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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중음악 스타 열전 ⑩

“민중가요? 때로는 내게 안 맞는 ‘옷’이었다”

번민의 80년대가 남긴 ‘시대의 가수’ 안치환

  • 글: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www.izm.co.kr

“민중가요? 때로는 내게 안 맞는 ‘옷’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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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0년대 한국의 대중음악은 조용필이 천하를 지배하고 있던 가요계가 전부가 아니었다. 음악시장을 장악한 TV스타들과는 전혀 다른 현실참여 음악, 이른바 ‘민중음악’이 민주화투쟁에 나선 학생, 노동자, 지성인들의 지원 속에 강한 자생력과 파급력을 발휘하며 또 다른 ‘진영’을 구축했다. 자체 생산·유통·소비구조를 형성하며 비약적으로 성장했던 이 시기 민중가요진영이 맺은 열매의 한 가운데에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의 안치환이 서 있었다.
“민중가요? 때로는 내게 안 맞는 ‘옷’이었다”


격렬했던 1980년대가 스쳐 지나간 1990년대 이후, 민중가요의 ‘적자(嫡子)’이자 상징물이던 안치환은 대중가요 전선으로 달려나갔다. 그러나 이를 통해서도 그는 이념이 스러져간 시대에도 민중음악이 전해준, 변화를 갈망하는 메시지가 죽지 않고 살아 숨쉬고 있음을 증명했다. 고독하지만 양심을 자극했던 그의 통렬한 사자후는 ‘소금인형’ ‘수풀을 헤치며’ ‘내가 만일’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같은 일련의 히트곡(?)을 통해 대중의 가슴에 밀착했다.

흥청거리는 댄스파티와 비주얼 중시 풍토도 그의 ‘안티 음악’을 짓누를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당당하게’ 따라 부르면서, 안치환 음악은 주류가요만이 판치는 노래방에서마저 지분을 획득했다. 다수가 꺼리는 지점에서 오히려 그의 노래는 광채를 발한 것이다. 덕분에 그는 민중가수로 남긴 굵은 자취에 이어 대중가수로도 성공했다. 1990년대 가수 중 주류의 한복판에서 거짓과 부조리를 꼬집고, 사람과 인생을 따스하게 포옹하며, 민족과 통일에 대해 비장하게 설파해온 ‘주류-비주류 통괄 가수’는 아마도 안치환 외에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의 성공사례는 이후 ‘운동권 가수’들이 제도권으로 터전을 옮기는 기틀을 마련했다.

민중가요라고는 잘 모르던 그가 대학의 노래동아리에 들어가 노래를 직업으로 삼은 지 20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다. 그는 활동 20년을 앞둔 올해 일련의 ‘의미 있는’ 노래작업에 나설 계획이다. 그 하나가 문익환 목사 10주기를 기념해, 중소도시 20개를 순회하는 ‘통일맞이 공연대장정’이 될 것이라고 전하면서, “그 때문에 금년이 너무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흘러가는 세월은 속일 수 없는 것인지 그도 이제는 예의 푸릇푸릇한 열혈 청년의 얼굴은 아니었다. 어느덧 불혹을 바라보는, 제 나이가 보이는 얼굴. 날카롭고 예민한, 옆 자리에 찬바람이 불 것 같던 예전의 느낌은 많이 사라지고 대신 온화한 미소가 가득했다. “인상이 편해졌다”고 말을 건네자 “주변 사람들이 다들 ‘이제 많이 좋아졌다’고 말한다”며 밝게 웃어 보인다.

노래에는 세대가 있다

인터뷰에 인색하기로 소문난 그였지만 그는 모처럼 ‘긴 얘기’를 할 수 있는 자리에 꽤 흡족한 듯했다. 처음에는 “좀 거친 이야기가 나오더라도 잘 걸러 써달라”고 당부한 그였지만 막상 대화에 들어가자 심한 표현은 단 한마디도 없었다. ‘절제의 시기’에 들어가기라도 한 듯 단어선택에 애를 쓰면서도, 자신의 음악과 인생에 대해서는 기대 이상으로 솔직하게 풀어냈다.

-요즘도 대학축제의 초청공연이 많습니까? 공연 때문에 늘 분주하다고 들었습니다만.

“조금 줄기는 했지만 아직도 많아요. 대학의 행사 초청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늘어나서 전체적으로 옛날보다 더 많아졌어요. 지난 5월1일 노동절에도 서울과 지방 이곳저곳으로 정신없이 불려다녔습니다.”

-어느덧 30대 말의 나이가 됐는데요, 아직도 20대 젊은이들의 자리에 많이 초청받는 것으로 압니다. 옛날과 비교하면 기분이 어떻습니까.

“대학생들이 전에는 동시대 사람으로 보였는데, 솔직히 지금은 ‘애들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어려 보이는 거죠. 그때 비로소 제가 ‘나이가 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무대에 서는 기본자세엔 변함이 없습니다. 학생들이 절 어떻게 볼지는 모르지만요.

관객이 음악을 받아들이는 태도도 많이 변했습니다. 예전에는 학생들이 제 노래를 참 진지하게 들었는데, 요즘은 함께 뛰고 소리지르고 그래요. 그게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참 밝아서 좋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세월도 많이 흘렀고 시대도 변했습니다. 가수가 경력을 쌓기 위해선 팬들의 성원이 지속돼야 하고, 그러려면 새로운 팬 층의 확충이 필요하지요. 그 점을 고민하지 않습니까? 요즘에 갖고 있는 음악적 관점이 궁금합니다.

“저를 원하는 세대나 계층과 관련해서 한계가 있는 것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런 한계를 극복하려고 일부러 몸부림치기보다는 ‘남아 있는 팬’과의 관계를 견고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한 음악의 영향력은 어느 특정세대에 집중되는 성질이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요즘 제 노래는 추상적인 생각이나 관념보다는 주변의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에 포인트를 둡니다. 좀 달라졌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그게 새로운 세대의 팬들을 위한 제스처는 결코 아닙니다. 내가 그들(신세대) 언어에 맞추기보단 그들이 나를 이해하는 방향이 돼야 하는 것 아닐까요.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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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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