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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도시를 걷다

핏빛 ‘개혁’에도 살아남은 중세 영국의 종교예술혼

영국 켄트州 캔터베리

  • 글·사진 조인숙 | 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 대표

핏빛 ‘개혁’에도 살아남은 중세 영국의 종교예술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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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오거스틴 수도원, 세인트 마틴 교회

St. Augustine’s Abbey, St. Martin’s Church


세인트 오거스틴 수도원은 아마도 현재 캔터베리 대성당이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현재 보존되어 있는 부분은 하나도 없다. 세인트 오거스틴 수도원 유적만이 캔터베리 대성당과 세인트 마틴 교회의 사이에 남아 있다. 세인트 오거스틴 수도원은 베네딕트회 수도원으로 598년 설립돼 사도 베드로와 바울에게 봉헌됐다. 영국 베네딕트회의 진정한 발상지인 초기 시설은 노르만족 침입 이후 978년 복원됐지만, 1538년 헨리 8세가 수도회 공동체를 해산시킨 이후 수도회 건물들은 사실상 모두 사라졌다.

세인트 마틴 교회는 도시 성벽 외곽에 있는데,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교구 교회이자 현재까지 그대로 사용되고 있는 범(汎)영어권 최초의 교회다. 세인트 마틴 교회의 대부분은 8세기 이전에 건축됐다.

이 교회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가 켄트의 색슨 왕국에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로마에서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사를 보낸 597년 이전에는 켄트의 베르타 왕비(Bertha of Kent) 개인 채플이었다. 베르타 왕비는 앵글로-색슨 잉글랜드에 기독교를 보급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는 이유로 성자로 추대됐다. 에델베르트 왕(Athelberht of Kent)과 베르타 왕비의 동상이 성벽과 세인트 오거스틴 수도원 입구 사이의 정원(Lady Wootton’s Green)에 놓여 있다. 나는 처음 봤을 때 왜 수도원 앞에 여인상을 세워놓았나 의아했었다.



캔터베리에서 머물 숙소를 정할 때 이 도시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 인터넷을 통해 그저 대중교통시설에서 가까운 곳을 택했다. 캔터베리 기차역은 동역과 서역이 있다. 지도상으로는 서쪽 기차역에서 걸을 만한 거리라는 점에 착안해 집 한 채를 빌렸다. 대성당 경내의 호텔보다 저렴하면서 거실과 부엌 등까지 갖춰 덜 답답할 것 같아서였다. ‘코티지(cottage)’라고 해서 전원풍의 영국식 주택을 상상했는데, 도시 지역이라 그런지 여러 가구가 줄지어 있는 2층짜리 연립주택 로하우스 중 한 채였다. 그래도 작은 뒷마당이 있어 쾌적했다.

이 숙소는 블랙프라이어즈 가(Blackfriars street)에 있었다. 지명의 의미가 궁금해서 이리저리 답사하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캔터베리 블랙프라이어즈는 오래전 켄트 지역의 도미니칸 종파였다. 1237년 헨리 2세가 도미니칸 종파에 교회와 수도원을 지을 땅을 하사했는데 바로 그 땅이 내가 우연하게 택한 숙소가 있는 동네였다.

이들 도미니칸 종파는 16세기에 종교탄압을 받아 교구의 주 건물군이 직물공장으로 바뀌고 나머지 건물들도 그 후 서서히 멸실됐다. 스타우어 강 동쪽에 있던 당시 식당 건물은 아직 남아 있으나, 그 건물도 17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집회용 시설로 사용되다가 이후 창고로 쓰였다. 현재는 한 사립학교의 전시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화이트프라이어즈 쇼핑센터

Whitefriars Canterbury


도시 동남쪽에는 ‘화이트프라이어즈’라는 커다란 쇼핑센터가 있다. 이곳도 원래는 수도원이었는데 16세기 헨리 8세에 의해 해산됐다. 그 후 개인 소유로 넘어가 아름다운 정원과 과수원으로 사용되다가 19세기 말에 학교로 사용됐으나 제2차 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거의 파괴됐다. 1950~1970년 상업 및 업무용으로 개발됐지만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는데, 1990년대 들어서는 고고학 발굴 및 역사 보존에 좀 더 만전을 기하면서 새로운 상업적 요구에 부응하는 개발을 하게 됐다. 1999년에 공사를 시작해 2005년 9월 켄트 주 동쪽에서는 최대 규모인 쇼핑센터로 완공됐다. 고층건물이 아니다 뿐이지, 성곽도시 안쪽조차 개발 요구에 부응하는 것은 서울이나 캔터베리나 마찬가지다.

그레이프라이어즈 채플, 프란치스칸 정원

Greyfriars Chapel · Fransciscan Garden


성곽 안 서남쪽에서는 오래된 주거지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주거지를 지나 스타우어 강에 놓인 다리를 건너면 예쁘게 다듬어진 골목길과 아름다운 정원이 펼쳐진다. 그레이프라이어즈 채플과 프란치스칸 정원이다. 잉글랜드 최초의 프란치스코 종파가 캔터베리에 처음 도착한 것은 1224년. 아시시의 프란치스코(San Franscisco d’Assisi·1181~1226)가 살아 있을 때의 일이다. 이들은 1267년부터 1235년까지 교황에게 땅을 얻어 건물들을 지었다.

핏빛 ‘개혁’에도 살아남은 중세 영국의 종교예술혼

캔터베리 대성당의 대표적 건축유산인 중세 스테인드글라스.

그러나 프란치스코 종파는 1538년 역시 헨리 8세에 의해 강제 해산됐고 수도사들은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약 430년 후 되돌아온 프란치스코 수도사들은 이스트 브리지에 정착해 이곳 병원 및 마을에서 교구 활동을 했다. 현재 유일하게 남은 건물인 그레이프라이어즈 채플의 원래 용도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방앗간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훗날 영국으로 망명한 프랑스 개신교도 위그노(The Huguenots)에게 숙소로 제공됐고, 19세기에는 차(茶) 정원으로, 20세기에는 마켓 가든으로 활용됐다. 1959년 교구에 매각돼 2003년부터는 영국 프란치스칸 수도사들의 예배소로 사용되고 있다. 정원을 통과하는 길은 쾌적한 보행로로 조경이 잘 돼 있다.

수도사들은 종파마다 복장이 다르다. 크게 4개 종파(Friars-four great orders)가 있는데, 우선 도미니칸 종파는 해빗(Habits)이라는 백색 계열 수도복 위에 검정색 카파(cappa·소매 없는 외투)를 걸치므로 블랙프라이어즈(The Domnicans, black)라고 한다. 칼멜 수도회는 흰색 카파를 걸치므로 화이트 프라이어즈(The Camelites, white), 프란치스칸들은 회색 카파를 걸치므로 그레이 프라이어즈(The Franciscans, grey)라고 한다. 비슷한 해빗을 입는 어거스티니안 프라이어즈(The Augustinians)와도 구분한다.

우리나라 불교계 스님들이 회색 장삼(長衫) 위에 걸쳐 입는 장방형의 가사(袈裟)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조계종 스님들은 적갈색 가사, 태고종 스님들은 고려시대부터 내려오는 붉은 홍가사를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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