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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중음악 스타 열전 ⑨

“‘관광버스용’ 아닌 ‘인생의 노래’ 하고 싶었다”

80년대 말 트로트 전성기의 주역 주현미

  • 글: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www.izm.co.kr

“‘관광버스용’ 아닌 ‘인생의 노래’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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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작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그 폭발력은 엄청났다. 1984년 거리의 음반가게와 노점상에 배포된 메들리 테이프 ‘쌍쌍파티’. 이 급조된 테이프 하나로 주현미는 혜성처럼 가요판에 뛰어들어 ‘비 내리는 영동교’ ‘울면서 후회하네’ ‘신사동 그 사람’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여왕이 되었다. 한참 활약하던 1980년대 말 그가 무대에 서면 “누나!” “언니!”라는 10대 팬들의 함성이 터져나와 방송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관광버스용’ 아닌 ‘인생의 노래’ 하고 싶었다”
지금은 세력이 미미해졌지만 그래도 한국가요 역사에서 주류장르를 꼽자면 단연 트로트 음악이라는 데에 이의를 달기는 쉽지 않다. 때로는 ‘뽕짝’과 ‘왜색가요’라는 경시와 홀대를 받기도 했지만 트로트는 서민대중의 한과 설움의 정서를 담아내면서 면면히 한국음악의 중심 위치를 지켜왔다. 이난영, 남인수, 현인, 이미자, 남진, 나훈아, 하춘화, 심수봉 등 우리 가요사의 기라성 같은 슈퍼스타 가운데 아마도 절반은 트로트 가수일 것이다.

주현미는 트로트가 그나마 위력을 발한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 그 마지막 전성기를 밝힌 별이었다. 그는 1980년대에 트로트 가수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방송사의 가수왕상을 수상했고, 드물게도 요즘 댄스와 발라드 가수처럼 무대에서 젊은이들로부터 갈채와 환호를 받았던 인물이다.

하춘화 이후 빅 스타 부재에 허덕이던 트로트 음악계에 그의 출현은 가뭄을 해소하는 시원한 빗줄기였다. 그의 활약에 탄력을 받아 현철, 설운도, 김지애, 문희옥 등 트로트 가수들이 동시다발로 공중파 방송을 점령했으며, 1970년대에 활약하다가 외국으로 갔던 태진아와 송대관이 고국에 돌아와 재기하는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대중음악 관계자들은 당시 주현미의 성공을 트로트 스타가 되는 데 필요한 여러 조건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결과로 풀이한다. 화교라는 사실, 거기에 중앙대 약대를 졸업한 약사 출신이라는 배경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특혜(?)였으며 외모 또한 수수하면서도 매력적이었다. 필수조건인 노래솜씨말고도 이러한 갖가지 ‘충분조건’을 갖추었기에 슈퍼스타에 등극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무렵 트로트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외모에는 민감한 젊은 남자들의 입에 ‘주현미’라는 이름이 오르내렸고, 당대 최고였던 조용필이 부럽지 않을 만큼 연예주간지와 신문 문화면에 단골로 얼굴을 내밀었다.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1988년에 동료가수 임동신씨와 결혼한 것이 그토록 화제를 뿌렸던 것도 그가 가진 ‘음악 외적 화제성’ 때문이었다.

“대세는 대세, 빛이 안 보인다”

무엇보다 그의 음색은 발군이었다. ‘쌍쌍파티’를 통해 선보인 음색은 팬들의 귀를 데뷔 당시 메들리 테이프 시장의 여왕이었던 김연자로부터 단숨에 주현미로 이동시켰을 만큼 강하고 짜릿했으며 섹시했다. 특히 트로트의 가장 강력한 후원(?)세력인 택시기사들은 너도나도 주현미의 독특한 음색에 빨려들었다. 일단 목소리에 홀린 그들은 나중 잡지사진과 TV에서 주현미의 ‘예상 밖으로 매력적인’ 얼굴을 보고 다시 한번 넋을 잃었다.

그 후 어느덧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아직 구체화되지는 않았지만 주현미는 내년 ‘데뷔 20년 기념 이벤트’를 가져 그간의 음악활동을 결산할 예정이다. 트로트 프로그램 ‘가요무대’와 ‘가요콘서트’ 녹화를 위해 KBS와 MBC 두 방송사를 오가는 와중에 어렵사리 만난 주현미는 막상 자리에 앉자 오랜 활동에서 얻은 차분함과 관록의 여유를 보였다. “평소에는 한가한데 하필 오늘만 바쁘다”는 첫마디부터 겸손했고, 주위에 알아보는 일반인들이 많아 다소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묻는 질문에 성의를 다해 답했다. 입가에 보조개를 만들어내는 특유의 은근한 미소도 내내 잃지 않았다.

-요즘 매체에서 자주 볼 수 없어서 바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상당히 분주해 보이네요. 조금 전 음반관계자와 사진을 두고 상의하는 것 같던데 뭔가요?

“곧 발매할 새 앨범의 재킷 사진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러브레터’를 2000년에 발표했으니까 3년 만의 신보네요. 음반작업 마무리도 그렇고 곧 있을 한인100주년 기념행사차 미국에도 가야하고, 5월에는 어버이날 디너쇼가 있어서 정신이 없습니다. 갑자기 일이 몰렸을 뿐이에요. (웃으며) 실제로 그렇게 바쁘지는 않지만 스케줄은 1990년대 초반 못지않아요. 지방행사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지방자치제 영향인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서울에서만 바빴지 지방 스케줄은 그다지 많지 않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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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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