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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중음악 스타 열전

“‘아침이슬’은 김민기나 내게 애증의 대상”

30년 한결같은 포크계의 ‘상록수’

  • 글: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www.izm.co.kr

“‘아침이슬’은 김민기나 내게 애증의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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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3년 YMCA는 설문조사를 통해 ‘한국인의 생각과 삶에 영향을 끼친 가수’ 1위로 양희은을 선정한 바 있다. 1971년 ‘아침이슬’이 실린 첫 앨범이 나온 지 22년, 그가 미국으로 떠난 지 7년 만의 일이었다. 본인이 한국에 있건 없건,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건, 한국인의 곁에는 언제나 양희은의 노래가 함께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아침이슬’은 김민기나 내게 애증의 대상”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양희은이 갖는 무게를 설명하기 위해 여러 곡을 나열할 필요는 없다. 김민기가 작곡한 ‘아침이슬’ 한 곡만으로도 그의 목소리는 당대 젊은이들의 ‘생각과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암울하고 혼란스런 군사독재 시절을 답답한 호흡으로 살아간 1970~80년대의 청춘들에게 ‘아침이슬’은 ‘낭만적 청년문화’를 넘어, 현실에 타협하지 않는 ‘비판적 시대정신’의 음악적 상징이었다.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의 상당 부분은 곡조와 노랫말을 주조해낸 김민기에게 돌아가겠지만, 이를 낭랑한 목소리로 전달해준 양희은이 없었더라면 ‘아침이슬’은 결코 국민가요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김민기가 ‘금관의 예수’ ‘늙은 군인의 노래’ ‘상록수’ 등으로 대중의 뇌에 울림을 만들어냈다면 대중의 가슴을 어루만진 사람은 바로 양희은이었다.

팬들이 창조자 이상으로 ‘전달자’ 양희은을 좋아했다는 것은 양희은이 김민기 아닌 다른 작곡자와 만들어 부른 노래들도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이 말해준다. 이주원의 곡인 ‘내 님의 사랑은’ ‘들길 따라서’ ‘한 사람’, 김희갑 곡인 ‘하얀 목련’, 하덕규의 ‘한계령’, 이병우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등도 양희은이 불렀기에 한 시대를 풍미할 수 있었던 곡들이다. 김민기가 쓴 곡과 마찬가지로 이 곡들 또한 TV 인기차트에 오르지 못했지만, 사람들의 가슴에 차곡차곡 쌓여 오래도록 되새김질되었다.

남자가수들이 장악하고 있던 한국 포크음악 판에 그는 거의 유일한 ‘우먼파워’였다. 그 영향력과 대중적 흡수력은 보브 딜런 시대에 맹활약한 미국 포크 여가수 존 바에즈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1970~80년대 포크음악 시대를 대표하는 여가수가 양희은이라는 데 아무도 이의를 달지 못한다.

통기타를 메고 홀연히 가요계에 등장한 지 어언 30년, 나이도 올해로 만 쉰 살이다. 이제 그를 ‘인기가수’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 무대에 올라서 기염을 토하는 그는 여전히 위풍당당하다. 특히 그의 공연은 ‘아줌마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것으로 유명하다. 어느새 그는 ‘포크의 대변자’에서 ‘아줌마 문화의 기수’로 변해 있는 것이다.

내가 바로 아줌마

인터뷰를 위해 일산 자택에서 만난 그는 음식 관련 TV 프로그램의 녹화를 막 마친 뒤였다. “녹화하면서 만든 거예요. 1년이면 300날 손님 맞이하면서 터득한 음식 솜씨지” 하며 약과를 내놓는 모습이며, 인터뷰 중간중간 차와 과일을 대접한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곤 하는 모양이 영락없는 아줌마다.

“때로는 노래만 아니라면 뭐든지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노래는 어쩔 수 없이 나의 운명이 돼버렸다”는 게 인터뷰의 첫마디였다. 방송을 통해 그의 당당한 언변은 익히 알려져 있지만, 지나간 30년 음악인생을 회상하는 그의 눈가에는 간혹 이슬이 맺혀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여장부’ 양희은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언젠가 어느 기사에서 양희은씨를 수줍은 성격으로 묘사한 게 기억납니다. 시원시원하고 호쾌한 이미지는 사실과 다르다는 이야긴데요. 왜 그런 차이가 생긴 걸까요?

“저는 제가 봐도 낯을 잘 가리고, 수줍음 많고, 쉽게 속을 드러내지 않는 성격입니다. 어릴 적 부모님이 이혼하셨던 그늘이 상처가 된 탓도 있을 것 같고, 어쩌면 열린 직업이 갖는 의외의 폐쇄성 탓일지도 모르겠어요. 저더러 생각 밖으로 여리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양희은씨 공연은 언제나 흥행이 잘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후배가수들도 공연이 성공하는 선배가수로 양희은씨를 첫 손에 꼽습니다. 왜 공연에 사람들이 몰린다고 보십니까?

“제 공연에는 이상할 정도로 아줌마들이 많아요. 처음 대학로 소극장에서 공연을 가졌을 때는 공연장에 들어오지 못해 화난 아줌마들로부터 공연관계자가 뺨을 맞는 해프닝도 있었지요. 공연기획사는 ‘전대미문의 사건’이라고 하더군요. 1994년 귀국했을 때 체중이 20㎏이나 늘어난 살찐 아줌마가 되어 나타나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확실히 전 ‘여자가 좋아하는 여자’인 것 같습니다.

여자들이 다수인 공연장이 얼마나 각별한지 아세요? 여자들만 치는 박수는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따뜻하고 가슴 뭉클한 무엇이 있습니다.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요. 그래서 제 공연에는 아줌마를 상대로 한 ‘얘기’가 많습니다. 노래가 아니라 그 얘기를 들으러 오는 아줌마들도 있으니까요.”

양희은의 공연장에서는 가수와 객석이 주고받는 흥겨운 대화를 들을 수 있다. 그가 사설을 펴면 객석 이곳저곳에서 질문이 날아든다. 한 아줌마의 엉뚱한 질문. “양희은씨는 옷을 어떻게 마련합니까?” 양희은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큰 목소리로 응수한다. “아니, 연예인이라고 특별하게 옷을 입는 줄 아세요? 저요, 남자 옷 입어요. 지금 이 옷 말이죠, 투엑스 라지예요.” 한바탕 폭소가 터진다.

웃음 못지않은 비장함도 있다. 겨울 공연 때면 그는 가끔 캐럴의 고전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부른다. “생전에 아버지가 잘 부르시던 곡이에요. 그렇게 죽도록 미워한 아버진데, 지금은 저도 나이가 들어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이 노래를 부릅니다. 이 노래 할 때마다 아버지 생각이 간절합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객석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고 양희은도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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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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