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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들의 요리 솜씨

“이러다가 냉면집 차릴까봐요”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 일철 스님 버섯 냉면

  • 최영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이러다가 냉면집 차릴까봐요”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 일철 스님은 불가에서는 보기 드물게 미국물을 10년이나 먹었다. 87년에 그는 조게종 국제포교사로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 후 97년 귀국할 때가지 10년 동안 샌프란시코 여래사, 보스턴 범어사, 메릴랜드 법주사에서 포교활동을 했다. 그는 Charley라는 영문 이름도 갖고 있고 영어 실력도 유창하다. 그 탓에 입맛도 완전히 서구화되어 밥 없이 빵만 먹고 살 수 있게 됐다. 특히 그는 국수라면 사족을 못쓴다. 미국에서는 전생에 이탈리아 사람이었다는 말도 자주 들었다고 한다. 불가에서는원래 먹고 사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출가하면 밥하기, 청소하기, 옷 손질, 농사짓기부터 먼저 배운다. 거기다 일철 스님은 따로 공양을 챙겨줄 사람이 없는 미국 생활을 10년이나 한 탓에, 음식 솜시도 상당하다.

그런 그가 사찰음식의 1인자 선재 스님에게 한 수 배우려고 경기도 양평 선재 스님댁을 찾았다. 섡 스님이 그에게 전수할 요리는 비빔 냉면이란다. 좋아하는 국수 요리를 배운다며 그는 양평 가는 내내 들떠 있었다. 선재 스님 집은 양평 용문사에서 자동차로 15분 거리인 자그마한 시골 마을 한 가운데 폭 파묻혀 잇었다. 돌멩이를 밟으며 구불구불한 흙길을 걷답니, 정무 아래가 선재 스님 집이었다. 붉은 황토로 지은 아담한 흙집인데 마당 한쪽편에 있는 장독대가 눈에 확 들어왔다. 장독 수십개가 늘어선 위용이 사람을 압도했다. 이 장독에는 모두 선재 스님이 쓰는 천연 조미료이자 재료인 간장, 고추장, 된장이 들어 있었다. 한국음식의 독특한 장류, 장아찌류, 김치류는 모두 사찰에서 발달한 음식이다. 채식만 하는 사찰에서 음식을 맛있게 먹기 위해 이런 발효음식 문화를 발달시킨 것이다.

선재 스님은 20년 동안 사찰음식을 연구했고 이에 관한 최초의 논문도 발표한 절음식 전문가다. 그는 어려서 몸이 약해 음식을 가려먹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일찌감치 식생활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이 무렵 선재 스님은 한가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 ‘옛날 고승들은 어떻게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그들은 무엇을 먹었을까?‘ 선재 스님은 이때무터 무려 20년 동안 음식에 관한 책에 묻혀 지내고 있다. 그는 절집에서 내려오는 전통 비법을 현대에 맞게 되살리기 위해 갖가지 비교 실험도 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바로 중앙승가대학 졸업논문이다. 그의 조리법 특징은 육류와 어패류는 쓰지 않고, 파ㆍ마늘ㆍ부추ㆍ달래ㆍ홍거 같은 오신채를 쓰지 않는다. 이런 재료를 날로 먹으면 음식이 일어나고 익혀 먹으면 흥분하기 쉽다는 것이다. 또 인공조미료를 넣지 않는다.

선재 스님 지시에 따라 일철 스님은 물에 불린 표고버섯을 썰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자세가 잘 나오지 않았다. 선재 스님이 옆에서 자세를 일렀다. 무릎을 끓고 정신집중을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철 스님은 칼질을 하다가 자꾸 웃고 말을 한다. 선재 스님이 다시 야단을 쳤다. 침이 들어갈 수 있으니 말을 하지 말라는 꾸지람이다. 일ㅇ철 스님은 지켜보더 다른 스님이 말을 시킨다고 변명한다. ”정신 집중을 안 하시네. 그 소리가 안 들려야 해요”선재 스님이 다시 불호령을 내린다.

선재 스님식 버섯냉면의 핵심은 소스를 만드는 것이다. 먼저 튀김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표고버섯 양의 4분의 1정도 넣고 가한 불에 끓인다. 기름이 끓지 않으면 재료가 겉돌면서 잘 볶이지 않는다. 여기에 표고버섯 다진 것을 넣고 볶다가, 노릿노릿하고 쫄깃쫄깃해지면 불을 낮추고 들기름을 표고버섯 양의 4분의 1정도 넣고 버무린다. 그 뒤 고춧가루를 표고버섯 양의 3분의2가량 넣고 구수한 냄새가 날때까지 덖는다. 이때 화력은 고춧가루가 타지 않도록 한 단계씩 약하게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화력조절과 재료 넣는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0.5초라도 불 세기 조절과 재료 넣는 시기를 놓치면 제맛이 나지 않는다. 고춧가루가 어느 정도 덖이면 진간장을 넣어서 걸쭉하게 만든다.

일철 스님 일행ㅇㄴ 버섯냉면을 용문사 스님들과 나눠 먹기 이해, 재료를 챙겨서 용문사로 향했다. 도착하자 갑자기 구름이 몰려오고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콰콰쾅--천둥이 울고 거센 빗방울이 용문사 기왓장을 부수듯 내리쳤ㄷ. 그런 소낙비를 바라보며 일철 스님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냉면 가닥을 비비기 시작했다. 그 자세가 산중 암자에서 불경을 외는 수행승과 다를 바 없었다.

냉면 사리를 삶는 동안 버섯고춧가루 볶음에 강판에 간 배즙을 넣고 버무렸다. 배는 1개가 세그릇 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여기서 설탕은 쓰지 않고 식초, 깨소금 , 굵은 소금을 조금씩 넣는다. 일철 스님이 자꾸 맛을 보니, 선재 스님이 또 야단을 친다. ”자꾸 맛을 보면 안돼, 맛을 자주 보면 나중에는 무슨 맛인지 몰라.” 일철 스님은 그래도 싱글거렸다. ”너무 맛있는 걸, 큰일났다. 이러다가, 다른 스님들이 중 때려치우고 냉면집 차리라고 그러겠다”하고 능청을 떤다. 버섯냉면을 배불리 먹고 나니, 언제 그랬냐는듯 비가 뚝 그쳤다. 파랗게 갠 하늘이 상쾌하다.

산 능선에 무지개가 걸릴 것 같다. 저녁 6시40분, 범종소리가 난다. 저녁 예불이 시작될 모양이다. 범종은 아침 예불 때 28번, 저녁에는 33번을 친다. 용문사 주지스님이 차를 따랐다. 첫 차맛이 짜다(진하다는 뜻). 주지스님이 다시 물을 따른다. 한바탕 소나기에 힘을 얻은 계곡물 소리에 용문사의 하루가 저물었다.

신동아 2000년 8월 호

최영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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