한 아쉬움이 너무 큰 것일까. 지지난해, 백마강 건너편에 백제문화단지가 문을 열었다. 예전 구릉지 사이로 논밭과 농가들이 아기자기 앉아 있던 규암면 합정리 일대가 거대한 관광단지로 바뀐 것이다. 사비성을 재현한다고 해서 우람한 전각들이 들어찼는가 하면, 백제의 풍속을 되살린다고 민속촌까지 꾸며놓았다. 지방정부가 17년의 시간과 7000억 원에 가까운 거금을 투자해 만든 회심의 역작이 바로 이 ‘잃어버린 왕국의 부활’이다. 처음 이곳에 와본 사람은 그 거대한 규모와 화려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경복궁 창덕궁은 여기에 비하면 차라리 옹색하다.

지난해 봄, 외국인 유학생들을 이끌고 이곳을 찾았던 나로서도 이 뜻하지 않은 장관에 한동안 당황스러웠다. 발굴과 보존의 차원을 완전히 뛰어넘어 1500년 전의 역사 재현이 가능하다고 믿고 무모할 정도의 의지와 열정, 돈을 쏟아 부은 이들에 대한 놀라움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내 자문해 본다. 고구려에 대한 향수가 짙다고 해서 경기도 용인 땅에 고구려 왕궁을 복원해도 되는 것인가? 그것이 과연 복원이고 재현인가? 그것이 가능한 일인가? 가능하다 해도 그것이 무슨 의미를 갖는가….

이쯤에서는 궁궐을 만들어놓고도 ‘백제궁’이니 ‘재현 사비궁’이니 이름을 붙이지 않고 ‘문화단지’라고 얼버무린 속사정도 알만하다. 근처에서 아직도 한창 공사가 벌어지고 있는 대기업의 리조트 사업과 연관시켜보면 더욱 그렇다. 거대한 영화세트장을 둘러보고 나왔다는 느낌. 그것이 나만의 감상이 아니길 바랄 따름이다.

“백마강에서 뱃놀이를 해본 적이 있는가?”

부여 이야기가 나올 때면 내가 더러 묻는 질문이다. 유적지는 왜 찾아가는가? 역사를 공부하러?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 정말이지 만사가 그런 식이라면 나는 애당초 길을 나서지 않겠다. 감흥이 없는 여로는 고역의 행로와 다를 바 없다. 흥은 즐거움이다. 왜 굳이 그 즐거움을 마다하는가. 나는 숙제 때문인지, 아니면 공부에 보탬 된다고 여겨서 그런지 박물관에서 노트를 펴들고 전시물의 설명을 깨알같이 옮겨 적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참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보고 느끼면 그만이지 고생스레 무엇을 왜 적고 있는가. 잊어먹을까봐? 잊어먹으면 어때서? 유물과 유적지는 나중에 천천히 봐도 괜찮다. 정 시간이 없으면 훗날을 기약하면 그만이다.

부여를 찾았다면 해 지고 놀빛이 하늘에 퍼질 때쯤 백제대교를 건너 나루터 규암으로 가볼 일이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다 하더라도 놀잇배 한 척은 빌리면 좋겠다. 뱃전에 쏘가리탕, 새우탕 등을 갖춘 술상이라도 얹으면 금상첨화다. 뱃놀이는 철저히 뱃놀이다워야 한다.

해 저물녘 뱃놀이를

최학

1950년 경북 경산 출생

고려대 국문과 및 대학원 졸업

197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창작집 ‘잠시 머무는 땅’ ‘식구들의 세월’ 등

장편소설 ‘서북풍’ ‘안개울음’ ‘미륵을 기다리며’ ‘화담명월’ 등


규암에서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 고란사를 다녀오는 선유(船遊)야말로 흥이 흥을 부르는 좋은 놀이다. 성긴 빗방울이 떨어져도 좋고 교교히 달빛이 쏟아지면 더욱 좋다. 취중에 스스로 의자왕이 되면 어떻고 사비성을 불사른 소정방이 돼보면 어떠랴. 강에서 강 같은 시간을 보고 포말(泡沫) 같은 사람살이와 나를 바라보는 그것만으로도 부여에 온 즐거움이 있다.

신동아 2012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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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학│우송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jegang5@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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