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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종교 발원한 순례와 은신의 땅

높고 깊고 아득한 모악산

  •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신흥종교 발원한 순례와 은신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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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가 서녘으로 넘어갔다. 산의 그림자가 넓은 마당을 어둠 속으로 몰아넣었다. 진표율사와 견훤, 대동계 정여립, 척양척왜 전봉준, 후천개벽 강일순, 원불교 소태산이 이곳에서 기도를 올렸다.
신흥종교 발원한 순례와 은신의 땅

모악산.

교황이 다녀갔다. 신드롬이 일었다. 천주교 신자는 물론이려니와 많은 이가 교황의 거룩한 발걸음과 아름다운 말씀과 은혜로운 눈빛을 우러렀다. 교황이라는 자리, 그 역사, 그 권위에 더해 가난한 이탈리아계 이민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아르헨티나의 가난과 슬픔과 애통함을 어루만져온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신부라는 점에서, 그리고 예수 이래 가장 위대한 성인으로 꼽히는 ‘프란치스코’라는 거룩한 이름을 무한한 책임감으로 떠안은 교황이라는 점에서, 우리 모두는 열렬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교황은 말씀을 남겼다. 한국 주교들과의 대화에서 “가난한 자를 위해 존재하는 교회가 가난한 자를 잊으면 안 됩니다. 교회가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면 가난한 자를 잊는 경향이 있습니다”라고 했다. 성과 속의 경계가 허물어져버린 이 나라의 종교 현황에서 볼 때,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가르침이었다.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강론에서는 ”바른 정신적 가치와 문화를 짓누르는 물질주의의 유혹에 맞서, 그리고 이기주의와 분열을 일으키는 무한 경쟁의 사조에 맞서 싸우기를 빕니다”라고 했다. 물론 그 싸움이 거리의 싸움, 광장의 싸움을 곧이곧대로 뜻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거리와 광장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싸움을 질책하는 것 또한 아니었다. 아울러 이 미사 강론에서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인해 생명을 잃은 모든 이들과 이 국가적인 대재난으로 여전히 고통 받는 이들을 성모님께 의탁합니다”라고 했다. 말씀만이 아니라 몸소 그렇게 실천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을 일일이 찾았고 가슴에 품었다.

왜 모악산으로 갔나

그리고 교황은 이 나라를 떠났다. 떠난 이후, 이 나라는, 교황이 오기 전과 다를 바 없는 상황, 아니 더 격해지고 야박해졌다. 교황이 그야말로 ‘전지전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또한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풀어야 한다는 것이 명백한 현실이지만, 그래도 교황이 탄 비행기가 이탈리아로 향발하자마자 무섭게도 이 나라는 한 줌의 공감도 연민도 윤리 감각도 실종된 상태로 다시 ‘침몰’하고 있다. 아시아 주교단과의 대화에서 교황은 “공감하고 진지하게 수용하는 자세로, 상대방에게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열 수 없다면 진정한 대화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대화가 독백이 되지 않으려면 생각과 마음을 열어 다른 사람, 다른 문화를 받아들여야 합니다”고 말했지만, 지금 이 나라에서 이 같은 공감과 대화가 이뤄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모악산으로 갔다. 언제고 한번은 가보리라 마음먹었지만, 이 산하의 모든 명산이 그렇듯이, 그저 놀이 삼아 왔다 갔다 하기에는 조심스러웠다. 경북 영주, 그 산골 깊숙한 곳에서 나는 태어났는데, 내 고향 산골에서 좀 더 올라가면 곧 소백산이다. 그런 산에 편한 마음으로 가기가 쉽지 않다. 태백산도 그렇고 지리산도 그렇다. 산이 좋아 산에 깃드는 산사람들에겐 이런 소리가 한가롭게 들리겠지만, 나는 들에 있을 때 마음이 편안하고 거기 앉아 산을 바라보면 마음이 뭉클해진다. 아득한 산, 드높은 산, 깊고 깊은 산.

1985년, 폭우를 뚫고 월악산 기슭의 산길을 자전거로 달리던 때가 생각난다. 밤이 깊어 길을 잃어 공사가 중단된 시커먼 건물 안에 들어가 겨우 비를 피해 하루를 잔 적 있다. 인부들이 시멘트 포대를 깔고 지저분한 신문지를 기어코 펴서 이불로 삼았다. 짓다만 건물이라 사방이 뚫려 있어 무서웠지만 그래도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는 피할 수 있었다.

과연 잠이 올까 싶었지만 영주에서 단양 거쳐 충주로 지향하는 길들이 워낙 험했던 탓에 금세 곯아떨어졌는데, 그러나 수시로 깰 수밖에 없었다. 들쥐들도 폭우를 피해 스며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열아홉 살의 나는 들쥐가 진실로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자주 몸을, 심하게 뒤척였다. 들쥐들도 내가 무서웠을 것이다. 내가 일부러 심하게 몸을 뒤척이면 슬금슬금 다가오던 녀석들이 사방의 구석으로 잽싸게 사라졌다. 달리 갈 곳이 없었다. 여명이 되어 겨우 한 치 건너 두 치를 살필 수 있게 되자, 나는 간신히 일어나 바깥을 내다보았다. 검은 산, 검은 물이 뒤엉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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