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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 세계유산도시를 걷다

창의성, 역사성으로 유토피아를 구현하다

프랑스 파리, 리옹

  • 조인숙 | 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 대표

창의성, 역사성으로 유토피아를 구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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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 조인숙 대표는 올해 세계건축문화유산 탐방에 나선다. 국제건축사연맹 ‘문화정체성-건축유산’ 위원장 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국제학술위원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는 조 대표는 세계유산도시 10여 곳에서 열리는 국제회의에 참석하면서 각 도시의 대표 건축물을 둘러보고 탐방기를 ‘신동아’에 실을 예정이다. 첫 회는 프랑스 파리, 리옹 편이다.
왕의 거주지였던 창덕궁, 혼(魂)의 사후세계인 종묘 및 백(魄)의 사후세계인 왕릉이 있는 최첨단 미래 도시 서울은 명실 공히 역사도시다. 건축유산이 산재한 도시는 많지만, 인구 1000만이 넘는 한 국가의 수도로서 이렇듯 건축유산이 세 종류나 유네스코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된 대도시는 드물다. 육십갑자(六十甲子) 넘도록 서울에서 살면서 궁궐, 종묘 등지에서 익힌 안목으로 세계유산도시를 걷고자 한다. 이 글이 추후 우리나라의 세계유산도시를 보존하거나 정비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 파리

프랑스 수도 파리는 ‘센 강변의 파리(Paris, Banks of the Seine)’라는 명칭으로 199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목록(문화유산)에 등재됐다. 평가 기준의 골자는 창의성, 역사성, 그리고 탁월한 도시 건축의 사례라는 점이다.

등재 당시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현장 실사보고서에 의하면 파리는 도시 경관의 연속성과 개방성을 유지하기 위해 조망권의 스카이라인까지 고려해 도시건축개발을 제한했고, 이 점에 전문가 평가단은 특별히 호감을 가졌다고 한다.

강(江)의 도시 파리는 루브르 궁전(현재는 미술관)에서부터 에펠탑까지, 콩코드 광장에서부터 크고 작은 궁전까지 건축유산 및 시가지의 형성과 역사 등이 센 강을 따라 한눈에 보이는 도시다. 12~13세기 고딕 건축물뿐 아니라 19~20세기 파리개조사업의 결과인 광장, 가로수 길 등 나폴레옹 3세와 파리 지사 오스만 남작의 업적도 빼놓을 수 없는 도시다. 또한 도시 곳곳에 아르누보 지하철 입구 및 파리의 역사물 표지판 등이 가로 조형물로 남아 기존 건축유산들을 빛내준다.

아침엔 메트로(지하철)로 진입했고, 저녁엔 버스를 타고 센 강의 반대편에서 내려 다리를 건너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과 생트 샤펠로 향했다.

창의성, 역사성으로 유토피아를 구현하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장미창.



노트르담 대성당(Cathedrale Notre-Dame de Paris)

성당의 종지기 콰지모도와 아름다운 집시 에스메랄다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다룬 1931년 빅토르 위고의 원작 소설, 이를 바탕으로 만든 뮤지컬로 더 유명한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은 센 강의 시테 섬(lle de la Cite) 동쪽 반을 차지하는 고딕 성당이다. ‘파리의 성모마리아 대성당’이란 의미다.

문예부흥시대(Renaissance, 14~17세기) 전까지 ‘프랑스 양식’으로 불린 고딕 건축은 12세기에 프랑스에서 시작해 15세기 말 16세기 초까지 성행했던 양식이다. 이 양식의 건축적 특징으로는 공중버팀벽(flying buttress), 교차궁륭(ribbed vault) 및 첨두아치(pointed arch)를 들 수 있다.

특히 노트르담 대성당은 버팀도리 또는 공중버팀벽(飛梁)이라는 구조 부재가 최초로 사용된 완벽한 고딕 건축으로 평가된다. 이는 건물이 무너지지 않도록 외벽에 덧댄 구조물 중 벽체에서 떨어져 나와 기둥에 연결된 독립된 부축 벽이다. 이전 시대의 로마네스크 건축은 원통형 천장의 하중을 벽이 받아 땅에 전달하므로 안정적인 구조가 되려면 벽체가 두꺼워야 했다.

고딕 양식과 스테인드글라스

하지만 고딕 건축은 아치를 교차하고 끝을 뾰족하게 해 힘이 분산되게 하고 밖에 별도의 부축 벽을 보강해 건물을 받쳐준다. 이 새로운 하중전달 체계 덕에 내부 공간은 넓어지고 벽체가 얇아지면서 창문을 크게 낼 수 있게 됐다. 아울러 색 유리창인 스테인드글라스가 발달해 기존의 어두운 성당 내부에 신비스러운 빛을 들이는 계기가 된다. 이후 고딕 양식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12세기 후반 삽질을 시작해 14세기에 완공한 성당은 18세기 말 프랑스 대혁명 때 많이 파손됐다. 건축가 장 바티스트 앙투안 라쉬와 19세기의 대표적인 복원건축가로 활약한 비올레 르 뒤크 감독의 지휘로 1845년부터 25년간 보수공사가 진행됐다. 보수공사를 하면서 첨탑(fleche)은 높아지고 장식은 더 화려해졌으며 건물에 키메라(Chimera) 조각이 첨가됐다. 이 보수공사는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동시대에 활약했던 영국의 존 러스킨이 건물의 ‘나이’를 중요하게 여기고 고대 건축의 철저한 원형 보존을 주창한 반면, 프랑스의 비올레 르 뒤크는 수리라는 것은 그 시점(나이)에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최종 완성된 상태로 재구성하는 것이라고 주창했다.

그 후 세계대전 때 유탄에 맞아 파괴된 하층부 스테인드글라스 등은 전쟁이 끝난 후 복구공사 때 현대적으로 재시공됐다. 1991년부터 수리 및 유지관리 계획을 수립해 대대적인 보수를 시작했는데 애초에는 10개년 계획이었으나 지금도 보수 중이다. 2014년에는 많은 조명기구를 LED로 교체했다(이런 점에서 우리나라에서도 문화재 수리에 대한 개념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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