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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승경의 ‘눈으로 듣는 음악’ ④

영국 뮤지컬의 시작과 끝 헨리 8세와 앤드루 로이드 웨버

  • 황승경| 국제오페라단 단장·공연음악 감독 lunapiena7@naver.com

영국 뮤지컬의 시작과 끝 헨리 8세와 앤드루 로이드 웨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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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1970년 록오페라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로 대성공을 거뒀다. 이로써 참으로 오랜만에 영국 뮤지컬은 미국 뮤지컬의 콧대를 꺾었다. 웨버는 1981년 3억8000만달러의 수익을 일궈낸 ‘캐츠’로 토니상 7개를 휩쓸며 새로운 전설로 자리 잡았다. 영국 뮤지컬은 웨버로 말미암아 전성시대를 열면서, 이른바 빅 4(오페라의 유령, 캐츠, 미스 사이공, 레미제라블)의 성공으로 미국 브로드웨이를 잔뜩 움츠리게 만들었다. 그렇게 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영국 뮤지컬이 관현악의 서정적이면서도 긴박하고 장중한 진행을 가능하게 했던 데 있다. 정치적인 목적으로 음악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던 헨리 8세가 이 소식을 들었다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영국 뮤지컬의 시작과 끝 헨리 8세와 앤드루 로이드 웨버
음악 이야기가 들리면 필자는 본능적으로 귀가 예민해진다. 며칠 전 지하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 무리의 20, 30대 여성이 “오페라가 이렇게 재밌는지 몰랐다”며 수다를 떨고 있기에 귀를 쫑긋했더니 서서히 유령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들은 ‘오페라의 유령(Phantom of Opera)’ 관람평을 하고 있었다.

‘오페라의 유령’은 남녀 주인공의 삼각관계가 파리의 오페라극장을 배경으로 화려하고 괴기스럽게 펼쳐지기 때문에 관객들은 자신들이 본 것을 오페라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데 그들이 본 오페라의 유령은 오페라가 아니라 뮤지컬이다. ‘오페라의 유령’ 원작은 프랑스 유명 추리소설 작가인 가스통 르루(Gaston Leroux·1868~1927)가 1910년에 발표한 소설로 1861년 파리 오페라극장을 무대로 삼고 있다. 얼굴을 가면으로 가린, 젊은 프리마돈나를 짝사랑하는 괴신사는 극장 지하와 연결된 하수도에 기거하며 그녀를 납치하지만 그녀와 라울 백작의 진정한 사랑을 확인하고는 자취를 감춘다는 줄거리다. 이 소설은 여러 차례 영화화 작업을 거친 뒤, 영국의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Andrew L. Webber·1948~)에 의해 1986년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처음 뮤지컬로 무대에 올랐다. 1988년에는 뉴욕 브로드웨이 공연에서 성공을 거두고, 한국에서는 2001년 LG아트센터 공연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당시 뮤지컬 공연시장의 매출규모는 140억원 안팎이었는데 ‘오페라의 유령’이 70억원의 공연수입을 올려 전문적인 공연기획이 뿌리내릴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다. 또 공연 마케팅계의 신화를 창조하면서 공연계의 판도를 바꾸어놓았다.

오페라와 뮤지컬은 음악을 중심으로 무용, 무대미술, 극본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종합무대예술 장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또 먼저 생긴 오페라가 뮤지컬의 탄생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둘 사이에 당연히 유사점이 있다. 그렇지만 오페라의 등장인물을 가수(歌手)라고 부르고 뮤지컬의 등장인물은 배우(俳優)라고 부르는 데에서 드러나듯, 오페라는 음악 위주로 이루어지는 데 비해 뮤지컬은 드라마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모든 것을 노래로 표현하는 오페라와는 달리 뮤지컬에서는 연극적인 내용이 중요하기 때문에 대사와 안무의 비중이 높다. 그래서 오페라는 번역이 필요 없지만 뮤지컬은 번역이 필요하다. 음악은 만국공통어여서 언어를 몰라도 소통이 되지만, 대사는 외국어이면 이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페라는 원어를 그대로 가창하고 뮤지컬은 이해가 편하게 자국어로 번역해 공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차이 때문에 사람들은 주인공이 춤을 추고 분주히 무대를 가로지르며 움직이는 것은 뮤지컬이고, 주인공이 큰 동선을 만들지 않고 노래만 부르는 것은 오페라라고 말한다. 100% 완벽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대사와 안무 비중 높은 뮤지컬

영국 뮤지컬의 시작과 끝 헨리 8세와 앤드루 로이드 웨버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1981년 선보인 뮤지컬 ‘캐츠’.

오페라는 대형 공연을 하는 경우가 아니면 거의 모두 정통 클래식 창법으로 공연된다. 마이크와 같은 확성장치 없이 훈련을 통한 발성으로 관객에게(무대와 객석 사이에 위치한 오케스트라가 반주하는 음악에 맞추어) 육성을 전달한다. 반면에 뮤지컬은 마이크를 사용하며 배우의 창법도 다양하고 현대적이다. 뮤지컬은 라이브 반주와 녹음 반주를 모두 사용하며 대중적인 전자악기까지 동원하기 때문에 구성이 오페라보다 훨씬 다양하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만들어낸 영국은 음악 분야에선 후진국이었다. 섬나라인 영국의 음악 발전은 유럽대륙에 속한 이탈리아, 프랑스, 오스트리아, 독일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딘 편이었다. 영국이 독자적인 음악양식을 확립한 것은 15세기로, 이때 유럽대륙에서는 테너성부(남성 고음)의 선율을 중심으로 곡이 진행되는 다성 교회음악이 성행하고 있었다.

6명의 아내로 후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는 헨리 8세(1491~1547)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음악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영국교회의 최고 수장(首長)으로 규정한 법령인 수장령을 발동해 가톨릭을 대체하는 영국성공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왕실의 위엄을 과시하기 위해 성가대 인원을 대폭 늘렸으며, 교황청과 결별하는 상징으로 라틴어로 된 예배음악이 아닌 영어로 된 예배음악을 사용했다. 그의 딸 엘리자베스1세 또한 아버지처럼 음악을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용했다.

청교도들이 정권을 잡으면서 당시 정부는 음악과 연극이 사람들을 타락시킨다고 생각해 대대적인 탄압을 가했고 음악과 연극에 관련된 모든 모임을 불허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청교도혁명 당시 혁명정부가 교회 안에서의 연주조차 일절 금지한 것이 거꾸로 대중예술의 발전을 가져왔다. 교회에서 폐기한 오르간이 선술집으로 흘러들어가 반주에 이용되면서 대중음악과 무용의 발전을 가져오게 된 것. 이것이 이후 프랑스를 비롯한 대륙 대중음악에 영향을 미치는 뮤직홀의 유래가 됐다.

1994년에 개봉된 영화 ‘파리넬리’에는 전설적인 카스트라토(거세된 남자소프라노 가수) 카를로 브로스키(1705~1785)가 영국에서 이탈리아어로 된 이탈리아 양식의 오페라 공연을 하면서 대대적인 환영을 받는 모습이 나온다. 18세기 초 독일의 하노버 가문이 영국의 왕위를 계승하면서 이탈리아와 독일 음악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당시 영국에서는 선진적인 유럽대륙의 음악을 소화할 만한 자국의 작곡가가 없었다. 그래서 수많은 이탈리아와 독일 음악가가 영국으로 유입됐다. 이들은 별다른 경력 없이도 영국에 와서 자국에 있을 때보다 후한 대우를 받았다. 그 결과 영국에서는 영어에 어설픈 이탈리아 음악가들의 억양을 따라 하는 음악도들이 생겼고, 그러한 억양이 음성학적인 하나의 분류로 ‘음악가의 억양’으로 새롭게 명명될 정도였다. 이렇게 유입된 사람이 수적으로도 많았지만 그들이 접하는 인물들이 사회의 상류층 인사다보니 자연히 사회적 영향력 또한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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