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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승경의 ‘눈으로 듣는 음악’ ⑮

지휘봉을 든 ‘백발의 제왕’ 카라얀

  • 황승경│국제오페라단 단장·공연예술학 박사 lunapiena7@naver.com

지휘봉을 든 ‘백발의 제왕’ 카라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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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을 감고 손짓과 표정 하나로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카라얀.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암보(暗譜) 지휘’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더욱 집중시키며 자신의 절대적인 권위를 표현하려는 철저한 계산에서 나왔다. 지휘자로서 상반신의 유연성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요가로 하루를 시작할 정도였다. 그에 대해 ‘나치 음악인’과 ‘경제적인 기적이 창조해낸 지휘자’ ‘불꽃 지휘자’라는 여러 평가가 있지만, 클래식 대중화의 대업적을 이룬 인물이라는 평가에 대해선 이견이 없다.
지휘봉을 든 ‘백발의 제왕’ 카라얀

1984년 동아일보 초청으로 열린 베를린 필 내한공연. 카라얀이 브람스`교향곡 1번을 지휘하고 있다.

검은색 터틀넥을 고집하며 특유의 시니컬한 카리스마를 내뿜던 애플의 전 CEO 스티브 잡스. 그를 처음 보았을 때 필자의 머릿속에는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이 떠올랐다.

검은색 터틀넥에 주름을 빳빳하게 세운 정장바지를 리허설 복장으로 고수한 카라얀은 연습일지라도 까탈 부리는 연주자들을 손짓, 눈짓 하나로 통솔해가며 그 위엄을 유지했다. 물론 잡스는 청바지를 즐겨 입었지만.

카라얀은 총 3500여 회의 어마어마한 공연을 했던 훌륭한 지휘자이기도 하지만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유명인사다. 그의 600여 종이나 되는 음반, 영상물 등의 콘텐츠 판매 때문에 음반회사에서 뿌린 홍보 사진만 해도 엄청나다. 우리나라 피아노 학원이나 중고교 음악실에서도 은발의 카라얀이 지휘봉을 들고 눈을 지긋하게 감은 모습이 담긴사진과 열정적으로 리허설을 준비하는 모습의 흑백사진을 쉽게 볼 수 있다.

지휘자는 타고난 예술적 재능뿐만 아니라 단원들을 관리하는 리더십, 비즈니스적인 마인드, 이미지 관리 등의 사회적, 정치적, 인격적 요소를 지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카라얀은 본능적인 시대감각으로 명성과 명예와 부를 누린 위대한 음악가라는 칭송과 더불어 ‘예술을 이용한 성공의 화신’이라는 비난을 감내해야 했다. 31세 어린 모델 출신 3번째 부인과 단란한 가정을 유지했고, 개인 제트기, 페라리 스포츠카, 최고급 요트를 소유했다. 그의 부인은 피카소, 르누아르의 명화를 수집했다. 그가 남긴 재산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3000억 원 상당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그의 어마어마한 재산이 유산으로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순전히 지휘자로 벌어들였다니 그가 얼마나 일중독자였고 세상 이치에 밝았는지 알려준다.

본능적인 시대감각

그는 1929년에 데뷔했는데 당시 그는 귀족 신분임을 표시하는 ‘폰(von)’을 넣은 이름을 고집했다. 그의 선조는 원래 유럽 남부 발칸반도 출신이었다. 1771년 터키가 그리스와 마케도니아를 점령하자 그의 5대조는 독일 켐니츠에 정착했다. 카라야니스(Karajannis)라는 원래 성도 독일식의 카라얀(Karajan)으로 바꿨다. 직물공장을 세워 크게 성공하자, 지역경제 활성화의 공로를 인정받아 작센 제후가 귀족 칭호(von)를 하사했다. 5대조는 오스트리아 빈으로 거주지를 옮겨 경제적·사회적 위치를 더욱 확고히 했고, 후손들의 교육 기반도 마련했다. 의사였던 할아버지는 대대로 내려오던 그리스정교를 버리고 가톨릭 세례를 받았고, 역시 외과 의사였던 아버지는 잘츠부르크로 이주해 카라얀은 그곳에서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집안에는 카라얀 외에 직업 음악가는 없었지만, 모두 음악을 연주하거나 감상하는 취미를 즐겼다. 카라얀의 부모는 큰아들에게 동향의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와 같은 ‘볼프강’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5세 때부터 피아노를 가르쳤다. 자신보다 252년 전에 같은 도시에서 태어난 모차르트가 누이의 레슨을 지켜보며 천재성을 드러냈듯, 3세 카라얀은 형의 레슨을 보며 절대음감을 자랑했다. 4세 때부터 본격적인 음악교육을 받으며 카라얀은 신동 소리를 듣는다. 어린 카라얀은 심하게 낯을 가리고 소심했다. 비즈니스 협상에는 귀재였지만, 사교에 서툴렀던 것은 아마도 그의 말 더듬는 버릇 때문으로 보인다.

카라얀의 부모는 아들의 음악적 재능을 자랑스러워했지만 아들이 직업 음악가로 성장하는 것은 반대했다. 그래서 19세의 카라얀은 그의 형처럼 기계공학을 전공하기로 하고 빈으로 유학을 떠난다. 하지만 애초 관심이 없던 전공이었다. 이내 공부를 포기하고 빈 음악 아카데미에 등록해 열성적으로 교습을 받았다. 하루에 8시간 이상 밤낮없이 피아노를 연습했다.

하지만 카라얀은 실력이 더 이상 늘지 않는다는 기분이 들었다. 통증과 부종을 일으키는 건초염을 앓으면서 훈련뿐만 아니라 연주에도 문제가 생겼다. 이때 지도교수로부터 ‘지휘자로 전공을 바꿔라’는 제안을 받는다. 전부터 지휘자로서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리라는 꿈이 먼저였다. 하지만 이제는 선택을 해야 했다. 카라얀은 결국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지휘자였던 클리멘스 크라우스가 있는 지휘과로 전과를 결심했다. 그런데 카라얀이 전과하자마자 크라우스는 빈 오페라극장 극장장으로 취임해 교수직을 내놓았다. 카라얀은 명성이나 실력 면에서 비교가 안 되는 빈필하모닉 오보에 주자에게 교습을 받았다. 거의 ‘자율학습’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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