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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중음악 스타 열전 ⑤

“남자는 내 음악의 중요한 화두”

시들지 않는 ‘트로트 아티스트’ 심수봉

  • 글: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www.izm.co.kr

“남자는 내 음악의 중요한 화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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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가요사에서 심수봉은 참으로 묘한 존재다.
  • 그는 대중음악계를 지배한 기라성 같은 스타들과는 사뭇 다른 길을 걸었다. 가수왕, 경이적인 음반판매량, 오빠(언니)부대 같은 말들은 그와 별 인연이 없었다. 언제나 주류의 한복판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그러나 발표될 때마다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들어 깊은 생채기를 내고야 마는 것이 바로 심수봉의 노래다.
“남자는 내 음악의 중요한 화두”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사랑밖에 난 몰라’ ‘백만 송이 장미’…. 심수봉이 만들고 부른 노래들은 딱 부러지게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시간이 흐르고 나면 어느 틈엔가 소리없이 누구나 다 아는 ‘사천만의 가요’로 자리잡는다. 그의 대표작들은 방송사 인기차트를 기웃거리지 않고도 최고 애청·애창가요로 남았고, 지금도 노래방에서 누군가 심수봉의 레퍼토리를 골라 마이크를 들면 사람들은 ‘노래를 아는군!’ 하는 시선으로 박수를 보낸다.

은거(隱居)하는 듯하면서도 정상을 점령하는 심수봉의 이런 스타일은 가요계에 전무후무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MBC 라디오의 김정수 부장은 심수봉의 음악을 가리켜 “드러나지 않고도 우뚝 솟은, 단 한 번의 포상의례 없이 슬며시 20년간 우리 정서를 석권한 진정한 대중음악의 승리”라고 말한 바 있다.

심수봉 자신도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자신을 가리켜 “전성기가 없었던 가수”라고 잘라 말한다. ‘그때 그 사람’으로 이름을 얻자마자 6개월 후 10·26사건이 터졌고, 이후에도 제대로 활동 한번 못한 채 훌쩍 25년 세월이 흘렀다는 것이다. 남과 다른 방식으로 인기를 얻은 비결을 물으니 “그저 노래를 발표했더니 널리 알려진 것뿐이었고, 그래서 건재한 것에 불과하다”고 답한다.

그는 전부가 다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신비롭다. 그 신비를 이룬 요체는 말할 것도 없이 독특한 음색과 맛깔스런 노래다.

심수봉을 대표하는 곡들은 대부분 본인이 직접 작사, 작곡했다. 전문 작사자, 작곡자가 만들어준 곡을 부르는 것이 상례인 트로트 음악계에서 자작(自作)의 재능을 발휘한 것은 매우 드문 케이스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그에게는 ‘트로트 아티스트’라는 영예로운 수식이 붙었다. 남들은 도저히 흉내내기도 힘든 간드러진 묘미를 작품의 최대공약수로 삼았다는 음악적 특징과, 화려한 무대 앞이 아닌 가려진 뒤편에서 대중의 마음, 이른바 ‘밑바닥 정서’를 사로잡은 전략적 선택은, 의도하든 하지 않았든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며 상승효과를 일으켰다.

드럼 연주자 심수봉?

감추어진 이미지의 가수답게 심수봉은 인터뷰 요청에 처음엔 “수 년째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는 말로 난색을 표했다.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하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 이어지고 나서야 “그렇다면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며 자리에 응했다.

서울 강남의 모 호텔 커피숍에서 만난 심수봉은 여전히 수줍은 인상이었다. 아무리 음악을 하면 쉬 늙지 않는다지만 오십 줄의 나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여려 보였다. 다소곳한 자세와 공손하고 낮은 톤의 어투는 물론 자그마한 체구도 데뷔 때와 다르지 않았다. 6개월 동안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며칠 전 귀국했다는 얼굴에는 다소 피곤함이 묻어있었지만, 묘하게도 심수봉의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졌다.

인터뷰가 시작되자 최근 이문세가 발표한 음반이 화제로 떠올랐다. 이 음반의 타이틀곡 제목은 ‘내 사랑 심수봉’. 자신의 젊은 시절을 관통한 심수봉의 노래에 얽힌 감상과 추억을 풀어낸 가사에는 선배 가수에 대한 존경이 담겨 있다. 그런가 하면 최근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오지혜가 무드 있게 부른 ‘사랑밖에 난 몰라’가 다시 한번 인구에 회자되기도 했었다.

-‘내 사랑 심수봉’은 들어보셨죠? 아마 노래를 발표하기 전에 이문세씨 측에서 연락을 했을 것 같은데요. 기분이 어떻던가요?

“들어봤죠. 제목을 ‘내 사랑 심수봉’으로 하겠다는 말을 전해 듣고는 그러려니 했어요. 그것도 노래를 재미있게 만들 수 있는 아이디어겠구나 생각했지요. 그런데 세상에, 그걸 타이틀곡으로 쓸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저 앨범 뒤편에 양념 삼아 들어가는 곡일 거라 생각했죠. (웃으며) 부끄러워 죽겠어요. 남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전 지금도 쇼핑하러 매장에 들어갔다가 내 노래가 나오면 면구스러워서 그냥 나와버리곤 해요. 성격이 그런 걸요. 후배 뜻은 잘 알지만 쑥스럽더군요.”

-미국엔 왜 다녀오신 건가요?

“아이 교육문제도 있었고, 제 음악공부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저도 힘들었지만 혼자 생활하느라 고생한 아이 아빠에게 더 미안했어요. 대신 열심히 공부해서 뜻 깊은 시간을 보내려 애썼지요. 라틴과 아프로-쿠반 계열의 리듬이 세계적으로 성공한 이유가 뭔지 알게 된 것 같아요. 외국 음악인들이 우리 리듬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에도 약간 놀랐습니다. 과연 우리 사물놀이 리듬이 라틴 리듬을 능가할 수 있을까 등등의 생각에 골몰했습니다.”

사실 팬들의 입장에선 다소 당혹스런 대답이다. 유려하게 멜로디를 타고 넘어가는 ‘묘하게 노래 잘 하는 가수’로만 기억되는 것과는 달리, 심수봉은 열 다섯 살부터 노래와 함께 드럼을 쳐온 ‘음악가’다.

리듬에 대해 고민하는 연주자로서의 자세는 그의 노래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그의 음악이 독특한 컬러를 갖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음색과 멜로디 외에 드럼 연주에서 획득한 탁월한 리듬감각이 스며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콘서트 때마다 어김없이 드럼 연주를 선사해 관객을 놀라게 한다. 그는 “이번에 미국에 가서 보니 지금까지 제가 콘서트에서 했던 드럼 연주는 ‘구닥다리’였다”며 크게 웃어 보였다.

대중들이 기억하는 심수봉의 첫 번째 모습은 1978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며 ‘그때 그 사람’을 부르던 장면일 것이다. 포크와 록이 주름잡던 당시의 대학가요제에 트로트를 들고 나온 그를 두고 한편에선 신선하다고 했지만 느닷없다는 느낌을 받은 사람이 더 많았다. 당시 대학가의 음악 풍토를 감안했을 때 트로트 곡으로 본선 무대에 진출한 것 자체가 하나의 이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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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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